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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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허기
  • 이규명
  • 승인 2018.08.27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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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허기

한 서평(書評)을 읽다가 ‘기분 좋은 허기’라는 문구를 만났습니다. 그러자 장난기(?)가 발동, 허기 외에 갈증, 섭섭, 그리움, 분노, 싫증, 피로, 게으름, 비난, 외면, 불평, 꾸지람 같은 단어에 ‘기분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놓고 나열해봅니다. 즉, 이렇게요.

기분 좋은 갈증, 기분 좋은 섭섭, 기분 좋은 그리움, 기분 좋은 분노, 기분 좋은 싫증, 기분 좋은 피로, 기분 좋은 게으름, 기분 좋은 비난, 기분 좋은 외면, 기분 좋은 불평, 기분 좋은 꾸지람….

 

사진출처=pixabay.com



우리가 흔히는 기분 좋게 여기지(느끼지) 않는 것들을 ‘기분 좋은’이라는 말과 결합시키는 장난. 서평을 쓴 기자가 “기분 좋은 허기가 느껴진다. 좋은 글을 읽고 싶다, 정확한 글을 쓰고 싶다는 허기가”라고 했듯이, 우리가 기분 좋게 느끼지 않는 것들도 때로는 기분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아하, 그런 것들로 ‘일상의 상황들에 내 자신이 직접 겪은 어떤 경우들이 있었을까?’ 또는 ‘생길 가능성이 있는 경우로 어떤 상황들이 있을까?’ 하고 곰곰 생각해봅니다. 이런 놀이가 때로는 아주 새로운 발견이나, 전혀 뜻밖의 깨달음으로 연결되기도 하거든요. 부족하거나 겪고 싶지 않거나 생기지 않으면 좋을 일들이 때에 따라서는 아주 좋은 기회나 좋은 느낌으로 속살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

벗님들도 상기(上記)한 기자가 “기분 좋은 허기가 느껴진다. 좋은 글을 읽고 싶다, 정확한 글을 쓰고 싶다는 허기가” 했듯이 허기, 갈증, 섭섭, 그리움, 분노, 싫증, 피로, 게으름, 비난, 외면, 불평, 꾸지람 등등(벗님이 목록을 더 보태셔요)에 ‘기분 좋은’을 넣어 자신에게 기분 좋은 허기는 어떤 것인지, 기분 좋은 갈증은 예컨대 무엇인지, 기분 좋은 피로는, 기분 좋은 꾸지람은.

이를테면 어떤 경우인지 짚어보셔요. 재미있고 새로우며 흥미로운 놀이가 될 거에요. 아마도 제 경우 ‘기분 좋은 허기’는 이른 새벽에 깨어있을 때의 공복 상태입니다. 새벽에 몸은 수면을 취하고 나서 피로가 풀린 후에다가 저녁 식사한 것은 소화가 끝난 상태이며, 공간적으로 모두 활동과 소음이 멎어 마냥 고요하여 마음도 고요하지요. 결국 뱃속과 머릿속 모두 텅 비어 몸과 마음 모두 평정(平靜)하니 이때의 허기는 곧 맑은 정신 상태와 그대로 하나이거든요.

맑은 정신 상태에서 묵상/명상을 하건 독서를 하건 글/편지를 쓰건 기분 좋은 갈증 속에서 하게 됩니다.

 

돌고래의 뱃속, 우리의 뱃속

5일자 일간지에 실린 「누가 이 돌고래를 죽였나」는 기사 요약입니다.

지난 달 28일에 타이 송클라주의 운하에서 둥근머리돌고래 한 마리가 표류를 했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수의사들과 고래 보호 단체 회원들이 약물을 투여하며 돌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조노력이 헛되이 돌고래는 닷새째 비닐봉지 5개를 토하고 숨졌다고 합니다. 사인을 알려고 부검을 진행한 결과 죽은 돌고래의 배 안에서 시커먼 비닐봉지가 무려 80개나 나왔다고 AFP 통신이 전하네요. 비닐봉지 무게만 8kg. 다른 플라스틱 조각들도 나왔는데, 비닐봉지를 토한 것은 살고자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답니다. 창자를 메운 비닐봉지 때문에 소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거지요. 타이 해양생물학자 톤 탐릉나와사왓은 “당신 배 안에 비닐봉지 80개가 들어간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해마다 800만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버려진다 합니다. 그 오염물질들은 결국 우리의 식탁으로 옮겨올 수밖에 없는데, 영국 정부는 상황 변화가 없다면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양이 10년 내에 3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출처] 해양 쓰레기 다큐멘터리 : 플라스틱, 바다를 삼키다 'a plastic ocean' (환경보호)|작성자 Animal Nomad

우리나라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일회용 종이컵 사용량이 257억 개였습니다. 그 일회용 종이컵의 재활용률은 불과 5~10퍼센트로 추정되는데,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매립, 소각되고 종이로 분류해도 컵 내부에 코팅 처리된 폴리에틸렌 때문에 쓰레기로 취급되고요. 1년에 257억 개! 어마어마하지요?

제 15회 서울환경영화제(2018.5.17~5.23)에서〈플라스틱 바다(A Plastic Ocean)〉(크레이그 리슨 감독)라는 다큐멘터리를 관람했어요. 모험가이자 영화제작자인 크레이그 리슨은 대왕고래의 다큐멘터리를 찍고자 바다로 나섰는데, 카메라에 찍힌 건 고래뿐만이 아니라 수면에 떠 있는 쓰레기와 기름 때였습니다. 한 해에 대략 800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쏟아져 들어가고, 그중 50 퍼센트가 해저에 누적돼 영원히 머문다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내구성. 겉보기에 깨끗해 보이는 바다 표면에도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떠다니는 게 현실. 그게 바다 생태계에 흡수돼 결국 인간에게로 돌아온다는 것.

촬영된 화면을 보면 바다 심연까지 온갖 쓰레기로 깔려 있는데요. 비닐과 플라스틱이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알갱이로 분화되고 플랑크톤과 함께 부유하다 작은 물고기들이 먹고―바닷속 플랑크톤과의 비율을 보면 플라스틱 알갱이가 50퍼센트가 넘어요―그 물고기를 큰 물고기가 먹습니다. 물고기 몸속에 들어간 플라스틱 알갱이는 물고기 몸에 흡수돼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사람은 그 물고기를 요리해 먹습니다. 이렇게 순환되어 우리 식탁에 올라오게 된다는 것을 영화는 알려줍니다.

〈플라스틱 바다〉를 통해 바다 밑바닥까지 오염된 지구를 눈으로 절실하게 목도했습니다. 죽은 새의 몸속이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것(새 한 마리의 뱃속에서 플라스틱이 200개가 넘게 나왔습니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빈민촌 아이들이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태평양의 투발루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낙원에서 쓰레기 매립지로 변했더군요.

정말로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지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지구에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하면 안 될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지낼 일이 아닙니다. ‘나만 그렇게 사나 뭐’ 하고 지낼 일이 아닙니다.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더라,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더군’ 하며 머릿속 개념으로만, 정보로만 지닌 채 살고 있을 일이 아닙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일로 여기고 지낼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 전엔 우리 쓰레기가 중국에 수입 거부되면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었잖아요. 작년에〈플라스틱 차이나(Plastic China)〉라는 다큐가 제작 상영―저는 이 다큐도 보았는데요, 온 마을이 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의 거대한 집처럼 쌓여 있고, 그것을 분리 처리하여 수입을 얻는 생업자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충격 받았어요―되고, 중국 당국이 이 영화로 인해 페트병, 비닐을 비롯한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을 중지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의 생활방식으로는 환경문제가 호전될 가망성이 미약하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더 갖고 각성해서 일상생활에 혁신을 기해야 한다는 것. 흔히 이야기되지만 잘 시행되지 않는 장바구니 사용, 일회용 용기 사용 줄이기, 비닐과 플라스틱 재질 물품 사용 줄이고 재사용, 재활용하기 같은 작은 행동부터 지켜가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많은 사람이 실천하면 갈수록, 작은 행동이지만 그 감소량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니까 말이지요.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여기를 천국으로 만들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점차 지옥으로 만들면서, 나중에 죽어 천국에 갈 생각만 한다면, 모든 종교․신앙․믿음․지식은 다 무엇인가요? 장식품, 또는 가짜 아닐까요?

 

사진출처=pixabay.com

생활공간을 손질하는 일

낡은 문이 가르친다

-조기택

언제부터인가 문이 삐걱거린다.
삐걱거리면서 열리지 않는다.
왈칵 밀치면 더욱 열리지 않는 문
달래듯 어루만지는 손길에만 흔연히 열린다.

사람들은 시원치 않은 문 바꾸라고 하지만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가르치는 문.
세상의 문은 그렇게 열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문.
때로는 깊은 속내 열어 보이듯
꽃 피는 소리에도 가만히 열리는
저 낡은 문의 가르침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한옥에 살던 성장기의 창호지 방문이 생각났어요. 저는 성장기에 한옥에도 살았고 양옥에도 살았어요. 전형적인 한옥에 살 땐 방문이 창호지여서 때가 되면 부모님이 창호지를 새로 갈무리하곤 하셨지요.

이러저런 얼룩과 뚫린 구멍이 생겨 있고 누르스름하게 변색되어 있던 창호지가 하얀 새 창호지로 반듯하게 단장되면 방을 드나드는 느낌도 사뭇 새로워지곤 했습니다. 문지방을 넘나드는 기분까지 산뜻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도시 생활에 아파트 주거가 다수가 되면서 월․전세 이동이든 재테크를 위한 이동이든 이사가 잦은 사람들이 많아 집안 손질이 예전과는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한 집에 살다 보면 손길이 어떻게 닿느냐에 따라 사람의 나이 듦에 세월과 연륜이 쌓이듯이 집의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세월과 연륜이 쌓입니다. 그 과정엔 한 집에 오래 거주하며 사는 동안 집 안 여기저기 손볼 것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돌보는 시간이 흐르고 겹치면서 마음과 정성이 담기어 사람 사이에 정이 쌓이듯 깊은 애정이 쌓이고 스밉니다. 그중에는 오래고 낡아 버리고 교체해야 할 것들이 생기고 낡았지만 내다버리기엔 망설여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세심히 들여다보고 연구하여 버리지 않고 잘 고치고 잘 살려 쓸 수 있는 경우도 적잖이 있어요. 재활용, 재사용은 물론, 새로운 아이디어로 창의성을 발휘하게도 되구요.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만 손보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데도 처분하고 곧바로 새 것으로 바꿔버리는 일도 있지만요.

사는 집과 사는 마을에 그런 깊고 오랜 애정을 갖게 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예전만큼 많지 않은 사회가 되어 있습니다. 어떻든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은, 비 오는 날은 피하고, 집 안 이것저것 수리하고 여기저기 손보기 좋은 시기.

혹시 집안 손질 미루고 있으시다면 나중에 더 큰 공사에 더 많은 비용이 들 우려가 있으니 이 좋은 때를 놓치지 않으시기를…. 꼭 새 집으로 이사 가거나, 새 가구를 장만하지 않더라도 조금만 마음 기울이면 집안 분위기를 전혀 새롭게 하는 변화가 가능한 것도 아시죠?

이규명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영어교사로 일했다. 청소년 상담센터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MBTl 강사 & 카운슬러로 활동하며 신앙인아카데미 토요영화모임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 <사그락 사그락>ㅡ <외로나무>, 번역서로 <영성으로 읽는 성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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