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거처에 짐승의 먹이로 오신 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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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거처에 짐승의 먹이로 오신 메시아
  • 미건 맥켄나
  • 승인 2018.07.0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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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가 넘치는 그리스도-4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요한 1,5)

인간 아기가 탄생한다. 그렇지만, 삼위일체의 성자, 하느님의 거룩한 존재의 탄생이기도 하다. 육화의 신비, 인간의 살과 피를 입은 하느님의 신비, 어둠에 싸인 세상에 빛이 오고 있다. 별이 빛나는 하늘아래 어느 동굴 안에 이 모든 신비가 현존한다. “동굴 안에 있는 낙원.” 아기는 보통 아기가 아니다. 의로움과 정의의 아들이다.

동굴은 영광의 불꽃에 의하여 그슬린다. 이 한 밤중에 별이 동굴 위를 맴돌고 있다. 새로 태어나신 왕을 찬미하며 가장 온유하고 고요한 부부가 동굴 속에 아기와 함께 있다. 이곳이 바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엄한 사건을 증언하기 위하여 우리가 초대받은 자리이다. 아기의 현존 앞에서 우리는 정적과 고요 속에 머문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
(이사 9,5)

아기의 탄생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어둠 속을 걷던 사람들”이 이제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이 밤은 해방과 자유의 밤이다. 희망과 정의가 수확을 거두는 밤이다. 기뻐하고 슬픔을 벗어난 노예살이의 멍에를 던져버리는 밤이다. 평화가 넘치고 온 세상이 한데 모여 동굴에 가까이 간다. 부모는 아기의 침상 옆에 무릎을 꿇는다. 외양간에, 여물통. 아기는 짚더미 위에 누워있다, 포대기에 싸인 채. 예언자 이사야의 말대로, “야훼 하느님의 열정적인 사랑이”(이사 9,2) 지상의 사람들을 위하여 하시는 일이다.

 

by 안드레이 루블료프

외양간의 부모와 아기의 세 모습은 삼위일체의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요셉은 무릎을 꿇고 세상의 빛인 아기에게 몸을 굽힌다. 이 아기가 신체적으로 자랄 때까지 있을 곳을 마련해 주는 사람. 그렇지만 아기는 이미 어른이다. 하느님의 아들의 몸, 구원자이며 해방자, 모든 인류의 운명을, 삶과 죽음 모두를 충만하게 나눌, 여인에게서 태어난 몸.

구유는 고문과 죽음의 도구, 십자가와 똑같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아기는 어느 날 그의 죽음의 수의로 쓰여질 헝겊에 싸여있다. 아기는 음식이다. 양과 소가 먹는 여물통 안에 조심스럽게 뉘여 있다. 지금 이 순간 아기는 요셉에게 아버지이다. 이것은 아기가 지상에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안 요셉이 아버지로 존재하는 것과 똑같이 확실한 사실이다.

여인은 손을 뻗쳐 아기의 몸을 만지면서 무릎을 꿇는다. 그렇지만 여인은 이 아기가 자신만의 아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아기는 세상에 속한다. 수세기 동안 미움, 악, 전쟁 그리고 물론 죽음의 어둠을 몰아내 줄 빛을 기다려왔던 만국과 사람들에 속한다. 여인은 처녀이다. 아기의 생명을 탄생시켰지만 이제는 여인을 만든 창조자로서의 아기를 경배하며, 장차 믿는 이로서 아기를 십자가와 부활에까지 따르는 것을 배우게 될 젊은 여인이다. 아기는 이 처녀에게 어머니가 될 것이다. 여인이 그를 탄생케 했고 그의 약함과 필요를 채워주는 어머니가 되는 것과 똑같이. 하느님의 말씀인 아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여인에게 넘치도록 줄 것이며 살과 피의 한계를 넘어서는 생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아기–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고통과 기쁨, 우리의 낮과 밤, 우리의 은총의 가능성, 그리고 우리의 죽음까지도 나눌 것이다. 아기의 몸이 누어있는 이 동굴과 외양간은 제단이요, 식탁이며 왕좌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살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는 자리이다(요한 1장). 갇힐 수 없지만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가난해지고 보잘 것 없이 된 하느님, 우리들 사이에 형제로서 온 우주의 주인으로 오신 하느님, 그리고 이제는 가장 높으신 하느님의 부드러운 자비로서, 하인들 가운데 하인이 되신 겸손한 하느님.

그런데도 이 역사적인 순간 속에 아직도 숨어있는 어떤 것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한다. 하늘이 열리고 무엇이 드러났는가? 아기, 하느님이 살로서 그분을 보여준다. 외양간, 구유, 짚 가난, 추위, 어둠–이런 것들이 거룩한 선물의 배경을 만들고 있다. 이 아기를 통하여 하느님은 영혼에게 그분의 최고의 메시지를 전한다 –성령이 인간의 영에게–그러나 인간의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외양간 바깥의 들판에는 천국이 열리고 목자들은 그들 주위에서 온통 음악과 빛이 빛나는 것을 보기 위하여 두려워하며 하늘을 쳐다본다.

그러나 외양간 안에서는 그 똑같이 놀라운 상황과 가장 가까이 마주치게 된 우리들은 매우 단순하고도 낯익은 방식으로–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냥 떠오르는 것 같은 방식으로 이 경이로운 사건 앞에 있다. 한 아기–그냥 그것뿐이다.

때가 이르는 순간을 알려주는 별이 있다. 별은 또한 왕이 들어서는 궁전의 문으로서 그 자리를 표시한다. 동방의 현인들, 그들은 밤하늘에서 지혜를 구하는데, 별을 따라가며 지상에 숨겨진 빛나는 빛에 도달한다. 그들은 인간이며 거룩한 존재인 아기의 눈에서 빛나는 하느님의 지혜를 알아본다. 별은 천사의 목적을 달성한다. 볼 눈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하느님을 찾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꿈의 목표에 기여한다.

베들레헴은 에덴동산을 열었다. 이제 가서 우리들이 볼 차례이다. 우리는 숨겨져 있는 기쁨을 발견한다. 자, 함께 가서 외양간 안에 있는 낙원을 차지하자. 물을 주지 않은 뿌리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용서가 꽃을 피운다. 파지 않은 샘이 발견된다. 그곳에서 처녀가 아기를 낳는다. 그리고 아담과 다윗의 갈증을 곧장 그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제 태어난 아기, 영원으로부터 존재하는 하느님을 만나러 가자.

동굴에서 탄생과 죽음이 만난다. 희생의 제단과 잔칫상은 하나다. 그리고 하느님의 어린 양이 우리들의 죽음과 어둠의 밤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오고 있다. 이곳 동굴, 태중, 무덤, 묘지에서 하느님과 인간이 다시 한 번 사랑 속에 만난다. 이것이 바로 자기비움이다. 자기를 비우는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기 위하여 그분을 낮추고, 십자가의 죽음까지 받아들이며 신비 속에 깊숙이 묻히셨다. 그렇지만 별은 어느 날 부활이 터져 나오고 죽음을 모르는 생명이 올라오는 영광을 말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함께 가까이 다가오고 정의와 자비가 우리 가운데 살과 피로 존재한다.

와서 그분을 경배하자. 와서 그분 앞에 무릎을 꿇자. 밤의 별들처럼 우리의 하느님 앞에 와서 침묵하자. 두려움으로 그분께 다가가자.

그리고 육화와 세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이 빛에 절하고 머물자. 이 빛이 점점 커지고 강해져서 영원히 어둠을 뚫고 타오르도록 간직하자. 

[출처] <자비가 넘치는 그리스도>, 미건 맥켄나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1년 9월호

안드레이 루블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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