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로메로] 가난한 사람들과 동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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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메로] 가난한 사람들과 동반하라
  • 마리 데니스
  • 승인 2018.04.2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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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메로-15

길앗에는 유향도 없고 그곳에는 의사도 없단 말이냐? 어찌하여 내 딸 내 백성의 건강이 회복되지 못하는가? 아, 광야에 내가 머물 나그네의 거처가 있다면 내 백성을 저버리고 떠나갈 수 있으련만! 참으로 그들은 모두 간음하는 자들이요 배신하는 무리다.(예레 8,22; 9,1)

백성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실패했을 때, 공포와 두려움이 만연되었을 때, 아이들과 노인들이 잔인한 반동세력 진압의 대상이 되었을 때, 오스카 로메로는 오래된 영적 실천을 다시 붙잡았다. 그것은 동반이라는 실천이었다.

한 사제가 매일 그의 백성들이 끌려가고, 강간당하고, 고문당하고, 목 졸리며, 매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겪게 되는 영혼의 어둔 밤을 생각해 보자. 1980년에는 한 달에 1천 명이 살해되었다. 로메로의 어떤 노력도 피의 흐름을 멈출 수 없었다. 절망의 유혹이 너무나 실제였다. 자신의 무력함과 명백한 악과 씨름하면서, 로메로는 살바도르 교회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 – 교회 자신을 내어놓자고 외쳤다.

교회가 슬픔의 길을 함께 걸어갈 때

무력하고 수치스럽게, 멸시받고 박해받는 이 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과 함께 걸을 수 있고 슬픔의 길을 걸어갈 때에 그곳에 함께 현존할 수 있었다. 그러한 충실함은 고통을 막을 수 없으나, 연대의 행동, 증언과 동반의 정수를 행위에 옮길 수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의 하느님께 대한 충실함이 교회에 선물이었듯이, 동반은 교회가 백성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렇다면 동반의 영성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동반의 영성은 가난한 사람들의 정신에 물드는 것이다.

1960년 이래로, 해방신학은 교회에 도전하였고 역사를 변화시켰다. 해방신학은 새로운 복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육화된 복음을 가르친 것이다 – 백성들이 살아내는 복음을. 오랫동안 전문적인 성직자들의 영역이었던 복음을, 처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읽고 해석하였다. 로메로의 말대로 표현하자면: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가 가야할 진실한 길을 보여줍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서 그들에게 자행되는 불의에 반대하며 크게 외치기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로메로, <사랑의 폭력>에서)

동반의 영성

로메로 대주교는 그의 고문당하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깊은 회심을 경험하면서 혼자가 아니었다. 전쟁기간 동안, 수많은 선교사들, 성직자들, 살바도르인 전문가들, 그리고 외국 국적의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의 교회와 만나면서 그들의 시들어가는 신앙에 다시 불이 켜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이런 만남에서, 많은 사람들은 단지 정의에 대한 굶주림뿐만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굶주림도 발견하였다.

이러한 영적 깨어남이 수도원이나 교회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폭격 아래에 있는 시골에서, 좁은 골짜기와 등나무 숲에서 삶을 유지해가는 사람들, 폭격자들이나 기관총 사수들의 발포 사정권에서 벗어나 사이바 나무 아래 숨어 지내는 사람들 속에서 일어났다. 농민과 노동자의 교회가 더 이상 고전적 영성과 맞지 않는 영성을 드러내었다. 새로운 영성은 개별적 거룩함이라는 포도주 부대를 찢어버리고 백성들의 영적 길을 드러내었다.

"불행하게도, 형제와 자매 여러분, 우리는 영적이고, 개별화된 교육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나의 영혼을 구원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세요, 천국이 따라올 것입니다. 끈기 있게 견디십시오. 아닙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구원이 아닙니다."(로메로, <사랑의 폭력>에서)

구원은 담대하게 역사 속에 들어가는 사람들,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감히 동반하는 사람들에게 허락된다. 동반은 현대 후기 영성이면서 매우 오래된 영성이기도 하다. 사막에서, 광야에서, 그리고 이 세계의 킬링필드에서, 피난민들과 추방된 사람들과 떠돌면서, 동반은 가난한 사람들의 운명 그리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하느님의 성령 안에서 신앙의 행위가 된다. 엘살바도르의 전쟁기간 동안, 생명의 하느님은 죽음을 피해 도망가고, 독재정권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동반하였다.

테레사의 이야기

다음의 두 이야기들은 산살바도르의 예수회 대학교에서 두 주일마다 발간되는 인쇄물인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인쇄물은 로메로의 순교 후 1년이 지나서 시작되었다. 이 편지들은 로메로의 영성을 살아있게 하는 데에 중대한 역할을 하여왔고, 로메로의 영성은 가난한 사람들의 영성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영성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의 역사적 요구에 그들의 깊은 영혼에서 응답한 것처럼, 로메로도 그랬다.

테레사의 이야기는 가난한 살바도르인들의 정신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젊은 간호사이다. 수년 전 전쟁 기간에, 테레사가 아직도 산살바도르에 살고 있었을 때, 그는 민간 복장을 한 두 안전요원에게 습격을 당했다. 그들은 테레사를 공터로 데려가 짐승처럼 겁탈하였고 테레사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계속하였다.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 테레사의 주머니에는 15센트 밖에 없었다. 그는 8일 동안 앓았다. 후에 테레사는 일어난 일을 친구에게 말했다: “난 항상 그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할 것이지만, 그들을 미워할 수가 없어.”

테레사는 강간을 당해서 괴로웠지만, 또한 백성들의 비참함 때문에도 괴로워했다. 어느 날 그는 집을 떠나 산속에 숨어있는 백성들에게 합류하였고, 그가 내 놓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을 가져갔다 – 그것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간호 기술이었다. 산속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으나, 그는 백성들의 고난과 슬픔에 함께 했다. 때때로 그는 땅속에 파놓은 형편없는 구덩이 속에 쭈그리고 앉아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삶은 힘들었어요. 우리에겐 거의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누었습니다. 나는 권력가들이 박해했을 때 예수님과 제자들이 도망 다녔던 것을 상상해봤어요. 그들은 언덕에서 잤고 가진 작은 것을 서로 나누고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었지요.”

그러자 폭격 한 가운데에서, 한 여인이 진통을 시작하였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그를 덮어주라고 경고했다. 테레사는 여인을 도우려고 했으나, 그들은 피난처까지 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나무그늘 아래 피했고, 폭탄과 총알 한 가운데, 바로 그 자리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테레사는 두려웠다: 그의 다리는 피난처로 뛰어가고 싶었으나, 애기 엄마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다. 폭탄 공격은 한 시간 정도 계속되었고, 테레사는 아기를 덮어줄 아무것도 없었다. 오늘날 엄마와 아이는 살아있다. 테레사는 자기가 그냥 머물러 엄마를 돕는 힘을 주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말한다.

비극적인 전쟁 한 가운데에서, 테레사의 이야기는 사랑의 증언이다. 그 이야기는 특별하지도 않다. 전쟁기간 동안 이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와 만났던 많은 우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증언할 수 있다. 테레사는 로메로가 여러 번 경험했던 가난한 사람들의 은총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들의 의도는 전쟁을 낭만시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고, 가족들을 분열시키고, 사람들을 원망하게 만들며, 비인간화 시킨다.

정의와 평화는 손쉽게 오지 않는다. 전쟁이 가끔씩 만들어내는 수많은 숨겨진 기적들 중의 하나가 바로 테레사의 이야기이다. 때때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자주 그들을 빨아들이는 증오의 모래주머니에서 사랑을 구조 할 수 있다. 테레사 같은 수천의 사람들이 생명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영감을 받고 로메로 대주교의 사목적 모범으로 용기를 얻어, 비극에 인간의 얼굴을 입힌다. 로메로처럼, 테레사의 정신은 가난한 사람들과 더 깊은 연대로 그를 이끌었다. 로메로는 강론 하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목자로서 저의 위치가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과의 연대로 저를 밀어붙이고, 백성들의 존엄성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하도록 부추깁니다."(로메로, 1979년 1월 7일 강론에서)

테레사의 증언은 로메로가 그의 네 번째 사목서한에서 “동반의 사목작업”이라고 말한 바를 보여주는 모범이다. 로메로는 동반을 이렇게 정의했다, “구체적인 정치선택을 한 그리스도인 개인이나 그룹들의 인격적인 복음화로, 그들의 양심에 따라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적 투신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복음화의 씨앗은 이미 가난한 이들 속에 존재하였다.

이스마엘 이야기

이스마엘은 이 사목적 동반의 또 다른 사례이다. 본당 신부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이스마엘은 자기가 전쟁지역에서 사람들을 동반하는 평신도 교리교사라고 소개한다: “참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이스마엘은 쓴다. “오늘 저는 성경이 우리 백성들에 대한 하느님의 권능과 사랑에 대하여 쓰는 바를 명료하게 깨닫습니다.”

이스마엘은 전쟁의 피해를 가장 극심하게 입은 마을들에서 사목일을 수행하는 수백 명의 농민들, 남자들과 여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군대를 피하여 산속으로 안전을 구하며 피신한 사람들을 동반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모여 있는지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지럽게 엉켜있는 메마른 덤불 밑이나 나무로 덮인 곳에 모여서, 농민 교회는 별들 아래에서 발각될까봐 두려워 촛불 켜는 것조차 불안해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밤에 하느님의 말씀을 기념하고 또 다른 추방자의 복음을 성찰한다. 그리고 그들의 희망은 예수님의 상상적인 희망과 일치한다.

“신부님,” 이스마엘은 그의 사목자에게 쓴다, “우리는 이곳에서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우리의 몸은 소모되어가고, 우리는 걱정이 많습니다. 노인들과 아이들은 우리 모두가 관심을 두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돈도, 옷도, 신발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를 돌보아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이 고통은 다만 출산의 진통일 뿐이고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위로하시는 말씀이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더 이상 울음도, 고통도, 걱정도, 죽음도 없을 것입니다 – 모든 것이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다.”

매우 단순하고 명료한 이 편지는 살바도르 가난한 사람들의 깊은 신앙의 삶을, 복음과 그 결과를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드러내주는 증언이다. 고통 한 가운데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앙과 부활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사목적 동반의 이 두 이야기들은 가장 어려운 전쟁의 순간에 엘살바도르의 가난한 사람들이 견디어 낸 엄청난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야기들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에 대하여 표현하는 위대한 사랑을 알려준다.

[원출처] <오스카 로메로-삶과 글에 관한 성찰(1917~1980)>, 마리 데니스, 레니 골든, 스코트 라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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