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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맞선 예수, 신이 되다신이 된 사람, 그가 ‘그곳’에 있다-2

예수는 당시의 지배체제에 대해, 그 인습적인 규범체계에까지 비판을 가한 ‘사람’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이의 비판은 근원적이다. 즉 그이의 비판은, 억압적인 정치제도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권력의 노예로 만드는, 그래서 자기를 내리 누르는 권력에 스스로 굴복하게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의 노예로 만드는 그러한 권력 메커니즘 전체를 향했다.

팔레스티나의 두 유형의 지배 체제 중 하나인 ‘산헤드린-성전-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 ‘제2계열’의 지배코드는 억압적 기재를 통해 사회를 지배했다. 즉 그것은 억압적인 정치적 제도의 핵이었다. 한편 ‘성전-회당’의 ‘제1계열’의 지배코드는 상징을 통해 사람들을 권력의 욕망 속으로 몰입하게 했다.

예수의 권력비판은 이 둘을 아우르는 지배의 체제와 대결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배제하는 일상적 권력이 작동한다. 「마르코복음」에 의하면 그런 권력에 대한 예수의 비판이 벌어지는 현장은 갈릴래아다. 그곳에서 예수는 희생양이 된 자들, 온갖 죄인들과 병자들과 매춘여성들과 함께했다.

 

by 안드레아 다 피렌체

예수는 최후의 전투에서 실패했다는데

그런데 예수의 권력에 대한 저항의 활동은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으로 이어진다. 제1계열의 지배코드에서 제2계열의 지배코드와의 싸움으로 이어짐으로써 예수의 투쟁은 절정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각각의 안팎을 둘러치고 있는 권력이라는 악령과의 투쟁의 절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결론은 예수가 이 최후의 전투에서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는 체포되었고 고문당했으며 승자의 잔인한 축가를 뒤로하며 최후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실패한 싸움이 사실은 실패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승리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반전을 위해 우리는 그의 ‘부활’을 얘기한다. 한데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그가 영광스럽게 부활함으로써 승리했다고? 도대체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예수가 치유할 악령들인 사람이 없어졌단 말인가, 회당에서 축출된 사람들의 하소연이 사라졌단 말인가?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는데, 여전히 정의의 하느님은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패배하고, 불의의 존재는, 그것이 이집트든 바벨론이든 로마든, 아니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든, 전지전능 무소부재의 권력을 휘두르며 세계를 지배하는데, 도대체 무엇에게 승리했기에, 혀가 마르도록 승리의 찬양을 부르며, 성탄일을 자축하며 환호해마지 않는가? 눈물 나도록 고맙게도, 자본이라는 전능자는 엄청난 재화를 쏟아부으며 이날을 최대의 소비축제일로 만들어주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그러나 예수의 권력비판은 그의 처형으로 끝장나버리고 말았다. 흩어진 제자들의 사라진 자취를 뒤로하며, 예수의 권력비판은 막을 내렸다. 성탄절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장엄한 성가 헨델의 ‘메시아’ 선율 속에서 예수는 최후의 숨을 거두었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반전을 얘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예수의 부활 이야기가 존재했고, 그것은 끝장난 줄 알았던 권력을 향한 단호한 비판 선포의 메아리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흩어진 제자들이 다시 모이고 쓰러진 그에 관한 담론이 생기를 얻어 일어나 살점을 얻고 몸을 이루어 또 다른 투사로, 전태일로, 민중의 얼굴로 역사의 무대 위에 거듭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단, 우리가 얘기하는 반전은, 그가 적을 괴멸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가 계속된다는 의미에서다.) 그렇게, 사람들이 선포하는 대상이 되면서, 사람들의 갈망의 대상이 되면서, 예수는 신이 되었다.

이번 장의 이야기는 바로 이 반전에 관한 얘기다. 예수의 입을 통해 발설됐고 그의 몸을 통해 표현되었던 권력비판은 이제 이런 저런 변두리 사람의 몸속에서 부활하여 또 다른 권력비판의 소리로 되살아났고, 그것은 다시 또 다른 이들의 가슴 속에서 환생하게 된/될 것에 관한 얘기다. 그리고 그 환생의 갈망 속에서 그이는 신이 되었다는 얘기다. 하여 이번 장의 주인공은, 그 이름이 누구로 나오든, 바로 우리 속에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우리 자신이다. 바로 우리의 결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영화 <킬링 지저스>에서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이런 우리를 표상하는 성서의 인물은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다. 그는 예수가 안장된 무덤의 소유주였다. 우리 각자가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가 안장될 동굴을 만든 것처럼, 그는 그런 동굴무덤의 선구자다. 그에 관한 정보가 제한적이지만, 역사적 정보와 상상을 곁들여서 우리의 원형적 존재인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을 이야기할 것이다. 예수는 그 무덤에서 부활함으로써 신이 되었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 성에 도착했다. 닷새 후면 해방절(유대 월력 니산월 15일/ 니산월은 3~4월 사이)이 오고, 그때부터 일주일간은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 기간(유대 월력 니산월 15~21일)이다. 유대에서 가장 큰 절기인 이때에는 팔레스티나뿐 아니라, 로마 제국 안 여러 지역과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리고 도시뿐 아니라 농촌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든다. 이 기간에 사람들은 한껏 들떠 있다. 무엇보다도 메시아가 도래할 때일지 모른다는, 그리하여 억압에서 해방되는 날이 도래하리라는 생각이 그들을 한껏 달아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는 분명 메시아였다. 그 앞에선 로마 군대도 쥐 죽은 듯 꼼짝 않고 있었고, 성전 경비병들도 어찌하지 못했다. 율사들이나 귀족들이 보낸 사람들도 번번이 예수 일행에게 모욕을 당하며 혼비백산했다. 예수 일행이 주도하는 집회장을 중심으로 성전은 연일 해방구가 되었다. 이제 하느님이 메시아 예수를 통해 벌일 그 통쾌한 심판 행위는 임박한 듯했다.

그러나, 나흘째 되던 날,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그는 산헤드린 의회의 기소로 로마 총독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는다. 채찍으로 실신지경까지 얻어맞은 후 처형장인 골고다 언덕에서 ‘메시아’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를 따랐다던 그 ‘늠름한’ 제자단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하느님 나라 도래의 기대는 3일 천하로 끝나버렸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

그런데 이때 네 복음서들은 모두 느닷없이 한 인물의 등장을 언급한다.(「마르코복음」15,42-47;「마태오복음」27,57-61;「루카복음」23,50-56;「요한복음」19,38-42) 그는 유다지방의 소읍인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라는 사람으로 (산헤드린) 의회 의원이다. 이 인물은 총독 빌라도에게 청하여 ‘실패한’ 메시아의 시체를 자신의 무덤에 안장한다. 그런데 바로 이 무덤에서 예수의 ‘시신’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이는 곧 그의 부활 소문으로 이어진다.(「마르코복음」16,1-8)

우리는 이 사건 외에 그에 관한 어떠한 역사적 정보도 발견할 수 없다. 성서에서 그는 단지 빈 무덤의 주인, 정녕 메시아는 죽고 말았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헛짚음’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그런 사람으로만 보일 뿐이다. 수차의 부활 예고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무덤을 찾아가야 했던 ‘둔한’ 여인들처럼.(「마르코복음」16,1)

이 여인들은 그의 시신에나마 마지막 정성을 쏟아붓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가 그곳이 비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로부터 놀라운 소문 하나가 퍼져나간다. 메시아가 다시 살아났다고. 예수가 체포되고 처형되는 순간 흩어져 달아났던 제자들이 다시 모여 그의 부활소식을 전하며 예수 운동을 계승하는 사도들이 된다.

그런데 동시에 주의 처형장면을 목격하였고,(15,40; 참조. 15,45) 그의 마지막까지도 함께하고자 했던 세 여인들과 아리마태아 요셉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버렸다. 물론 이 여인들의 사라짐은 남성 중심의 이야기 구성의 소산임이 밝혀졌다. 실제의 역사에서 그녀들이 남성 제자들 못지않은 활약을 보였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아리마태아 요셉은 어디로 갔는가? 그를 역사의 무대에서 추방한 이들은 누구인가? 누가 그 기억을 말소시켰는가? 다시 얘기를 며칠 전으로 돌아가보자. (다음에 계속)

[출처] <맘울림> 2018년 6월 통권 제42호, 신앙인아카데미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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