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달루페의 성모, 정복당한 이들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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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루페의 성모, 정복당한 이들의 어머니
  • 한상봉
  • 승인 2018.09.0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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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25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중신심이 지닌 복음화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의 은사를 각자의 재능에 따라 자기 삶으로 드러내면서 자신이 받은 신앙을 증언하고 새롭고 설득력 있는 표현으로 풍요롭게 한다.”고 말한다. 교황은 이 교황권고에서 바오로 6세 교황의 <현대의 복음선교(Evangelii nuntiandi)>를 인용하며 “대중신심은 순박하고 가난한 사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하느님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대중신심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영혼이 드러난다.”고 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두고 “대중영성” 또는 “민중의 신비주의”라고 표현했다. 민중들은 추론보다 ‘상징’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하면서 성지순례에 나선다고 교황은 생각했다.

한편 성모와 관련된 라틴아메리카의 대중신심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과달루페의 성모 (Nuestra Señora de Guadalupe)’이다. 레오나르도 보프는 <하느님은 선교사보다 먼저 오신다>(분도출판사, 1993)에서, “마리아는 누구에게 발현하는가? 마리아는 스페인 사람에게 발현한 것도 아니고 교회 제도에 속한 성직자나 수도자에게 발현한 것도 아니다. 마리아는 주변화 된 어떤 원주민에게 발현한다.”고 말했다.

이 사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 기쁨>에서 “구원은 제국의 변두리 작은 마을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처녀가 말한 ‘예’를 통해 우리에게 왔다”고 한 말을 되새기게 만든다. 메시아의 잉태를 알리는 천사의 전갈을 받은 이가 가난한 처녀 마리아였듯이, 성모 마리아 또한 남루한 원주민에게 먼저 나타난다.

 

Nuestra Señora de Guadalupe

멕시코 시 인근의 테페야크 언덕에서 효성이 극진했던 후안 디에고에게 1531년 12월 9일 만삭의 모습으로 처음 발현했다는 과달루페의 성모는 멕시코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신앙을 상징하는 어머니로 사랑받고 있다.

최우혁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과달루페의 성모는 인디언 언어인 나후아틀어로 “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다. 나를 사랑하고 믿으며 내 도움을 요청하는 지상의 모든 백성의 자비로운 어머니다. 나는 그들의 비탄의 소리를 듣고 있으며 그들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흘 후 후안 디에고는 과달루페의 성모를 다시 만나 성모발현의 징표인 장미 꽃다발을 받아서 그 지역의 주교에게 가져다주었는데, 장미를 보이려는 순간 그의 외투 위에 그가 만났던 성모의 모습이 새겨져 나타났다. 성화에 새겨진 성모 마리아는 만삭의 모습으로 키는 1m 45cm이고 피부색은 인디언처럼 거무스름한 황갈색이며 머리카락은 검은색이었다.

 

Hoy se celebra a San Juan Diego, el vidente de la Virgen de Guadalupe.

 

보프는 이를 두고 “마리아는 가난하고 천대받는 원주민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과달루페의 성모 마리아는 중앙을 차지하지 않고 ‘변방’에 서서, 오히려 원주민이 주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한다. 그리고 번듯한 도시가 아니라 시골 변방인 테페야크(Tepeyac)에 성전을 세우도록 요구했다.

“파괴된 아즈텍의 피라미드 재료로 건설한 수도의 주마라가 주교의 관저에서 마리아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아무 거리낌 없이 변방인 테페야크에서 말한다. 마리아는 후안 디에고를 선택하고 그를 애정이 깃든 애칭으로 부른다. 이처럼 정복자들에게 예속된 원주민 여성 마리아가 중앙에 사는 주교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스페인 사람들이 아즈텍 사람들을 폭력으로 다루었던 것처럼 하지 않고, 설득한다. 마지막에는 자기 외투에서 꽃을 꺼내 주교의 발치에 뿌린다.”

신학자 최우혁은 500여 년이 지나도록 빛조차 바래지 않은 이 과달루페의 성모를 이해하려면 1519년부터 1521년까지 진행된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과달루페의 성모발현은 스페인의 아즈텍(Aztec) 인디언 대학살이 발생한 지 10년 만에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성모의 발현은 역사 속에 묻혀버린 아즈텍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또한 정복자인 스페인과 정복당한 인디언의 피를 함께 나누어 받은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종족 메스티조(mestizo)의 등장을 알리는 상징으로서 받아들여진다. 인디언 여성의 얼굴로 나타난 과달루페의 성모는 곧 해산을 앞둔 만삭의 몸으로, 눈을 아래고 내려 뜨고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2년 7월 31일, 로마에서 후안 디에고를 성인으로 선포했다.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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