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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우스] 그대한테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대의 사랑은 그만큼 부족합니다<내 곳간을 헐어라>, 바실리우스, 분도, 2018-2

부자에 관한 강해(마태 19,16-22)

이번에는 부자청년에 관한 이야기다. 그 청년은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물었다. 그 청년은 모세율법이 가르치는 계명을 다 지켜왔다고 했다. 부족한 게 있는지 묻자, 예수님은 그 유명한 말을 던진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그러자, 그 청년은 슬퍼하며 예수님을 떠나갔다. 그는 소유한 많은 재물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실리우스는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갖는 청년의 선한 의도를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청년은 정작 참스승으로부터 구원에 대한 가르침을 배우고서도, 마음에 새기지도 실천하려고도 하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에게도 던지는 당혹스러운 질문이다. “그대는 그분을 ‘스승님’이라고 부르고서는 제자로서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군요? 그대는 그분을 선하신 분이라고 부르고서는 그분이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군요?”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 물었지만, 정작 우리 자신은 이 세상의 즐거움에 완전히 얽매어 있다는 것이다.

청년은 비록 살인한 적도, 간음한 적도, 도둑질한 적도, 거짓증언을 한 적도 없다고 말한다 할지라도,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지 않았다. 바실리우스는 만일 청년이 사랑의 계명을 줄곧 지켜 왔다면, 그렇게 많은 재산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가난한 이들을 돌보려면 돈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실리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한테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대의 사랑 실천은 그만큼 부족합니다. ... 그대가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었다면,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면, 모든 낯선 이들에게 대문을 활짝 열었다면, 고아들에게 부모가 되어 주었다면, 모든 절망하는 이들의 고통을 그대 자신의 고통으로 여겼다면 무슨 돈이 그대에게 남아 있을 수 있으며, 돈을 잃어버렸다고 슬퍼할 수 있단 말입니까?”

 

Basilius Magnus: Homiliae in hexaemeron 1470-1480 között. Buda, Pergamen.

바실리우스는 부의 용도에 관해 따져 묻는다. 부자들은 불필요하고 무가치한 것들을 마치 꼭 필요한 것인 양 추구한다. 그리고 지출목록은 끝없이 늘어난다. 그 온갖 쓸 데 없는 ‘필요’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

“어떤 말들은 주인이 여흥을 즐기러 나갈 때 주인을 모시고 도시로 나가고, 어떤 말들은 사냥할 때 쓰이고, 또 다른 말들은 여행용 말로 사용하기 위해 훈련을 받습니다. 말들은 모두 은과 번쩍이는 금으로 장식된 재갈과 고삐와 화관을 걸치고 있고, 최고급 자줏빛 담요를 두르고서 마치 신랑처럼 차려입고 있습니다.”

부자들은 이렇게 흥청망청 쓰고도 돈이 남으면 땅속 깊이 숨겨두고 지킨다. 미래란 늘 불확실하기 마련이므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부고 바실리우스는 “나는 그대가 돈을 땅에 묻었을 때 그대의 마음도 같이 묻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했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고 했기 때문이다.

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나아가 바실리우스는 더 뼈아픈 이야기를 한다. 다른 힘든 일은 기쁘게 하면서도 자신의 재산을 나누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단식과 기도, 탄식과 온갖 경건한 신앙생활을 다 하지만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으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단돈 한 푼도 주지 않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봤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루카 18,25)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삽니까?” 항변한다. 그러나 바실리우스는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다. 필요 이상의 것을 나누라고 했다. 부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단지 청지기로서 맡은 것일 뿐임을 깨닫는 사람은 “부와 이별 할 때, 자기 것을 빼앗긴 사람들처럼 풀이 죽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버린 사람들처럼 기뻐한다.” 바실리우스는 말 한 필을 사기 위해서 돈을 쓸 때에는 그렇게 기뻐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하여 돈을 쓸 때는 슬퍼하는 사람을 문제 삼는다. 이런 사람들은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면 수갑을 차고 다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들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기뻐할 줄 모르고, 아직 갖지 못한 것 때문에 슬퍼한다. 저승이 결코 “충분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듯(잠언 20,16), 탐욕스러운 사람도 결코 “충분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바다는 경계를 알고, 밤은 옛날부터 정해진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데, 그들은 한계를 존중할 줄 모른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한다.

바실리우스는 이들에게 “불의한 일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갖고, 그대가 추구했던 물질적인 것들이 그대를 어떤 종착지로 이끌었는지” 깊이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결국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단지 한 길짜리 작은 땅이며, 흙과 돌 조금이면 그대의 죽은 몸을 충분히 덮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대의 그 수고는 단지 헛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영원한 (지옥)불의 땔감이 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니 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라고 다그친다.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봐도, 그대는 그대가 저지른 악행만 보게 될 것입니다. 이쪽은 고아들의 눈물, 저쪽은 과부들의 한숨, 또 다른 쪽은 그대가 짓밟은 가난한 이들, 그대가 짐승처럼 다룬 노예들, 그대가 무자비하게 다룬 이웃, 그대의 모든 악행이 그대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대의 악한 행위가 합창단이 되어 그대를 사방에서 옭아맬 것입니다.”

이야기를 전하면서, 바실리우스는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듣고도 그대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는데도 그대가 설득당하지 않는다면, 그대의 마음은 돌덩어리가 분명합니다”라고 안타까워한다.

 

St. Basil the Great

축제가 끝나면 아무도 장사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은 “사는 동안엔 이 모든 것을 내가 누릴 생각이지만, 죽은 뒤엔 내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거요. 유언장에 그렇게 쓸 거요”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바실리우스는 “그대가 한 일을 보여 주고 나서 보상을 바라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축제가 끝나고 나면 아무도 장사하지 않으며, 시합이 끝난 뒤에는 아무도 오지 않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아무도 자신의 용맹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삶이 끝난 뒤에는 그 누구도 선행을 베풀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사는 동안엔 제 멋대로 살고, 죽고 나서 계명을 실천 해야겠다”는 것은 ‘악한 계획’(에제 11,2)이다. 복음서에서 아브라함은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을 받았다”(루카 16,25)고 저승에 온 부자에게 말했다. 그는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를 한쪽으로 제쳐두지 않고 끝까지 끌고 다녔다. 평생 그리 살고서, 죽어서도 남한테 주기 싫어서 “남은 것을 주님께 바친다”고 말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이런 이들에게 바실리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우롱당하실 분이 아닙니다.(갈라 6,7) 죽은 짐승은 제단에 봉헌물로 바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희생 제물을 봉헌해야 합니다. 남은 것을 봉헌하면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죽고 나서야 남아 있는 것을 그대의 은인에게 봉헌합니다. 귀한 손님에게는 감히 그대가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로 대접할 생각도 못하면서, 어떻게 감히 먹다 남긴 찌꺼기로 하느님의 비위를 맞추려 하십니까?”

그러니, 바실리우스는 미리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라고 권고한다. “자비를 베푸는 것은 죽은 자에게 어울리는 최상의 의복이니, 선행으로 정장을 차려입고 떠나라”고 말한다.

“그대의 재산을 결코 그대와 분리될 수 없는 아름다운 장신구들로 바꾸십시오. 그래서 이승을 떠날 때 그것을 모두 가지고 가십시오. 그대를 사랑하는 그리스도, 착하신 조언자를 믿으십시오. 그분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1코린 8,9),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1티모 2,6) 내어 주셨습니다.”

사랑의 도시, 바실리아드

368년 카파도키아에 극심한 가뭄이 닥치자, 사제였던 바실리우스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양식을 사기 위해 유산을 모두 팔아 무료급식소를 열었다. 주교가 된 뒤에는 카이사리아 외곽에 사회복지 복합건물인 ‘바실리아드’를 건설했다. 바실리아드는 여행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숙소이자 병자들을 위한 병원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바실리우스 주교는 허리에 앞치마를 두른 채 가난한 이들을 접대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이 보호하는 이들의 영혼을 돌보았다. 이것을 보고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제가 볼 때, 바실리우스가 한 일은 ... 구원에 이르는 지름길, 천국으로 올라가는 가장 쉬운 길입니다. ... 사회 지도자들까지도 서로 경쟁하듯이 자선과 관대함을 다투어 실천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리사와 휘황찬란한 식탁, 사람을 혹하게 하는 최고급 요리, 멋들어진 마차,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의복에만 온통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바실리우스의 관심사는 오직 병자들을 치료하고 상처를 낫게 해 주고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병환자들을 깨끗이 씻어 주었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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