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아파레시다 주교회의 "교회는 신경질적인 도덕적 훈계 꾸러미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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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아파레시다 주교회의 "교회는 신경질적인 도덕적 훈계 꾸러미 아니다"
  • 한상봉
  • 승인 2018.05.1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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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10

푸에블라 주교회의의 관점은 1992년 도미니카에서 열린 제4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인 산토도밍고 회의에서 큰 혼란을 겪었다. 미카엘 뢰비가 쓴 <신들의 전쟁>(그린비, 2012)에 따르면, 산토도밍고 주교회의에서 브라질 주교 33명은 정복자들과 교회가 원주민들과 아프로-아메리카인들을 학살하고 이에 동조한 것에 엄숙하게 용서를 청하자고 제안했지만, 로마가 임명한 주교회의 의장은 이를 거절했다.

<산토도밍고 문헌>은 ‘관찰-판단-실천’이라는 메데인과 푸에블라의 접근 방식 대신 교의적인 접근으로 후퇴했다. 사회 불의를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확고하며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재확인했고, 가난은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지역이 겪고 있는 가장 파괴적인 재앙”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이들의 얼굴에서 주님의 얼굴을 발견”하도록 회심을 요청받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전 주교회의의 핵심적 사항이 계승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2007년에 브라질에서 열린 제5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의 결과인 <아파레시다 문헌>에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시절 당시 아파레시다 주교회의에서 기획위원장에 이어 문헌 최종문헌 작성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아파레시다 문헌>을 마무리한 장본인이다. 그래서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2013년 발표한 첫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에서는 <아파레시다 문헌>을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아파시레시다 대성당 (사진출처=한국일보)

아파레시다 주교회의 개막식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새로운 현상으로 ‘세계화’를 지적하며, “이 세계화는 인류라는 커다란 가족을 이롭게 하고 있고, 일치를 향한 깊은 열망을 보여 주는 징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와 더불어 거대한 독점의 위험과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위험이 수반되고 있음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제자이자 선교사가 되라는 부르심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에 대해 분명히 선택하고, 믿음과 삶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체현하며,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 인간 존엄의 가치를 훼손하고 소비주의를 부추기는 세상 속에서 반박과 새로움의 징표가 될 것을 요구한다.”고 전했다.

당시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으로 아파레시다 주교회의에 참석한 베르골료 추기경(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진보하고, 세계화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오직 강자의 권리만 유효합니다. 이런 까닭에 사회적 부정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그 결과 국민 대부분이 사회에서 소외받고 배척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은 ‘착취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로 취급 받습니다. 따라서 소유의 불공정한 분배는 심각한 사회적 죄악이며 단죄받아야 하는 범죄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주교들은 최종 문서를 작성하고 메시지를 발표하면서 “빈부의 차이가 극명해질수록 우리는 생명의 식탁을 나눌 줄 아는, 아버지 하느님의 모든 아들과 딸들이 누리는 식탁, 아무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를 아우르는 열린 식탁을 나눌 줄 아는 제자 됨을 위해 더 큰 노력을 쏟게 된다.”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이고 복음적인 선택”을 강조했다.

여기서 <아파레시다 문헌>은 가난한 이들 안에 “약한 이들, 특히 어린이들, 병든 이들, 장애인들, 위험한 환경에 처한 젊은이들, 연로한 이들, 감옥에 갇힌 이들, 이민자들”도 포함시켰다. 이런 점에서 아파레시다 주교회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열린 다른 주교회의의 결정을 계승하면서 “민족들을 섬기는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충실함과 쇄신, 복음화”를 다시 확인했다.

주교들은 가톨릭 신앙이 “규칙과 금지의 모음집, 파편화된 종교적 관행들, 믿음의 진리에 대한 선택적이고 부분적인 집착, 일부 성사에 가끔씩 참여하는 것, 교리의 반복, 유아적이거나 신경질적인 도덕적 훈계 따위의 꾸러미”로 전락하는 것을 경고하고, 그리스도의 삶을 중심으로 교회가 재구성되기를 희망했다.

따라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 기쁨>에서 ‘가난’을 강조한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모든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의 주교들이 천명한 것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의 외침을 듣는 것은 몇몇 그리스도인에게 국한된 사명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교회가 정의를 갈망하는 이들의 외침을 듣고 온 힘을 다해 응답해야 하며, “현실적 빈곤 앞에서 단순하면서도 날마다 반복되는 연대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교회 스스로 “가난해질 용기”가 있는지 묻고 있다.

“제가 바라는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들은 뛰어난 신앙 감각(sensus fidei)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통 속에서 고통 받으시는 그리스도를 알아 뵙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복음화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가난한 이드르이 삶에 미치는 구원의 힘을 깨닫고 그들을 교회 여정의 중심으로 삼으라는 초대입니다.”-《복음의 기쁨》 198항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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