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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없이 가르치고 섬기는 사목자

내가 말하려고 하는 모든 것을 매우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구절을 복음서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예수가 죽음전 날 사도들에게 했던 말이다: “사람이 제 친구들을 위하여 그의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요한 15,13).

나에게 이 말은 모든 그리스도교적 직분의 의미를 요약하는 말이다. 만일 가르치기, 설교하기, 개인적인 사목 배려, 조직하기, 그리고 기념하기 등이 전문적인 자질의 수위를 넘어서는 섬김의 행위라면 그것은 이 행위들 속에서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훈련으로 인간 행동에 관한 이해에 있어 매우 높은 역량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기꺼이 다른 이들을 위하여 그들의 목숨을 내놓고 그들의 약함이 창조의 원천이 되도록 만드는 사람들은 소수일 따름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많은 개인들에게 전문적인 훈련은 권력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옷을 벗고 그의 친구들의 발을 씻어주는 사명의 수행자는 권력을 지니지 않고, 자신의 약함을 두려움 없이 직면하면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쓸 수 있도록 훈련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바로 이 창조적인 약함이 사명에 추진력을 주는 것이다.

가르치는 것은 선생이 지식의 전달 그 이상으로 넘어가 학생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삶의 체험을 나누고 그래서 그 마비시키는 불안이 치워질 수 있으며 새로운 해방의 영감이 나올 수 있고 진정한 배움이 일어 날 수 있을 때 직분이 되고 사명이 된다. 설교의 준비는 설교자가 “이야기를 말해주는 것” 그 이상으로 넘어가 자신의 가장 깊은 자아를 경청자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게 할 때 신비가 된다.

개별적인 보살핌은 봉사자가 주고받는 것의 조심스러운 균형 그 이상으로 돕고자 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무릅쓰고 그의 이름과 명성이 위험에 처해도 고통받는 동료인간에게 충실하게 남아 있을 때 섬김이 된다. 조직하기는 조직가가 구체적인 결과에 대한 욕구를 넘어서 전적인 쇄신에 대한 확고한 희망으로 그의 세계를 바라볼 때 사명이 된다. 기념하기는 기념자가 방어적인 예식의 한계를 넘어 삶을 하나의 선물로 순종하여 받아들일 때 사명이 된다.

물론 이 모든 섬김의 과제들이 신중한 준비와 확실한 능력이 없다면 수행될 수가 없겠지만, 이런 경쟁력이 다른 이들에 대한 섬김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근본적인 결단에 뿌리박지 않는다면 감히 사명이라고 부를 수 없다. 사명이란 모든 고통과 하느님을 추구하는 자신의 여정을 모든 고통과 기쁨의 순간들, 절망, 희망과 함께 하느님을 추구하는 자신의 여정을, 이러한 추구에 합류하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내어맡기는 시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명은 결코 특권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이 같은 사명 수행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간에, 그 기반은 항상 같다: 친구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창조적인 사명」에서

[원출처] <Henri Nouwen>(Robert A. Jonas, Orbis, 1998)
[출처] <참사람되어> 2004년 8월호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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