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성 스테파노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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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성 스테파노의 문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8.05.2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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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와 예루살렘- 12

“헤로데의 문”은 예루살렘 북쪽 성벽의 동쪽에 위치한다. 이 명칭의 이유는 16-17세기의 순례자들이 근처에 있던 마멜루크의 집을 헤로데 안티파스(Herod Antipas)의 궁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 성문은 히브리어로 샤아르 하페라힘(Sha'ar Haperachim), 아랍어로 바브 에즈-자르(Bab ez-Zahr), 곧 “꽃으로 장식된 문”, “꽃의 문”으로 불린다. 그 이유는 성문에 꽃의 문양이 있었거나 성문 근처에서 상인들이 꽃을 팔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성문은 예루살렘 구시가의 북동쪽에 위치한 이슬람인 지역으로 통하기 때문에 아랍인들의 출입이 많다.

 

사진출처=kwk776.tistory.com

“성 스테파노의 문”은 예루살렘 동쪽 성벽에, 곧 올리브 산을 마주보며 위치해 있다. 예루살렘 도성에서 이 성문을 통하여 올리브 산, 베타니아, 예리코, 요르단 강으로 갈 수 있다. 슐레이만 2세는 이 성문을 바브 엘-고르(Bab el-Ghor), 즉 “요르단의 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명칭은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이 성문이 “성 스테파노의 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도 7,54-8,1의 스테파노 순교와 관련된다. 비잔틴 시대의 순례자들에 따르면, 6세기의 “성 스테파노의 문”은 북쪽에 있는 것으로서 오늘날 “다마스쿠스의 문”이라고 부르는 성문이었다. 그런데 1187년에 라틴 제국이 멸망한 이후 아랍인들은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이 군사적으로 가장 취약한 북쪽 성벽 근처를 통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올리브 산과 예리코를 방문하기 위하여 동쪽 성문을 이용해야만 했다.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에 예루살렘 북쪽에 있던 여러 중요한 장소들이 동쪽으로 옮겨지게 되었는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이 동쪽 성문을 “성 스테파노”의 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성문은 매우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사자의 문”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성문 바깥쪽 벽 좌우에 사자의 부조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슐레이만 2세의 꿈에 두 마리의 사자가 나타나 성문을 다시 세우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1540년에 성문은 보수되었고 사자의 부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성문 근처에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의 집이 있다고 해서 “안나의 문”이라고도 불리고, 근처에 마리아의 무덤이 있다고 해서 “마리아의 문”이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성 스테파노의 문 근처에는 성 안나 성당(Church of Saint Anne)이 있다. 비잔틴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와 그녀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의 집터에 경당이 세워졌다. 이 성 안나 성당 바로 옆에 요한 5장의 치유 사건이 일어난 벳자타 못(Pool of Bethzatha)이 있다.

“그 뒤에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요한 5,1-3)

좌우 두 개의 못으로 이루어진 벳자타 못은 가로 50m, 세로 150m, 깊이 15m 가량이었다. 기원전 8세기에 빗물을 저장하기 위해 둑이 만들어졌는데 이사 7,3; 2열왕 18,17에서 “윗저수지”로 소개된다. 이 저수지의 물은 바위를 깎아 만든 수로를 통해 다윗 성 안으로 흘렀다. 기원전 200년경에 대사제 시몬은 이 수로를 터널로 바꾸었다. 시몬은 예루살렘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기존의 둑 남쪽에 두 번째 못을 만들어 쌍둥이 못을 건설하였다.

“오니아스의 아들 시몬은 대사제로서 생전에 주님의 집을 수리하고 자기 생애에 성전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는 안뜰의 높은 벽의 기초를 놓았고 성전을 둘러싸는 담을 높이 쌓아 올렸다. 그는 자기 생애에 저수 동굴을 팠는데 그 웅덩이 둘레는 바다 같았다.”(집회 50,1-3)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못의 동쪽에 있던 자연 동굴들은 목욕 시설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종교적인 역할 뿐 아니라 병을 고치기 위한 기능도 하였다. 사실 이 둘은 분리되지 않았다. 쌍둥이 못은 사용되지 않았는데, 헤로데 대왕이 성전에서 제물로 사용될 동물들을 씻는 이스라엘의 못(Pool of Israel)을 성전 근처에 만들었다. “성 스테파노의 문”을 유다인들은 여호사팟 계곡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해서 “여호사팟의 문”이라고도 부른다. 이 성문을 “양 문”(Sheep Gate, 느헤 3,1)이라고도 한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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