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선 시] 아주 잠시-13
사랑은 속수무책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시겠다구요
그럼 제가 말해 드리죠.
그건 내 마음 안에 다른 사람의 자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에요.
그리고 그 빈자리.
그 자리의 주인을 만나는 거지요
그를 알아보는 거지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는 그 자리에
그 사람이 찾아오기까지 기다리는 막연함이기도 하지요
사랑이란
세월의 이끌림에 맡긴 인연의 소식을 기다리며
내 안의 몸부림치는 갈망을 다만 바라보는 것
점을 치듯 운명의 촉수를 가늠해 보는 것.
참 부질없어 보이지요
그러나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자리에 꽃이 피고 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거에요.
거부할 수 없음으로 찾아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속수무책으로 나를 결박하고
제 스스로 한 그루 나무로 자라는 것.
제 스스로 한 무더기 꽃이 되는 것.
참 신기하고 아름다운 일이에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조희선
시인. 천안 거주. <거부할 수 없는 사람>,
<타요춤을 아시나요> 등 시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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