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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적인, 엉뚱한 행동으로 성장하는 그녀들, 레이디 버드<레이디 버드>(2018, 그레타 거윅), <프란시스 하>(2012, 노아 바움벡)

[진수미 문화칼럼]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바로 나

사회적 약자는 주류 사회가 권장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키워나가기가 쉽지 않다. 주류 사회의 거절을 이미 경험한 이들은 사회 일반이 규정한 가치를 전도하면서 정체성을 표현해나간다. 작가 오드리 로드(Audre Lorde)가 그러했다. 그녀는 자신을 규정하는 장애인, 흑인, 레즈비언에 따라다니는 낙인을 거부하면서 “내가 나 자신을 정의내리지 않으면 나는 나를 향한 다른 사람들의 환상에 산산조각 난 채 산 채로 잡아먹힐 것”이라고 말했다. 부연하면, 사회적 약자는 주류적 가치 바깥에서, 자신이 구축한 가치관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해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여성 서사에 드러나는 자기 명명 역시 이러한 반(反)성장의 범주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레이디 버드>(2018, 그레타 거윅)는 대학 진학을 앞둔 17세 소녀 크리스틴(시얼사 로닌 분)의 좌충우돌을 그린 영화이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한다.

각본가이자 감독인 그레타 거윅은 이 이름에서 마더 구스의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 어서 집으로 가요”라는 구절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는 새들의 귀소 본능을 의미한다. 한편으로 레이디 버드는 뉴욕 소재의 대학에 입학, 고향 세크라멘토를 떠나 비상하고 싶은 크리스틴의 꿈이 담긴 이름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성은 주류 사회의 가치에 둘러싸여 살면서 그에 저항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존재들이 겪는 내면의 딜레마를 재현한다.

불안정한 존재감에 시달리는 여성들

레이디 버드는 가족과 학교에서 인정받고 싶지만 그것은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엄마 매리언(로리 멧칼프 분)은 버클리대학 출신 오빠 미구엘(조단 로드리게스 분)을 자신보다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학교 연극부에서는 하찮은 배역만 주어진다. 그녀는 반인반조 형상의 포스터를 제작하고 임원 선거에 출마한다. 목표는 당선이 아니다. 어차피 저조한 득표수로 떨어질 것이고 그저 출마가 취미일 뿐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자신의 강인함과 당당함이 포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면 깊은 곳에서 그녀는 자기 확신이 없다. 그러한 까닭에 그녀는 과잉 행동과 말로 자신을 포장한다. 고향을 떠나는 것에 반대하면서 엄마가 그녀를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하자 레이디 버드는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다. 그 결과 한쪽 팔에 분홍색 깁스를 하게 되고, 이는 그녀에 대한 사회의 낙인처럼 보인다. 불안정한 자기 감각은 거짓말로 자신을 위장하거나 절친한 친구를 하루아침에 바꿔버리는 돌발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레이디 버드>의 감독 그레타 거윅이 각본가이자 주연으로 참여했던 <프란시스 하>(2012, 노아 바움벡)는 6년 전에 개봉한 작품이지만 ‘레이디 버드 크리스틴’의 10년 후 삶을 그린 속편으로 읽힌다. <레이디 버드>는 뉴욕 생활을 시작한 크리스틴이 레이디 버드란 이름을 버리는 데서 끝이 난다. <프란시스 하>는 새크라멘토를 고향으로 둔 27세의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 프란시스 할러데이(그레타 거윅 분)의 뉴욕 정착기를 다루고 있다.

프란시스는 친자매 이상으로 친하다고 믿는 대학 동창 소피(믹키 섬너 분)와 함께 뉴욕에서 살고 있다. 뉴욕은 물가가 너무 비싸서 부자만이 예술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일컬어진다. 이곳에서도 프란시스는 여전히 들떠있고 엉뚱한 에너지가 충만한 채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피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시련은 본격화된다.
 

반성장의 주체로서 자기 명명

혼자 집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 그녀는 부자 친구들의 셰어 하우스로 거처를 옮겨서 ‘(남친이) 안 생겨요 프란시스’라 불리는 수모를 당하거나, 무용수 친구 집에서 한시적으로 거주하는 등 불안정한 상태에 내몰린다. 설상가상 연습생으로 있던 무용단에서 해고를 당해서 여름 동안은 기숙사 조교로 돈을 벌면서 대학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소피가 왜 그녀의 행동에 화를 내거나 삶의 방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는지 알게 된다. 나치 출신 재력가 후손인 남자친구와 결혼, 안정된 삶을 추구하려는 자신에 대한 불만이 현실에 투항하지 않는 친구 프란시스에게 투사되어 튀어나왔던 것이다.

프란시스는 무용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쪽으로 삶의 닻을 내려나간다. 무용단의 사무직을 수용하면서 안무가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드디어 그녀는 우편함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을 수 있는 집을 얻는다. 이는 자신을 ‘프란시스 하’라고 명명하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 개명은 그녀가 주류 사회에서 다소 편안해졌음을 의미하는 표지이다. 그녀는 새처럼 고된 비행을 끝낸 뒤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보통의 삶을 누리게 되었다. 이는 분명 축복할 만한 사건이다.

한 남성 평론가는 프란시스를 사랑스럽지만 거부감이 드는 민폐 캐릭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글에서는 프란시스를, 그리고 그녀의 10년 전 모습 레이디 버드를 변호해 주고 싶었다. 여성의 삶은, 남성 중심적 사회의 주류적 방식을 선택해도 소피처럼, 또 레이디 버드 엄마처럼 자신의 선택을 긍정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프란시스 하, 레이디 버드처럼 무의식적/의식적으로 주류적 삶을 거부한다 해도 자신에 대한 긍정이 쉬워지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 오히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여성에 의해서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반성장의 터널을 뚫고 성장하기

영화 <지랄발광 17세>(2017, 헤일리 스테인펠트), <판타스틱 소녀백서>(2002, 테리 즈위고프) 등도 십대 후반 여성의, 소년보다 복합적이고 미묘한, 반성장으로서의 성장담을 그려왔다.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의 이름 뒤에 'e'자를 하나 더 붙이기를 요구했던 <빨강머리 앤>의 앤도 고아 여성인 자신을 주류 사회에 편입시키고자 저항과 타협의 노력을 반복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신디 로퍼도 노래했었다. 소녀들은 단지 재미있기를 원할 뿐이라고.

우리 사회의 무수히 많은 프란시스 혹은 빨강머리 앤들이 지금 이 순간도 돌발적 행동과 엉뚱한 말로 주위 사람들을 당황시키고 있을 것 같다.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주류 질서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정체성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성장하고자 할 뿐이다. 2018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우리 사회의 미래 주역들 앞에, 누구나 자연스럽고 편안한 방식으로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활짝 열리기를 소망한다.

진수미 카타리나
글쟁이. 더불어 잘사는 세상 연구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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