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춥고 외로우며, 신산하고 서글픈 예언자로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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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춥고 외로우며, 신산하고 서글픈 예언자로서의 삶
  • 양승국 신부
  • 승인 2018.07.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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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 묵상]

혹시 이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하겠습니까? 나이는 16세, 아직도 또래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갑자기 그분께서 부르셨습니다. 아니 그분께서 던지신 그물에 걸려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
“내가 너를 선택하였다! 가거라.”
“네? 가기는 어디로요?”
국회의사당으로!”
“아니, 아직 저는 학생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제가 거기 가서 뭘 하라고요?”
“가서 그들의 비리를 고발하여라! 백성들의 주린 배는 뒷전이고, 자신들 배만 채우기 위해 골몰하는 거짓 지도자들의 악행을 낱낱이 밝혀라!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제 힘만 믿고 설쳐대는 그 사악한 자들에게 멸망을 선포하여라!”

너무나 당혹스런 나머지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이제 중3입니다. 머리에 든 것도 없고, 말주변도 없습니다.” 너무나 기가 차서 “다른 사람을 찾아보십시오. 저는 절대 안됩니다.”하며 도망을 가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도망가 봐야 그분 손바닥 안입니다. 탁자 위에 놓여있는 작은 인형 하나 돌려놓듯이, 하느님께서는 즉시 원위치 시키실 것입니다. 눈물을 머금고 국회의사당으로 갔습니다. 정문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힐 것입니다. 경비 업무를 보는 분이 야단을 칩니다. “학생이 지금 학교에 있지 않고 왜 여기 있는가?”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장에 잠입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기가 팍 죽었습니다. 다들 한 가닥씩 하는 사람들, TV 화면에서나 볼 수 있는 난다긴다 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있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비호처럼 단상에 올라 서서 마침내 외쳤습니다. “여러분! 빨리 회개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들의 악행 때문에 진노하셨습니다! 그릇된 길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서십시오!”

앉아있던 사람들은 다들 웃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웬 또라이가 하나 나타나서 떠들어대지? 날씨가 너무 덥다 보니 맛이 갔구먼! 빨리 저거 끌어내!” 

 

노회찬 의원 영결식장에서. 사진=한상봉

위대한 대 예언자 예레미야의 삶이 그랬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에 예언자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아, 거절합니다.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을 모릅니다.”(예레 1,6) 

그러나 주님께서도 단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저는 아이입니다.› 라고 하지 마라.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 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예레 1,7) 이렇게 예레미야는 울며 겨자먹기로 예언직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선포하라고 하신 예언의 말씀을 유대 고관대작들, 유대 의회 의원들, 지도자들에게 건네자, 즉시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이요, 물벼락, 욕설이요 악담이었습니다. 예언자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던지, 어느날 그는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 빚을 놓은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는데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예레 15,10)

예레미야는 원래 착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남들처럼 이웃들과 어울려 평범하게 살아가는 서민적 삶을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를 당신의 도구로 선택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선포하라고 건네시는 예언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위선자들에 대한 신랄한 고발, 조국의 처절한 파괴와 멸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뿌리채 뽑히고, 산산히 허물어지는 과정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완전히 파멸된 그 위에 주님께서는 새로운 이스라엘을 재건하실 것임을 선포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소명이 너무나 벅차고 힘겨웠던 예레미야 예언자는, 때로 자신을 부르신 주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멀리 도망가고도 싶었지만, 결국 우리 인간은 옹기장이이신 주님 손에 들린 옹기라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진정한 예언자로서 거듭납니다. 주님께서 주신 예언의 말씀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백성들에게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예언자들의 운명은 본래 그렇게 춥고 외로우며, 신산(辛酸)하고 서글픈 것인가 봅니다.

우리는 최근 또 다른 한 예언자의 슬프고 혹독한 운명 앞에 크게 슬퍼하고 있습니다. 평생토록, 일관되게, 우리 시대 가장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한 든든한 후원자로 살아오셨던 분, 위선자들과 삯꾼들에게는 단호하고 준엄한 예언자로서 살아오셨던 그분을, 자비하신 주님께서 따뜻히 당신 품에 안아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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