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도 우리처럼 배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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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도 우리처럼 배우셨다
  • 미건 맥켄나
  • 승인 2018.07.1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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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가 넘치는 그리스도-6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1코린 1,24)

소년 그리스도는 어른 그리스도의 무한하고 심오한 지혜를 지니며, 성숙한 거룩함과 무한한 연민을 지닌다. 또한 이 소년 그리스도는 성전에서 부모를 잃어버린 채 원로들을 가르치고 아버지 하느님의 지혜의 역할을 한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과월절 축제를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고 있는 도중이다. 과월절에는 이집트의 노예살이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되는 중추적 이야기를 기억하고, 이스라엘 종족이 충실하신 하느님 야훼의 선택된 백성으로 모인 것을 기념한다. 이때 예수님은 열두 살로서, 유다 공동체에서는 자유롭게 유다의 전통, 율법, 희망 등을 받아들일 수 있는 때이다. 이 성전에서의 일화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축제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 다녔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루카 2,43-47)

루카 사도는 이전에 아기가 태어난 후 마리아와 요셉이 율법에서 요구하는 대로 성전에 가서 모든 예식을 다 치렀다고 묘사하였다. 그리고 나서 부모는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고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39-40). 아기는 12년 동안 성숙해지고, 배우며, 점점 발달해 갔다.

아기는 그의 마음 속에, 영혼 속에, 영 속에 하느님의 지혜, 진리, 지식과 현존을 간직하였다. 그것은 선조들의 지식이고 전통, 영감,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경험의 통합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런 아기가 살이 되신 말씀이며 우리 가운데 살아계시고 모든 이가 보고 들을 수 있는 은총과 진리로 충만한 존재임을 다시 상기한다.

 

La Découverte du Sauveur dans le Temple, de William Holman Hunt.

예수,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

예수님의 유년기에 있어 성전의 이 순간은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어떤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분은 언제나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1코린 1,30)이다. 배우고 젊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때이지만, 그분은 또한 하느님의 지혜를 드러내고 있다. 그분의 인격이 성숙해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잠언서에서 그분의 인성은 매우 즐겁게 묘사되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나는 한 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그분께서 위의 구름을 굳히시고
심연의 샘들을 솟구치게 하실 때,
물이 그분의 명령을 어기지 않도록
바다에 경계를 두실 때,
그분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나는 그분 곁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나는 그분께서 지으신 땅 위에서 뛰놀며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잠언 8,22-23. 27-31)

이분은 삼위일체의 인성으로서 우주를 만드는 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존재이다. 아버지 하느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 그분의 영은 즐겁고, 창의적이며, 참여하는 영이다. 그리고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항상 더 많이 보고 싶고, 놀고 싶고 “선하다”고 선포하며 먼저 경험해 보는 존재이다. 이분은 삼위일체의 젊고 활기가 넘치며 영원으로부터 존재하는 그리스도이다. 또한 동시에 싱싱하고 활력이 넘치는 예수님으로, 배우고 몰입하며 우주의 창조자가 만드는 경이와 놀라운 일을 감사하는 존재이다.

새롭게 발견되고 표현되는 지혜, 영감, 이해로 넘치는 이 어른 아기가 우리들을 바라본다. 우리들을 알며 모든 생명체와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것과 똑같은 깊이와 열정을 갖고 우리들의 마음 속에, 정신 속에, 영혼 속에 파고 들어온다. 그분의 지식과 지혜는 심연의 바다처럼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한다면, 위의 잠언 구절 그 다음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아들들과 딸들아, 내 말을 들어라.
행복하여라, 내 길을 따르는 이들!
내 교훈을 들어 지혜로워지고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
행복하여라, 내 말을 듣는 사람!
날마다 내 집 문을 살피고
내 대문 기둥을 지키는 사람!
나를 얻는 이는 생명을 얻고
주님에게서 총애를 받는다."
(잠언 8,32-35)

날마다 배우며 성장하고

그렇지만 예수님은 아직 어리다. 그의 부모는 걱정한다. 그를 성전에서 발견한 부모는 놀란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꾸지람을 듣는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당연하게도, 부모는 예수님이 성전에 남아 배우고, 그분과 함께 있는 성령의 힘에 의해 배우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화를 내고 있는 장면은 예수님이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예수님에게는 하느님의 힘이 있었다. 예수님의 대답은 집을 떠나 가족과 부모와의 관계로부터 분리된 삶을 추구하고 있는 어른의 대답처럼 들린다. 예수님의 대답은 퉁명스럽기조차 하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루카 2,49-50).

임마누엘 그리스도, 하느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존재는 젊은 예수님의 살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 모습은 구약에서 가장 빈틈없고 기민한 예언자들의 모습처럼 발달되어 간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분 안에서 비밀스럽게 형성되고 있는 관계를 보여준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살고 있지만 동시에 그분의 아버지 하느님과 사는 동안 내내, 매일 매해 형성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그분의 부모는 알지 못한다. 우리도 알지 못한다. 어떻게 한 아이가 지식을 얻기 위해 애쓰며 기도, 율법, 전통, 시편, 또한 그의 나라와 민족의 유산을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 또한 이 모든 것을 성경과 지혜의 보호아래 어떻게 통합하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그분이 가르침을 시작할 때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예수님은 인간 아이로서도 더 많이 배워야 하고, 시대와 자리에 맞갖은 어른이 되어 가기 위해서도 더 배워야 한다. 그분은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집에 돌아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낸다. 이것 자체가 놀라움이다–지혜의 아드님이 인간 부모에게 순종한다, 겸손하게 그분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배우고 있다.

그리고 성경은 단지 한 문장으로 이때로부터, 열두 살의 예수로부터 삼십 살이 되어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까지의 삶을 표현한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 2,52). 이 구절이 예수님을 일생 내내 가르쳤던 내면의 성령과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수련을 말해준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인 이 인성 앞에 앉도록 초대받고 있다. 그리고 이분에게서 지혜와 거룩함, 젊고 즐거우며 하느님의 관점으로 모든 역사와 온 우주를 보는 존재, 모든 것을 그분의 손에 붙잡고 있는 분, 그분의 자비 안에 우리를 계속 살아있도록 해주시는 분, 그리고 우리가 사는 동안 내내 가르치시는 분으로부터 훈련을 받도록 요구된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에, 살이 되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올바른 자리를 찾아보고 우리 아버지의 집에 살며,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자 한다면 침묵과 그분의 요청하는 눈길에 주의해야 한다. 그분의 눈은 우리가 얼마나 적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 말씀에게, 모든 지식 밑에 있는 중요한 원칙에 “순종하도록” 요청받는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3). 우리는 하느님 앞에 있고, 하느님은 이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출처] <자비가 넘치는 그리스도>, 미건 맥켄나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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