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은 노회한 정치가였을뿐, 가련한 영혼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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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은 노회한 정치가였을뿐, 가련한 영혼일뿐
  • 양승국 신부
  • 승인 2018.06.25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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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 칼럼] 

우리에게는 지난 역사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필요합니다! 
참담하고 슬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난 역사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평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동시에 역사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평가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섬김과 봉사의 대상인 백성들을 총칼로 내리누른 독재자를 시대의 영웅이요 애국자로 평가한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자라나는 새싹들 가운데 또 다른 누군가가 독재자가 되기를 꿈꿀 것입니다.

오늘 굴곡진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던 한 정치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때 난다 긴다 했지만, 주님 앞에 참으로 가련한 한 영혼입니다.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 저질렀던 큰 잘못들을 자비하신 주님께서 어여삐 여겨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매체에서 앞다투어 그의 일생을 칭송하고 미화하는 기사들을 앞다투어 송고하고 있습니다. ‘거목(巨木)이 사라졌다.’‘큰 별이 졌다.’‘큰 어른을 잃었다.’

불필요한 수식어를 붙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군가에게 견딜 수 없는 상처요 고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늘의 나는 새들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할 때, 좀 더 나은 세상을 한번 만들어보겠다고 길거리로 나섰던 사람들, 어딘가로 끌려가서 참혹하게 짓밟히고 망가졌던 청춘들에게, ‘거목’ ‘큰 별’이란 표현들은 너무나 큰 모욕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와 김종필

이 땅의 여러 언론들은 과연 정상적인 사고를 지니고 기사를 쓰고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국민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조금이라도 파악한다면‘거목’ ‘큰 별’ 같은 단어를 결코 쓸 수 없을텐데 말입니다. 아직 생존해 있는 또 다른 전직 독재자들의 사망 때에도, 똑같은 형태의 찬양•미화 보도를 쓸 것 같아 큰 걱정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우리나라가 마침내 오랜 영욕의 세월에 종지부를 찍고 정상적인 국가로 나아갈 다시 없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뜻밖에도 몇명의 군인들이 등장했었지요. 그는 당시 516 군사 쿠데타를 기획하고 주도해, 또 다시 우리들을 좌절시켰던 장본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는 인류 역사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최장기 군부 독재 정권의 제2인자였습니다. 지나가는 강아지도 웃을 ‘유신 헌법’의 기획자였습니다. 치욕적인 한일간 굴욕적 협정의 당사자였습니다. 이렇게 그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차대한 변곡점 마다 기회주의적인 처신으로, 나라보다는 자신 한몸 챙기기에 바빴던 노회(老獪)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잠시 머물다 지나가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 우리 후손들을 위해 있는 그대로의 정확한 역사를 기술해주시기 바랍니다. 정확한 기사를 써주시기 바랍니다. 

사제들을 향한 신자들의 걱정이 하늘을 찌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 사제’라는 극단적 용어도 서슴없이 사용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치 참여’가 아니라 ‘현실 참여’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지난 우리나라 역사였습니다. 총칼을 동원해 정권을 찬탈한 군부독재들은 정당성없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사제들도 이 나라 국민이자 한 구성원으로서, 동시에 백성들을 사랑하는 목자로서, 아닌 것에 대해 아니라고 외친 것, 그것이 사제들이 해온 전부였습니다.

히틀러라는 거대악 앞에 혈혈단신으로 맞서셨던 본 회퍼 목사님(1906~1945)의 외침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만일 어떤 미친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대로를 질주하고 있는데, 나는 성직자로서 그 미친 사람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장례식이나 치러주고, 그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더 많은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자동차 안으로 뛰어들어 미친 사람으로부터 핸들을 빼앗아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당시 독일의 모든 지도자들, 성직자들조차 히틀러의 광기어린 집단주의에 침묵하고 동조할 때, 본 회퍼 목사님은 홀로 용감하게 '이것은 아니'라며, 이래서는 안된다며, 반대의 깃발을 들었던 것입니다.

 

Óscar Arnulfo Romero

오는 10월 시성(諡聖)을 앞두신 전 산살바도르 대교구의 로메로 대주교님(1917~1980) 역시 같은 노선을 걸으셨습니다. 백성들을 향한 폭력과 살상을 밥먹듯이 자행했던 독재자에게 홀로 맞서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1980년 3월 23일 주교좌성당 강론대에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하느님과 고통 받는 민중의 이름으로, 당신들에게 간청하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들에게 명령합니다. 억압을 멈추시오.” 

바로 그 다음 날, 한 괴한이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미사를 거행하던 병원의 경당에 숨어들어 그를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따지고 보니 세례자 요한의 삶과 죽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갈릴래아 지방은 헤로데 안티파스가 로마의 통제 아래 분봉왕으로 제한적 통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눈치를 보랴, 말많은 원로들 눈치보랴, 알량한 왕권을 유지하랴 바빴습니다. 자연스레 백성들의 안위나 생계를 위한 걱정은 손톱만큼도 없었습니다. 

거기다 전처와 이혼하고, 배다른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재혼까지 했습니다. 백성들의 지도자란 사람의 모습이 참으로 꼴불견이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진언(眞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날선 대예언자 세례자 요한의 귀에 헤로데 재혼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외쳤습니다.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마태오 복음 14장 4절) 

당시 오늘로 치면 뒤가 구리고 노회한 정치인들이었던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에게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참으로 통쾌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오 복음 3장 7절)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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