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오물의 문, 시온의 문, 야포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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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오물의 문, 시온의 문, 야포의 문
  • 송창현
  • 승인 2018.05.29 0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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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와 예루살렘- 13
오물의 문 (사진출처=pinterest.co.kr)

“오물의 문”은 예루살렘 남쪽 성벽의 동쪽에 있으며, 성문들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다. 이 문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안의 오물들이 키드론 계곡과 티로포에온 계곡에 버려졌다. 유다인들은 이 성문을 느헤 2,13에 나오는 “거름 문”에 따라 오물의 문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나는 밤에 ‘계곡 문’으로 나가, ‘용 샘’을 지나 ‘거름 문’까지 가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불에 탄 성문들을 살펴보았다.”

이 성문은 아랍어로 바브 엘-마가르베(Bab el-Magharbeh), 곧 “무어인들의 문”이라고도 불린다. 그 이유는 16세기경에 북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이슬람 무어인들이 이 성문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1958년에 요르단인들은 자동차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이 성문을 넓혔다. 오늘날 많은 유다인들은 이 성문을 통하여 그들의 거룩한 장소인 통곡의 벽으로 출입한다.

“시온의 문”은 예루살렘 남쪽 성벽의 서쪽에 있다. 이러한 명칭은 이 성문이 시온 산으로 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온 산(Mount Sion)은 예루살렘의 남서쪽 언덕을 가리킨다. 이곳은 해발 765m의 높이로 구시가의 남쪽 성벽에 있는 “시온의 문” 밖에 위치하는데, 서쪽과 남쪽에는 힌놈 계곡이 있고 동쪽으로는 티로포에온 계곡이 있다.

그런데 구약 성경 시대에 시온이라고 불린 곳은 예루살렘의 동쪽 언덕이었다. “다윗은 시온 산성을 점령하였다. 그곳이 바로 다윗 성이다.”(2사무 5,7) 시온이라는 이름이 서쪽 언덕을 가리키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세기인데, 미카 3,12의 본문에서 미카 예언자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세 가지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너희 때문에 시온은 갈아엎어져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폐허 더미가 되며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수풀 언덕이 되리라.”

보르도(Bordeaux)의 순례자들(기원후 333년)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본문을 예루살렘의 두 언덕을 묘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즉 동쪽 언덕이 성전 산(Temple Mount)이었다면, 서쪽 언덕은 시온 산이었다. 현재의 시온 산 지역이 처음으로 예루살렘 성벽 안에 포함된 것은 기원전 2세기였다.

기원후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는 예루살렘의 성벽을 파괴하였는데, 현재의 남쪽 성벽은 기원후 135년의 아엘리아 카피톨리나에 주둔했던 로마 군대 주둔지의 남쪽 경계였다. 444년-460년 사이에 로마 황제의 부인인 에우도키아는 시온 산 부근의 옛 성벽을 다시 세우도록 하였다. 이 성벽은 975년까지 존속했는데, 칼리프 엘-아지즈(el Aziz)는 그것을 무너뜨렸다. 살리딘(Saladin)은 다윗의 무덤을 포함하기 위하여 십자군의 성벽을 연장하였다. 기원후 16세기 술탄 슐레이만 2세에 의해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될 때 시온 산 지역은 성벽 바깥에 위치했다. 마다바 지도에는 당시의 시온 산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시온의 문”을 아랍어로는 바브 나비 다우드(Bab Nabi Daud), 즉 “예언자 다윗의 문”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전설에 따르면 다윗의 무덤이 시온 산에 있기 때문이다. “시온의 문”에는 많은 총알 자국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1948년에 있었던 구시가의 유다인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다. 이 성문은 1967년 6일 전쟁 이후 다시 보수되었다. 현재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위치한 시온 산에는 성모 승천 기념 성당(Church of the Dormition), 최후 만찬 기념 성당,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Saint Peter in Gallicantu) 등이 있다.

"야포의 문”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야포 도시로 통하는 성문으로서 예루살렘 서쪽 성벽의 유일한 성문이다. 아랍어로는 바브 엘-칼릴(Bab el-Khalil), 즉 “친구의 문”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친구는 아브라함을 가리킨다. 사실 이사 41,8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친구로 소개된다. 바브 엘-칼릴이라는 명칭은 이 성문이 아브라함의 묘지가 있는 헤브론 도시로 통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1898년에 오스만 터키 제국의 술탄 압둘 하미드 2세(Abdul Hamid II)는 L자 형태의 성문과 다윗 성 사이의 성벽을 헐었다. 이것은 독일 황제 빌헬름 2세(Kaiser Wilhelm II)가 예루살렘 성 안으로 마차를 타고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내기 위해서였다. 현재 “야포의 문” 옆에 개방된 길은 자동차 도로로 사용된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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