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이해하려면 ‘사회교리’를 공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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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이해하려면 ‘사회교리’를 공부하라
  • 한상봉
  • 승인 2018.07.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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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그리스도인이란 자신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견주어 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그분의 운명을 나의 운명으로 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성인들 가운데 예수님만큼 불행했던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노동자 출신의 나자렛 사람 예수는 평생 호강을 누려보지 못한 채 유대인들이 ‘저주받은 형상’이라고 부르던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분을 어리석은 실패자라고 불렀을지도 모릅니다. 눈치도 융통성도 없는 고지식한 사람으로 보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사회교리는 그런 예수님의 사랑을 조목조목 간추려 놓은 교회문헌입니다. 예수님께서 진공 속에서 살지 않으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파란만장한 삶을 젖혀 두고 복음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 복음이 먼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생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처럼, 귀하신 임금님이 천한 노예의 형상으로 오셨던 것처럼, 당신의 내리사랑을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45)고 고백한 예수님을 우리는 사회교리 구석구석에서 발견합니다. 그분의 다정한 손길을 갈피마다 새록새록 느낍니다.(이상은 <내가 그 사람이다> 머리글에서)

 

by Meinrad Craighead

사회교리를 상식처럼 노래 부르기 희망한다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는 ‘별책 부록’이 아닙니다. 알아도 좋고 몰라도 상관없는 교리가 아닙니다. 교회는 ‘보편적 구원의 성사’이며, 교회 자신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회교리’가 아니라면, 교회가 세상을 말을 건네는 방법이 없습니다. 사회교리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계명을 명료하게 밝히면서, 하느님의 자비가 어떻게 세상 선포되는지 알려줍니다. 교황청에서 나온 <가톨릭교회교리서>의 3편 ‘그리스도인의 삶’이 사회교리이며, 역대 교종들이 누누이 성심껏 호소하는 것이 사회교리입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회담를 지켜보면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축복하신 것은 세계평화입니다. 그리고 적대적 세계에 형제애를 선포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시한번 가톨릭일꾼에서는 온 교회가 사회교리를 상식처럼 노래 부르기를 희망합니다. 믿을 교리에 바탕을 두고 행할 교리를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책무입니다. 그래서 연초에 가톨릭일꾼에서는 ‘사회교리 경시대회’를 제안했습니다. 단체마다, 본당마다, 교구마다 사회교리서를 공부하고, 신앙의 필수적인 내용으로 삼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는 만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더 깊이 알게 됩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깨닫고, 그렇게 살다 보면, 예수님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어느덧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게 될 것입니다.

성만찬을 행하실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이 사랑은 연인들끼리 나누는 사랑도 아니고, 좋은 사람들끼리 친밀감을 나누라는 요청도 아닙니다. 낯선 타자를 형제와 자매로 대하라는 호소입니다. 가톨릭신앙을 가진 사람들만 형제요 자매가 아닙니다. 만인이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우리는 교회 밖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느낍니다. 그러니, 교회 안팎 에서 고통받고 소외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공평과 정의가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원리가 되도록 애써야 합니다.

 

by Meinrad Craighead

내 책상 위에...성경과 사회교리

여러분 가방 안에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매일미사> 책과 신문이라면 다행입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 분인 칼 바르트는 “그리스도인들은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앙과 사회를 균형 있게 바라보라는 이야기입니다. 칼 바르트는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독일에서, 1934년 ‘바르멘 신학선언’을 발표하고, 나치에 저항하는 고백교회에 참여했던 분입니다. ‘바르멘 신학선언’은 히틀러를 지지하는 제국교회(Reichskirche)를 반대하고, 애국심을 빌미로 한 국가주의에 저항했습니다. 일제 식민통치 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신앙인들과 비슷합니다.

여러분 책상 위에 어떤 책이 놓여 있습니까? 성경과 사회교리서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회교리를 공부하면 성경이 더 잘 이해가 됩니다. 아, 이래서 주님께서 저렇게 말씀하셨구나, 하실 것입니다. 신앙이란 어떤 교리적 명제들을 달달 외우고 ‘믿습니다. 아멘’을 반복하는 게 아닙니다. 신앙이란 주님으로 고백하는 분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 말씀대로 살면서 성장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4-17)

그래서 제안합니다. 그동안 사회교리를 공부하려면 교황청에서 발행한 <간추린 사회교리>를 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 어렵고 분량이 많아요. 그래서 중간에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일꾼출판사에서 만든 책이 <내가 그 사람이다>(한상봉, 2018)입니다. 이 사회교리 요약집은 쉽고 간결하게 썼습니다. 이 책을 많은 분들이 접하고 공부했으면 합니다. 이 책이 보급되는 만큼 사회교리가 교회 안에서 상식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독자들께서는 이 책을 모두 구입하시고, 학창시절 암기과목 공부하듯이,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읍시다. 그래서 신앙과 삶이 어우러지는 즐거움을 맛보시도록 부탁드립니다.

아픔과 희망이 교차되는 계절입니다. 짙어가는 녹음 속에서, 여러분의 고요한 평화가 이 세상의 정의로운 평화와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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