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 그놈이라면, 민중이 영웅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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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이 그놈이라면, 민중이 영웅이 되어
  • 유대칠
  • 승인 2018.06.18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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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아픈 시대, 낮은 자의 철학 29]

누군가는 영웅을 기다린다.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선물해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이 사람이 그 영웅인가? 아니면 저 사람이 그러한 영웅인가? 때론 과거의 독재자의 그 잔혹한 폭력마저도 강인한 통치라 기억하며 그와 같은 강인한 영웅을 기다린다. 설사 모든 악한 자라 하여도 이 어두운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내려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하지만 역사의 진리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전부인가? 누군가 구해줄때까지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전부인가? 그것이 유일한 우리의 희망인가? 기다림만이 우리가 이 힘겨운 역사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그 무엇인가?

나 한 사람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겠는가? 나 한 사람이 저 거대한 악의 앞에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저 영웅을 기다리는 길 뿐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행복과 희망은 누군가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도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것이라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희망이고 행복이다. 그 영웅이 계속 착하기만을 바래야하고, 다른 마음을 가지지 말기를 바래야한다. 설사 조금 나쁜 일을 해도 참아야만 한다. 모든 행복과 희망이 그에게 달려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정말 제대로 된 것인가?

작은 촛불 하나는 나약하다. 거친 바람 앞에 작은 촛불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약한 존재다. 그러나 그 촛불이 모이고 모이면 어둠을 물리치고 나아갈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 하나하나는 너무나 나약하지만 절대 그냥 나약하게 있지만은 않은 존재가 촛불이다. 나약한 힘으로 외로이 홀로 있을 때, 거친 바람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다. 영웅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그 영웅은 우리 밖에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누군가가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모이고 모여 더불어 있음, 바로 그것이 우리의 역사와 삶을 바꿀 영웅이다. 바로 우리 자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영웅이다.

“그놈이 그놈이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세상 돌아가는 대로 살아라” 그리고 “될 대로 되라”는 이 모든 생각들, 이 생각들이 우리 자신을 나약하게 만들었다. 참된 영웅을 만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우리 가운데 거대한 기운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냥 기다리게만 만들었다. 부조리함 앞에서 침묵하게 만들었다. 자포자기의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함석헌은 가장 나쁜 것을 ‘자포자기’라 했다. 스스로 포기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는 그 마음, 그 마음으로는 이 세상을 다르게 할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인해 세상이 달라지지 않으면,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그 무서운 거짓 상식은 맞는 말이 된다. 스스로 혁명을 포기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현실이 비관할 정도라도 민중이 정치에 대하여 무관심하면 옛날은 그러고도 최하의 생존이나마 해갈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렇게는 될 수 없고 전체가 아주 망하는 것 밖에 없는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만일 이 자포자기의 태도로만 나간다면, 나라는 건질 길이 없다.” (함석헌, <인간혁명> 중)

무관심과 포기로 살아가면 결국 돌아오는 것은 망하는 것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는 건질 길이 없다. 망할 수밖에 없다.

촛불 이후 많은 이들은 더불어 있는 우리의 힘을 느꼈다. 오랜 시간, 침묵해야 했던 많은 어둠들이 정치계뿐 아니다. 종교계와 예술계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권력을 사유화한 이와 그 무리들은 심판을 받고 있다. 촛불의 힘을 느낀 민중들은 이제 혼자가 아니란 사람을 알게 되었다. 서서히 진정한 영웅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냥 침묵하고 있어서는 달라지지 않는다.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 자신이 우리 역사와 삶의 영웅이 되어 소리쳐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어렵다.

어둠과 싸우는 빛은 끝없이 자신을 태우고 빛을 낸다. 힘겨움 없는 혁명은 없다. 그것이 혁명이다.

“혁명은 반드시 책임감을 느끼고 역사적 죄악을 제 몸에서 아프게 슬프게 회개를 해서만 새 역사를 지을 감격과 지혜가 나온다. 회개 아니 한 민족가지고 아무것도 못한다.” (<인간혁명> 중)

포기하고 살던 시간, 수많은 아픔이 있었다. 그 가운데 분노하지 못한 우리를 회개해야 한다. 역사의 책임감 앞에서 고개 돌린 우리의 모습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 그 고통스러운 회개 이후에야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이루어지고, 그 역사의 지혜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선거가 끝이 났다. 우리의 앞이 어떻게 될지 자세히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긍정적이다. 우리의 밖, 영웅의 존재를 믿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믿기 때문이다. 조금 힘들어도 천천히 더 나은 무엇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믿기 때문이다. 회개하는 우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우리를 믿기 때문이다. 작은 손으로 작은 촛불을 들고 차디찬 겨울바람을 피하지 않은 그 많은 나‘들’, 그 우리를 믿기 때문이다.

늦어도 천천히 그 날을 오고 있다 믿는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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