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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메로] 예언자는 지옥을 통과해 생명을 얻는다오스카 로메로-18

<실종된 이들의 어머니회>는 살바도르 정부의 죽은 이들과 실종된 이들의 삶을 잊혀지게 하려는 시도를 거부함으로써 생명과 죽음의 의미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전쟁동안 7만 5천 명의 사람들이 살해되었고, 이에 더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사라졌다. 어떤 이들은 후에 감옥에 있는 것이 밝혀졌고, 다른 이들은 도망갔다. 그러나 7천 명이 죽음의 부대에 의해 “실종되었고,” 그들의 시신은 악명 높은 엘 플레이온과 라 푸에르타 델 디아블로 같은 곳에 버려졌는데, 그곳에는 독수리들이 썩어가는 시체들을 파먹고 있었다.

어머니의 울음 그 자체가 고발하는 모습의 현존

실종된 이들의 어머니들이 도움을 청하러 로메로 대주교를 찾아왔을 때, 그는 어머니들에게 그들 자신의 단체를 결성하도록 격려하였다. 다른 어머니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아이들이나 배우자들이 실종되고 그대로 잊혀지는 것에 대한 거부로서 그렇게 하라고 용기를 주었다. 로메로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만큼 자기 아이의 소중함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그들은 아들을 고문했습니까? 왜 그들은 딸을 사라지게 했습니까? 실종된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울음 그 자체가 고발하는 모습의 현존입니다. 실종된 아이가 나타나기를 하늘에 울부짖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 이것은 정의의 목소리이고, 사랑의 목소리이며, 교회가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됩니다!”라는 수많은 방치된 집들의 울부짖음을 모은 소리입니다."(로메로, 강론집 3권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어머니회>로 조직된 이들은 용감한 예언자들이었다. 그들은 사랑하는 아들, 딸, 남편들이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기를 거부하였다. 그렇게 하면서, 어머니들은 죽은 사람들이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무명인으로, 테러리스트들로, 혹은 반역자들로 규정해 버리는 국가의 권력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산살바도르의 거리를 행진하였다. 그들의 사랑스러운 가족들의 사진을 들고 그들의 행방을 알려달라고 요구하며, 살인적인 국가가 체포되고 실종된 사람들의 삶이나 죽음에 대하여 거짓의미를 부여하거나 결론을 내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포하였다.

생명의 담지자로서 어머니들은, 생명을 빼앗아간 이들과 대면하였다. 비극 한 가운데에서, 어머니들은, 그들 가족의 부서진 시신들을 다시 거룩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죽음과 고문만이 아니라 사랑과 기억의 공간을 열었고, 이 기억은 죽음의 저자들에 대한 저항을 형성시켰다.

정의를 위하여 모험을 무릅쓰는 사람들

로메로는 사람들의 필사적인 요구에 대한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해결책의 필요를 말하는 역동적인 평화를 추구하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출현에 불을 지폈던 조건들보다 더 폭력적인 종속 상태를 전쟁의 결과가 다시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견하지 못했다. 또한 백성들이나 국가 경제가 국제적인 채권자들에 의존하게 되는 경제적 노예화도 보지 못했다. 그가 본 것은 그의 백성들의 정신이었다. 그가 자기생명을 걸었던 것은 너무나 창의적인 하느님의 말씀이었고, 이 말씀은 죽음 자체에 도전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말씀이었다.

로메로의 영성은 그의 생명이 충실함의 대가가 되었을 때 온전하게 드러났다. 생명과 죽음 사이의 역동적인 긴장 속에서, 결단은 철저하게 명료하고 투명하다. 브라질의 교육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말한다: “삶은 모험이다. 모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나는 존재 할 수 없다.”

정의를 위하여 무척이나 모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은 생명을 빼앗기더라도 점점 더 활력을 갖고 생생하게 살아있게 된다. 활발하게, 빛나게 살아 있었던 오스카 로메로의 정신은 살아있는 기억이다. 기억은 모두를 위한 정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무릅쓰는 역동적인 초대를 지니고 있다.

로메로는 생명 없는 죽음을 믿지 않았다

기억은 불평등이나 어떤 특권도 거부하는 사랑의 비전이다. 로메로는 예수 정신에 대한 기억을 낙오된 사람들과 “반역자들” 사이에서 발견하였다. 그 기억은 로메로가 자기 삶을 변화시키도록 만들었다. 그의 예언자적인 용기는 순회하는 랍비로, 농민들의 옹호자요 우상들의 고발자로, 신성모독자로 그리고 폭도로서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새로운 생명에 일으켜진 사람을 따랐던 가난한 사람들의 영, 정신 속에 뿌리를 두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로메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난 예수의 부활을 믿었다. 그러나 대교구의 목자로서, 그는 백성들과 자기 자신의 부활까지도 믿게 되었다. 그는 명료했다: 그는 생명 없는 죽음을 믿지 않았다. 실상, 그는 더 이상 죽음을 믿지 않았다. 그의 영성은 백성들의 끊임없는 죽음에 대한 거부와 위협에 대한 저항을 경험했을 때에 변화되었다.

“하느님의 다스림은 이미 우리의 지상에서 신비 속에 현존한다. 주님께서 오실 때, 하느님의 다스림은 완성을 이룰 것이다.”(기쁨과 희망, 39항)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희망입니다. 우리는 사회를 더 좋게 하는 모든 노력을, 특히 불의와 죄에 너무나 깊이 물들어 있는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모든 노력을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고, 그분이 원하시며,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브록크만, <교회는 여러분 모두입니다- 대주교 오스카 로메로의 사상>, 1984년)

이러한 저항은 일상적인 경험과 대면하며 터져 나왔다. 지옥을 통과하는 여정을 가고 있는 백성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살바도르의 가난한 사람들은 생명을, 삶을 사랑했지만 그보다 서로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국가의 무기를 - 죽음 그 자체를 거부하였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명을 지키면서 죽은 교리교사들이나 군대의 위협과 테러의 거짓 화해 시도를 고발했기 때문에 공격의 대상이 된 사목요원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로메로는, 더 이상 죽음이 이런 정신을 죽일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그의 백성들의 예언자적인 선택 때문에 예언자가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죽음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 우리의 생명의 정신은 우리 모두를 초월한다는 선택이었다. 죽음은 더 이상 그의 숨을 앗아갈 수 없었다. 비록 군대가 공포스러운 박해를, 민중의 지도자들을 산채로 피부를 벗기고, 목을 베며 아기들을 태워버린다 해도. 오스카 로메로는 그를 포위하고 뒤쫓으며 절망을 요구하고 공포로 마비시키는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 때에도 점점 더 차분하게 불의를 고발하였다.

[원출처] <오스카 로메로-삶과 글에 관한 성찰(1917~1980)>, 마리 데니스, 레니 골든, 스코트 라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11월호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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