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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재앙, 지구의 종말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

[김지환 칼럼]

얼마 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2135년에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소행성 베뉴를 핵폭탄으로 제거하는 방안을 짠다는 소식을 들었다. 베뉴가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2,700분의 1이지만, 직경 500미터로 지구와 충돌하면 엄청난 파국을 몰고올 것이라 한다. 이렇듯 혜성이나 소행성과 충돌로 인류의 종말을 걱정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하지만 지금 인간의 행태를 보면, 소행성 이전에 스스로 종말을 불러오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많다.

상처입은 지구 ‘공동의 집’

2100년 지구 멸망설 시나리오에 낙심했던 영화감독이자 작가, 국제환경보호단체 콜리브리의 공동 창업자인 시릴 디옹과 프랑스의 배우이자 영화감독,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멜라니 로랑은 영화제작 후원금을 모으고 함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내일(Demain)>을 만들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도 만들어졌다. 이렇게 지구 환경의 위기상황을 호소하는 목소리들에 많은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곤 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의 폭염은 기후변화에 대해 이제는 넋놓고 있을 때가 아님을 실감나게 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폭염도 그렇고, 얼마 전 엄청난 플라스틱 대란도 그렇고, 이제 우리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우리 ‘공동의 집’ 지구가 우리를 내치기 전에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이아는 로마 신화의 테라, 텔루스에 해당하며 '대지의 어머니 여신'으로 통한다

가이아와 생태적 회개

제임스 러브록이 쓴 생태주의의 고전 <가이아>에 따르면, 지구는 살아 있는 하나의 초거대 유기체다.

“가이아는 생물권뿐만 아니라 대기권·수권·암석권 등 지구의 모든 요소가 포함된 하나의 복합적 실체다. 홀론으로서 가이아는 항상성(homeostasis) 메커니즘을 갖는다. 인체가 발열이나 발한을 촉진해 체온을 조절하듯, 가이아도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처를 취하면서 지구 환경의 변화를 일으킨다.”(맹영선, 「살아 있는 지구 가이아」, <가톨릭평론> 16호-7-8월호, 168쪽)

그러니까 가이아 이론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겪는 재앙은 지구의 자정 작용인 셈이다. 1984년에 만들어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가이아 이론을 잘 설명해주는 애니메이션이다. 먼 훗날 지구에서는 독성물질 때문에 사람들이 방독면을 쓰고 다니는데, 나중에 주인공 나우시카는 그 독성물질이 자연 스스로 치유하고 정화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것임을 알게 된다.

이런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면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파국의 상태는 ‘지구의 멸망’이 아니라, ‘인류의 멸망’이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완전히 파탄나는 것이다. 제임스 러브록은 이렇게 무거운 메시지를 전해준다. “가이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처방은 아무것도 없으며 또 정해진 규칙도 없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그 나름대로의 결과가 있을 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사적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인간 자신만이 주인이라며 온갖 패악질을 해댄 것에 대한 ‘생태적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내적인 광야가 엄청나게 넓어져서 세계의 외적인 광야가 점점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환경 위기는 깊은 내적 회개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신심이 깊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부는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를 내세워 환경에 대한 관심을 우습게 여기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 일부는 수동적이어서 자신의 습관을 바꾸려는 결심을 하지 않고 일관성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생태적 회개입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만남의 결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성덕 생활의 핵심이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 체험에서 선택적이거나 부차적인 측면이 아닙니다.” (『찬미받으소서』 217항)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념비적 문헌의 메시지는 교회 차원에서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지금 우리가 맞닥트린 현실의 핵심을 길어낸다. ‘생태적 회개’란 우리 삶에서 어떻게 구현될까? 이는 생태계를 망가뜨렸던 ‘익숙한 것과 결별’이며, 다른 삶의 양식으로 전환을 촉구한다. 지금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는 ‘부활의 삶’과 맥을 같이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생태적 회개는 가슴을 세 번 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뼈아픈 의식의 각성과 뼛속 깊은 실천을 요구한다. 더 많은 ‘깨어 있음’과 더 많은 교육이 절실하며, 지금 당장 크고 작은 많은 일을 몸에 새기다시피 해야 한다.

일단 거시적 차원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의 상품을 철저히 불매운동하여 친환경이야말로 기업이 살 길임을 절실히 깨닫게 해야 한다. 핵발전소 문제에서도 드러낫듯 이런 문제는 언론의 폐해와도 깊게 관련되어 있다.

언론은 환경을 파괴하는 세력과 이익을 공유하며, 온갖 패악질을 은폐하기 일쑤다. 따라서 환경생태의 문제는 언론개혁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울러 반 환경세력과 정치가의 카르텔을 고려하면, 이는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환경 문제는 이처럼 우리를 둘러싼 사회 제반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시민적 각성을 수반하는 문제다.

커다란 문제 못지않게 우리 삶의 모습을 간과할 수 없다. 요즘 벌어지는 아주 사소한 모습을 스케치해보자. 어떤 기사를 보니 카페에 가서 1회용 컵에 담아 달라며, 누가 마셨던 컵은 비위생적이지 않냐고 한다. 이에 대한 댓글이 재미있다. 카페 머그잔이 비위생적이면, 누가 먹었던 식기와 수저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당에도 가지 말지어다.

냉장고에는 음식물이 썩어가고 있다. 남한에서 버리는 음식물쓰레기 양이 북한의 식량 양에 맞먹는다고 한다. 제3세계 어느 나라에서는 영양 부족으로 심각한 질병을 앓거나 굶어 죽어간다. 과자 하나를 사는데도 비닐봉지에 담아간다. 우리나라가 비닐봉지 사용 세계 1위란다. 너나 할 것 없이 두 번 쓸 것 한 번도 줄여도 팍팍 줄어들 것이다.

그밖에도 세심하게 살펴야 할 일은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는 왜 그리 유난스럽냐며 비아냥거릴 테다. 환경 생태의 위협을 걱정하면서도 삶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는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불편한 것을 감내하기 힘들어한다. 요즘 벌어지는 환경위기에 대한 걱정은 오늘 할지언정, 구체적 행동은 내일로 은근슬쩍 미뤄둔다. 이러고도 지구 ‘공동의 집’에서 안락한 삶을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지구의 경고는 어쩌면 이제 다른 삶으로 향하는 기회다. 이전까지 나와 타자를 가르고 타자를 착취했던 문명에서 세상 모든 것이 다 깊게 연결되었다는 종교의 근원적 가르침을 각성하는 기회다. 또한 생태적 회개를 통해 이 세상에서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기회다. 이제 인류는 갈래길에 서 있다. 다음 단계로 진화하던가, 아니면 멸망하던가.

김지환 파블로
출판노동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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