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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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예수님
  • 한상봉
  • 승인 2018.06.2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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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2 (동영상 강의 및 요약문)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카 4,18-19)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빌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년을 선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스스로 하느님이심을 버리시고, 사람이 되어 지상에 당신의 천막을 치셨습니다. 그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오셨는데, 고결한 왕족이나 대사제나 지식인의 몸이 아니라 더러운 천민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과 죄인들의 친구였습니다. 루카 복음에서 아기예수를 경배하러 온 사람들은 ‘목자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마리아의 노래’에 나오는 “비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에 속합니다.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설교하며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루카 6,20)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6,24이라고 말합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마태 14,13) 하고 충고합니다. 구원받은 세관장 자캐오도 예수님을 만나고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횡령한 것을 네 곱절로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Martin Erspamer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42-45)고 하신 분입니다. 마지막 만찬에서도, 이방인 노예들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분입니다. 그분이 곧바로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예수님의 죽음은 교통사고처럼 단순한 죽음이 아닙니다. 그 분은 국가권력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역적’으로 죽었지만, 그분이 ‘의인’임을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일으켜 세움으로써 입증해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열정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과 정의입니다. 정의는 연민의 사회적 표현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정의의 영혼이고, 정의는 사랑의 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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