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가톨릭교회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지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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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가톨릭교회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지지하지 않는다
  • 한상봉
  • 승인 2018.06.12 13: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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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14

해방신학이 1980년대에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의해 심문을 받은 것은 ‘마르크스주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당시 교황청은 사회 분석 도구로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했지만, 해방신학의 기본 노선인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군부독재는 해방신학에 대한 교황청의 단편적인 문제 제기를 확대 해석해 해방신학 자체를 공격했다.

여기서 우리는 해방신학이 단순히 몇몇 신학자들의 견해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를 관통했던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미 구티에레즈를 비롯한 해방신학자들과 주교들은 무분별한 마르크스주의의 차용을 경고하고 있으며,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의 입장처럼 철저하게 비폭력 저항을 주장하고 있다.

 

by Ricardo Levins Morales

<푸에블라 문헌>에서는 “우리는 폭력이 그리스도교적인 것도 복음적인 것도 아니라는 점과 매정하고 폭력적인 구조의 변혁은 그 자체가 그릇되고 쓸모없고 민중의 존엄성과도 결코 부합하지 못한다는 점을 선언하고 재확인할 의무가 있다. 실제로 아무리 이상적이고 지혜를 다하여 구상한 구조라 하더라도 인간의 기질이 바로 서지 않고 그 구조 안에서 생활하거나 그것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구조는 머지않아 비인간화 된다는 사실을 교회는 알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푸에블라의 주교들은 ‘복음과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며, 세 가지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 그 첫 번째가 재물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자본주의적 자유주의’다. “경제 발전의 근본 동기가 ‘이윤’이고 경제의 최고 법칙은 ‘자유 경쟁’이며, 생산 수단의 사유권은 절대적인 권리라고 주장하지만, 절대적 사유권에서 야기되는 불법적인 특권은 수치스러운 빈부 대립을 유발하고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종속과 억압의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두 번째는 ‘마르크스주의적 집산주의’다. 주교들은 마르크스주의적 집산주의 역시 자본주의처럼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는 체제이며, “사랑과 정의의 하느님을 배척하는 그 같은 우상 숭배의 뿌리까지 파헤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들은 계급투쟁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하는 계급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결국 공산당 독재만 낳았다고 비판했다. 현실 사회주의가 하나같이 비판과 반대의 가능성이 차단된 전체주의 정권의 틀 속에서 이뤄져 왔다고 보는 게 주교들의 입장이다.

또한 신학적 성찰을 하면서 마르크스주의 분석에 의존하는 실천은 자칫 신학이 이데올로기가 되어 “그리스도교적 실존을 철저히 정치화 하고, 신앙의 언어를 붕괴시켜 사회과학 언어로 만들고, 그리스도교적 구원에서 초월적 차원을 제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계했다.

세 번째로 지적한 것은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다. 주교들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석권해 온 ‘국가안보주의’는 “스스로를 서방 그리스도교 문명의 수호자로 합리화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항구적인 전쟁’ 개념에 잘 어울리는 억압 체제를 만들어낸다.”고 비판했다.

푸에블라 주교회의에 앞서 열렸던 메데인 주교회의 역시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체제와 마르크스주의적 체제가 마치 우리 대륙에서 경제적 구조를 변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체제는 모두 인격의 존엄성을 거스르는 체제”라고 비판하며 “우리는 라틴아메리카가 그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양자택일로 치닫고 폐쇄되는 상태를 단죄하며, 이 대륙의 경제를 조종하는 양 극단의 세력 중 어느 하나에 영속적으로 종속되는 상태를 단죄한다.”고 밝혔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푸에블라 주교회의 개막연설에서 “교회는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옹호하고 인간 해방에 협력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체제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교황은 “교회는 스스로가 위임받아 선포하는 메시지의 핵심 속에서 형제애와 정의와 평화를 위하고, 온갖 형태의 지배와 종속, 차별, 폭력, 종교 자유의 침해, 인간 공격, 갖가지 생명 침해에 저항하는 데 필요한 영감을 발견한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와 제한 없는 자본주의를 모두 비판해 왔다. 권력과 탐욕이라는 우상을 모두 경계한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교회가 노동자들의 참상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100년 넘게 주로 사회주의 운동을 경계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게 곧 자본주의에 대한 승인이 아님은 분명하다.

1991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발표한 회칙 <백주년>에서는 자본주의가 만일 확실한 정치 구조 안에서 제한되지 않는다면 그 대답은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회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교황은 “모두 시장의 힘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경솔하게 믿는, 자본주의에 일치하는 근본적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경고한 바 있다. 가톨릭교회는 하느님 나라라는 종말론적 전망 안에서 우리 시대를 읽으려 하기 때문에, 기존 체제 어느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백성인 인류가 두루 영적 구원과 사회적 해방을 경험하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 사회교리가 줄곧 천명해 온 것은 다름 아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다. 이들이 기뻐할 만한 복음이 먼저 실현되어야 만인에게도 온전한 복음이 전달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는 교회를 갈망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언하고 있듯이,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새로운 경로를 더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해와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두려울 것이 없노라.”라는 시편 구절을 읽을 뿐이다.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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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씨오 2021-08-09 03:28:29
진심 너무나도 글을 잘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