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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하느님의 얼굴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
그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올 수 있겠습니까"
(시편 42,1-2)

이런 전설이 있다. 에데싸에 아브가루스라는 왕이 살았고 나병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예언자이며 치유자인 왕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퍼져있었으므로, 왕은 이 예수님이 그의 병을 고쳐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아브가루스왕은 예수님한테 에데싸로 오라고 초대하는 편지와 함께 하인인 아나니아스를 보냈다. 왕은 예수님이 오면 그를 낫게 해 달라고 부탁할 참이었다.

하인은 가서 예수님이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군중이 많이 몰려 있어서, 예수님한테 가까이 가서 편지를 전해줄 수 없었다. 왕이 너무 크게 상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하인은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갔고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려고 해봤다. 그러나 예수님의 얼굴에서 광채가 비쳤으므로 얼굴을 그릴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인이 그분의 얼굴을 그리는 것을 알아차리고 불렀다. 하인은 예수님에게 편지를 전달했고, 예수님은 초대를 거절하면서, 아버지 하느님께 돌아가기 전에 아버지가 맡긴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에데싸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나중에 에데싸로 제자 한 명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설은 이 시점에서 예수님이 물 한 그릇과 헝겊을 청했다고 한다.

Veil of Veronica by Francisco de Zurbarán, Bilbao Fine Arts Museum, see

예수님은 헝겊을 적셔서 그분의 얼굴에 대고 눌렀다. 그러자 예수님의 얼굴 형상이 그 헝겊에 찍혔다. 그래서 이 형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형상이라고, 참 모상이라고 불린다. 하인 아나니아스는 이 헝겊을 예수님의 선물로 받아 아브가루스왕에게 주었다. 그 후로 이것은 치유의 힘을 지닌 성물로 여겨졌고, 예수님의 부재시에 거룩한 힘을 발휘한다고 알려져 왔다.

이 참 모상의 형상(“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은 신약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단어이다. 첫 번째 인용은 마르코 복음에서 발견된다.

예수님이 수석 사제들의 최고 의회에 끌려왔을 때, 그들이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려고 그분에 대한 증언을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을 때였다:

사실 많은 사람이 그분께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였지만, 그 증언들이 서로 들어맞지 않았던 것이다. 더러는 나서서 이렇게 거짓증언을 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저자가, ‘나는 사람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우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증언도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마르 14,56-59)

여기에서 “사람 손으로 짓지 않는”이란 표현은 40년 이상을 걸려 지은 예루살렘의 성전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와 대조된다. 이 표현은 실상 예수님의 몸, 새 성전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성전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묻히고 난후 세 번째 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는 예수님을 뜻하는 것이다.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바오로는 이 형상을 더 확대하여 말하는데, 아버지 하느님이 예수님에게 무엇을 하고, 우리에게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표현한다: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건물 곧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2코린 5,1).

이러한 언급들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런 언급들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몸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신도들의 공동체가 지니는 믿음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예수님 안의 하느님의 성령이 신도들 사이에 세례, 치유, 용서 때 어떻게 나누어지고 전달되는가를 보여주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상대로 변화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앞에 말한 전설은 다음과 같은 바오로 사도의 말과 똑같은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 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2코린 3,18).

 

성녀 우르슬라 일화 마스터의 손수건을 든 성녀 베로니카

모든 거룩함, 모든 하나됨, 모든 복구, 모든 회복은 하느님의 아들, 사람이 된 하느님의 모상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 예수님은 인간의 얼굴에서 빛나는 하느님의 형언할 수 없는 영광이다. 그러나 육화로 인하여 그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의 영광은 이제 모든 인간존재의 얼굴에서 빛나고 있다.

우리는 항상 이 빛나는 얼굴이 인간의 얼굴임을 기억한다.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신 분”(루카 9,51)은 예수님이다. 이분은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의 밝음이다. 이것이 육화의 진리이다. 성령의 즐거움으로 충만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루카 10,21-24)

우리는 보았고 우리는 들었다. 우리는 보고 듣는다. 그리고 육화 신비의 당연한 결과는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존재가 되도록,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을 우리가 반영하도록, 그리고 세상 속에서 우리의 몸과 말로써 그 형상이 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인간의 손이 만들지 않은 하느님의 얼굴 앞에서 기도하자:

모든 존재하는 것의 원천이요,
모든 형상들이 그것으로부터 나아가는 빛이시여,
당신의 생명으로 다시 우리를 만짐으로써
당신의 거룩한 현존을 드러내시어 우리를 거룩하게 하소서.
우리의 영이 당신의 성령을 알아보도록,
우리의 말이 당신의 말씀을 말하도록,
우리의 마음이 지금 평화 속에 쉴 수 있게 하소서.
그 평화는 당신의 영원한 사랑의 친교입니다.

[출처] <자비가 넘치는 그리스도>, 미건 맥켄나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1년 9월호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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