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다려 온 인물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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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다려 온 인물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 한상봉
  • 승인 2018.08.2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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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짐 윌리스가 쓴 <하느님의 정치>(청림출판, 2008)를 읽다가 멋진 말을 발견했습니다. 짐 윌리스는 미시간 주립대학 재학시절에 반전운동과 흑인 공민권 운동에 참여하고,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동료 신학생들과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모임을 만들고 <Post-American>이라는 잡지를 만들다가 보수적인 학교 분위기에 몰려 학교를 그만두고, 워싱턴 D.C.에서 <소저너스 (Sojourners)>라는 공동체와 잡지를 운영하며,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을 대변하는 작가입니다. 짐 윌리스는 성공회 사제인 아내 조이 캐럴과 도시빈민가에서 살고 있답니다.

리사 설리번, 믿음의 사람

짐 윌리스는 자신이 만나 최고의 운동가로 리사 설리번(Lisa Sullivan)을 꼽았습니다. 리사는 워싱턴의 아프리카계 흑인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의 유수한 비영리재단에서 일하다가 결심합니다. 여전히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거리와 유색인종 아이들에게로 돌아가겠다고 말입니다. 남다른 지성과 탁월한 리더십을 지녔던 리사는 미국 동부해안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청년들을 조직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하다가, 나이 40에 심장질환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리사의 정신적 유산은 그녀가 격려하고 훈련시킨 수많은 젊은이 속에서 살아 있습니다. 리사는 생전에 이런 말을 자주 했답니다. 사람들이 지금은 왜 마틴 루터 킹 같은 지도자가 없냐고 불평하면, 그녀는 정색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기다려 온 인물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짐 윌리스는 그녀야말로 믿음의 사람이고, 강력한 리더십과 책임감,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희망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말에는 예언자적 소명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소명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하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실제로 세상을 바꿉니다.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너 스스로 너 자신의 삶을 통하여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일꾼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늘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했던 성인들의 삶에 매료되었지만, 그런 성인들에게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왜 악을 처음부터 피하지 않고, 그것을 치료하는 일에만 매달려 있는가? 사회질서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노예들을 보살피기만 하지 말고,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성인들은?” 도로시 데이가 발견한 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너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해 그러한 성인을 실현하라.” 도로시 데이가 기다려 온 인물은 도로시 데이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니카라과의 혁명가이자 가톨릭 사제였던 에르네스토 카르데날은 <침묵 위에 떠오르는 소리>에서 “하느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갈망해 오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입니까? 교사입니까? 가정주부입니까? 아니면 화가이거나 작가입니까? 아니면 목공이거나 회사원, 철도공무원입니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렵니까?

우리가 우리를 무엇 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든지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딸이고 아들입니다. 그분이 영원에서 영원까지 갈망하던 존재이며, 그분 사랑 안에 거니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내가 그렇게 믿기만 하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예리코에서 눈먼 이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10,52)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그러니, 나는 나를 실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마틴 루터 킹이나 리사 설리번이나 도로시 데이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그리스도’가 되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인께서 말씀하셨듯이 이제 그리스도에게는 몸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 하느님께서 계속 당신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이제 몸이 없습니다, 당신의 몸밖에는.
그분에게는 손이 없습니다. 당신의 손밖에는.
그분에게는 발이 없습니다, 우리의 발밖에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눈을 통하여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발로 뛰어다니시며 선을 행하십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의 손으로 우리를 축복하고 계십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인

어떻게 내가 하느님 뜻 안에서 나를 실현하고, 그리스도가 될 수 있을까요? 먼저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도 세례자 요한이 있었고, 도로시 데이에게는 피터 모린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스승은 한 사람이기도 하고 여럿이기도 합니다. 사람이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이기도 하고, 결정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 교회가 이리도 복음적 열정이 없는 것은 교회의 지체인 사제들과 신자들이 아직 그분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생생하게 만나지 못했는데, 당연히 사랑도 열정도 없을 테지요. 거룩한 갈망을 불러일으킬 ‘어떤 만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미 스승은 왔지만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넘어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by Martin Erspamer OSB

사랑은 사랑하면서만 배울 수 있다

엊그제 가톨릭일꾼세미나에서 만난 <녹색평론> 발행인이신 김종철 선생님은 그 스승이 이반 일리치였다고 합니다. 그런 스승 한 명 만난 사람은 이미 반은 자기를 실현한 것이지요. 그 인생이 바뀌기 시작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시작이 반이라지 않습니까. 그 다음엔 뭐든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무협소설에서 제자가 스승을 만나면 제일 먼저 무엇부터 합니까? 물 긷고 밥 짓고 빨래부터 하지요.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니까요. 물 긷고 밥 하고 빨래하는 동안 근력이 생기고, 이미 수행이 시작된 것이지요.

사랑은 사랑하면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생태신학자 매튜 폭스를 스승으로 만났다면, 당장에 일회용품 안 쓰고, 대형마트 출입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재래시장에서 상인들과 인격적으로 얼굴보고 물건 고르는 재미를 맛들이는 거지요. 개신교 개역성경 식으로 말하자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겠지요.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가 기다려 온 인물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 이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18 8-9월호(통권 14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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