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머리 신학에서 현장으로, 변방으로 가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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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머리 신학에서 현장으로, 변방으로 가는 교회
  • 한상봉
  • 승인 2018.08.15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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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22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와 가진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좋아하는 교회상은 ‘거룩하고 충실한 하느님의 백성’의 이미지라며, “어떤 사람도 고립된 개인으로서 홀로 구원받지 않으며, 하느님은 인간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관계의 그물망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역동적으로 참여하며 들어오신다.”고 말했다. 교황은 자신 역시 “이런 백성의 일부로 존재한다.”며 백성들과 주교들과 교황 간의 대화가 이러한 맥락을 따라 성실하게 나아갈 때에 성령께서 돕는다고 말했다.

 

사진출처=pixabay.com

신학자 아니라 백성에게 물어라

이처럼 교황은, 우리는 뭐든지 하느님 백성인 교회와 함께 생각해야 하는데, 이것은 굳이 ‘신학자’들의 영역일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모 신심과 관련해 “마리아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신학자에게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마리아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라면서 “‘교회와 함께 생각하기’를 단순히 교계 관계자들과 함께 생각하는 것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황은 모든 하느님 백성의 무류성(無謬性)을 ‘인민주의’처럼 생각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면서,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사목자들과 백성들이 함께 이루는 것”이라고 전했다.

덧붙여 교황은 하느님 백성 안에서 ‘일상의 거룩함’을 강조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여인, 생계를 위해 일하는 남자, 많은 상처를 지녔지만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노인 사제들, 그들은 주님을 섬겼기 때문에 웃을 수 있다.”며, 열심히 일하면서 숨겨진 거룩함을 사는 사람들의 ‘대중적인 거룩함’을 언급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선택된 몇 사람을 위한 집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풍성한 집이다.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하는 이 교회는 선택된 작은 그룹의 사람들만을 품을 수 있는 그런 작은 경당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집입니다. 우리는 보편 교회의 품을 우리의 미지근함을 보호해 주는 어떤 둥우리 정도로 축소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어머니입니다. 교회는 풍성한 곳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교회의 사목자들이나 봉헌된 남성, 여성들에게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게 될 때 저는 먼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기 열매 맺지 못하는 미혼 남자가 있구나.’ 또는 ‘미혼 여자가 있구나!’ 그들은 영적인 생명을 줄 수 없다는 의미에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닙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수도자는 예언자로 부르심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 교황으로서 ‘수도자의 명확한 자리’에 대해서 답변했다. ‘수도자는 예언자’라고 한마디로 말하는 교황은 “아버지 하느님께 순명하고, 가난과 공동체 생활, 정결을 통해 예수님의 삶을 모방하며 그분을 따르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수도자”라고 말했다.

“수도자들은 특히 예수님이 지상에서 어떻게 사셨는지 자신의 삶을 통해 표현하면서 하느님 나라가 어떻게 완성되는지 선포하는 예언자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수도자는 절대로 예언 직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교계 제도에 반대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비록 예언 직분이 요구하는 것과 교회 구조가 일치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수도자들의 서원은 ‘서투른 모방이나 웃음거리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만약 그렇다면 “공동체 생활은 지옥이 되고, 정결은 열매 맺지 못하는 총각들의 삶의 방식이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수도자들이 예언 직분을 수행하면서 “예언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때때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을 내포한다.”고 말했다.

“예언 직분은 시끄럽고 소동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난장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수도자들의 카리스마는 누룩과 같습니다. 예언 직분은 복음의 정신을 선포합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책상머리 신학과 관료주의 교회 No!
현장 중심, 변방 중심의 교회 Yes!

끝으로 교황은 가톨릭 신앙이 ‘연구실 신앙’이 아니라 ‘여정의 신앙’이며 ‘역사적 신앙’이라고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역사’를 통해 계시하셨지, 추상적 진리로 계시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황은 우리가 처한 문제를 연구실이나 집으로 가져가서 길들이고, 페인트칠하는 것은 “상황에서 벗어난 행동”이라면서 “우리는 변방을 집으로 가져갈 수 없으며, 경계선에 살아야 하며, 창의적이고 대담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예수회 총장이었던 아루페 신부의 말을 인용하며 “어떤 사람이 가난을 경험하지 않았고, 가난한 현장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면, 가난에 관해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러므로 교황은 ‘가난한 변방의 상황에 끼어들기’를 요구했다.

“변방은 많은 곳에 있습니다. 병원에 살고 있는 수녀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변방에 삽니다. 저는 그들 중의 한 수녀 덕분에 살았습니다. 병원에 폐 질환으로 입원했을 때 의사가 페니실린과 스트렙토마이신 항생제를 처방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간호했던 담당 수녀가 약을 세 배로 썼습니다. 수녀는 대담하게 민첩한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온종일 아픈 사람들과 있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던 것입니다.”

교황은 ‘실효성 있는 신앙’을 요구한다. 교황은 의사가 좋은 분이었지만 연구실에만 지냈기 때문에 상황에 따른 제대로 된 처방을 할 수 없었고, 수녀는 삶의 현장인 변방에 살았기 때문에 위급한 순간에 적절하게 처방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교황은 “변방을 멀리한다는 것은 그냥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말하고, 연구실에 우리 자신을 가두는 일”이라며, 물론 연구실은 필요하지만, “우리의 성찰은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안위를 떠나 용기를 갖고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변방’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따르도록 요청받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예수의 일흔두 제자들도 선교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기쁨을 경험했다면서, “이 기쁨에는 언제나, 길을 떠나서 복음을 전하고 자기 자신을 떠나 좋은 씨앗을 뿌리며 끊임없이 나아가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교황은 “스승을 충실하게 본받으려는 교회는 오늘날 세상에 나아가 모든 이에게, 모든 장소에서, 온갖 기회에,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말과 행동으로 다른 이들의 일상생활에 뛰어들어 그들과 거리를 좁히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자신을 낮추며, 인간의 삶을 끌어안고 다른 이들 안에서 고통 받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을 어루만집니다. 따라서 복음 선포자들은 ‘양들의 냄새’를 풍기고, 양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알아듣습니다.” - <복음의 기쁨> 24항

 

사진출처=pixabay.com

프란치스코 교황의 현장 중심, 변방 중심의 교회론은 특히 책상머리 신학과 관료주의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2013년 7월 28일 브라질 방문 중에 교황은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CELAM)에서 연설하면서, 교회는 복음 메시지를 이데올로기로 바꿔 놓으려는 유혹, 교회를 사업체처럼 운영하려는 유혹, 그리고 성직자 중심주의의 유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교황은 특히 “기능주의(functionalism)가 교회를 마비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교회의 관료적 기능주의가 “길 그 자체에 관심을 갖기보다, 길 위에 난 구멍을 보수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회 기능주의는 교회 안에 ‘신비를 위한 여지’를 남겨 두지 않고, 오직 교회 운영을 위한 ‘효율성’만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이 흔히 겪는 ‘유혹’이다. 교황은 이들의 관료적 태도를 문제 삼으며 “이들은 교회를 하나의 비정부단체(NGO)쯤으로 격하시킨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이런 교회 관료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양적 결과와 통계 수치뿐”이라며 “나는 교회가 여느 사업체처럼 운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 자리에서 ‘성직자 중심주의’를 주교와 사제들이 갖기 쉬운 마지막 유혹이라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주 평신도들도 이 유혹에 연루되어 있다.”면서 “사제들은 성직자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하면서 평신도를 아랫사람처럼 다루지만, 평신도는 내심 이게 편하기 때문에 성직자 중심주의의 대상이 되기를 자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상당수의 평신도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이 주는 자유와 성숙함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성직자 중심주의가 온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평신도의 자유’는 “공동체적 경험 속에서” 성숙해지며, 이런 평신도의 자율성을 높이려면 라틴아메리카에서 실험되고 있는 성경 공부 모임과 그리스도교 기초 공동체가 발전하고, 사목회의에 대한 평신도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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