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로메로] 예언자들의 하느님은 타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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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메로] 예언자들의 하느님은 타협하지 않는다
  • 마리 데니스 등
  • 승인 2018.04.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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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메로-14

로메로는 그의 동맹자들이 누구인지 분명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고,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명료하게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선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로메로는 두 민중 조직의 창설을 격려했다. 하나는 실종자들의 어머니 조직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민간인들에 대하여 고조되는 폭력을 기록하기 위하여 1978년 창설된, 엘살바도르 비정부 인권위원회였다.

비정부 인권위원회, 주교관에서 일하다 

살바도르 시민들로 구성된 이 조직은 처음부터 주교관 사무실 공간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팀을 이루어 인권침해 상황의 자료들을 모으고 문서화하여 제네바에 있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참혹하게 살해된 시신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자세하게 사진을 찍거나 매일 가슴 찢어지는 증언들을 들어야 하는 팀원들의 과제를 상상해 보자. 그들의 작업은 공포의 자리였고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진실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문서로 만드는 사람들은 오스카 로메로처럼, 똑같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비정부 인권위원회의 7명 구성원들은 한 사람씩 살해되었다. 마리아넬라 가르시아 빌라스는 위원회의 첫 번째 회장으로서 구아자파의 피난민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고문을 받고 살해되었다. 요아킨 카체레스, 미구엘 안젤 몬테네그로, 라파엘 테레존, 레이날도 블랑코, 그리고 에르베르트 아나야, 위원회의 이 다섯 명 팀원들도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감옥에 보내졌다.

고문받는 인권위원들...그들은 살해되었다

고문은 단지 신체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고문의 더 깊은 목적은 정신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어떤 용감한 사람들이 고립, 가족에 대한 위협, 싸우는 명분의 허무함에 대한 끊임없는 조롱을 견딜 수 있겠는가? 위원회 구성원 미구엘 안젤 몬테네그로가 그 힘든 상황을 표현하였다:

"내 경우에는, 엄청나게 잔인한 고문이 가해졌습니다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몸은 심리보다 덜 괴롭습니다. 당신은 어두운 곳에 있습니다. 홀로 있습니다. … 그런데 엄마가 저를 경찰청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죽기로 결심했다고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에르베르트 아나야는 위원회의 두 번째 회장이었는데, 고문자들에게 그들의 선택이 무엇인가를 설명했다. 죽음에 관한 대화는 고결한 아나야를 보여준다.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 잘 알고 있다고 … 그들이 저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행위가 저를 죽이는 것임을. 그런데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만일 그들이 저를 죽여도, 그건 저의 몸일 뿐이고, 저의 영혼은 여전히 정의를 위하여 계속 일할 것이니까요."

에르베르트 아나야는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도 엘살바도르에 남아있기로 결정했고, 이는 동반 행위의 정점을 의미했다. 아나야는 테러를 잘 알고 있다는 살바도르 사람들마저도 경악할 처형자들과 용감무쌍하게 대면했다.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에르베르트 아나야는 공개적으로 국가경찰 책임자인 레이날도 로페즈 누일라의 거짓말과 잔인한 탄압을 비난하였다.

아무도, 누구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그런 비난의 발언을 쏟아낼 수 없었다. 에르베르트 아나야의 동반에 대한 이해는 추상적이지 않았고, 깊은 동감과 행위로 이루어졌다. 수개월 후, 1987년 10월 26일, 암살자들이 그를 찾아왔다. 아나야는 아이들이 등교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집 바깥에서 살해되었다.

죽기 수주일 전 아나야는 공개적으로 말했다, “정의를 위하여 일하지 않는 고뇌가 저의 죽음의 가능성보다 강력합니다. 죽음은 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정의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고뇌는 일생 계속됩니다.” 마리아넬라 가르시아처럼, 에르베르트 아나야도 교회 사람이 아니었지만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일을 계속해 나갔다.

 

하느님의 다스림은 교회의 경계선을 넘어간다

아나야는 소위 “종교인”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단순히 잔인함을 수집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백성들을 옹호하여 군대와 맞섰다. 로메로처럼, 마리아넬라와 에르베르트는 거룩한 사람들이었다. 로메로는 하느님의 다스림이 가톨릭주의나 그리스도교에 국한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의 실패와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용기를 보아왔다:

"정의를 위하여 애쓰는 모든 사람들, 불의한 환경 속에서 정의로운 주장을 펼치는 모든 사람들은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어도 하느님의 다스림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든 다스림을 다 포함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은 교회의 경계선을 넘어갑니다."(로메로,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에르베르트 아나야의 영성은 로메로를 불태운 같은 불길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백성들에 대한 사랑과 정의에 대한 사랑의 불꽃이었다. 그 사랑이 두 사람을 움직였다. 그들은 백성들의 고통을 가슴 속에 지녔다. 두 사람 모두 해방 과정의 신비에 물들어 있었다. 실상 로메로는 가톨릭주의의 바깥에서 더 자주 거룩함을 발견했다. 이러한 통찰에 의하여 너무나 정통적인 한 사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본질적으로 백성들의 영에 연결된 생명의 성령을, 암흑의 중심에서 그들 모두를 포옹하는 성령을 발견했음에 틀림없다.

"가톨릭주의의 바깥에 아마도 더 많은 신앙, 더 많은 거룩함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꺼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은 심지어 그리스도교 운동까지 포함하여 어떤 운동, 교계나 사제직 혹은 수도회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성령은 자유로우십니다."(로메로,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백성들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의 정신이 아나야를 이끌었고, 그래서 그는 그가 옹호했던 백성들처럼 철저하게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행동하지 않는 것은 죽음보다 더 힘든 것이었다. 아나야와 로메로는 서로 매우 다른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외향적이고, 유머가 풍부하며, 매력적이고 강한 성향을 지녔다: 다른 사람은 신중하고, 주저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포기할 수 없는 사목자였다. 두 사람 모두 나머지 우리들이 직면하기를 피하는 것, 죽음 자체와 대면했다. 아나야는 명백했다. 그의 영혼의 죽음은 침묵의 삶을 위하여 지불해야 하는 대가보다 훨씬 높게 있었다.

아나야는 또 다른 로메로 대주교

에르베르트 아나야의 억제할 수 없는 정신, 영이 백성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매우 실제적인 의미에서, 그는 백성들의 정신과 기운을 다시 부활시켰다. 로메로의 장례식 후, 엘살바도르의 거리들은 항의 시위, 행진, 그리고 사람들의 모임 등 백성들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움직임이 깨끗이 사라졌다. 군대나 대통령의 목소리 이외에 아무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용감한 실종자들의 어머니회 이외에 어떤 조직이나 단체도 체포나 죽음을 두려워하여 감히 거리로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1987년 아나야의 죽음은 진정한 민주적 소리의 공간을 열음으로써 민중 조직이 다시 거리를 되찾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의 암살은 백성들이 위험한 도전을 하도록 불을 지폈다. 아나야의 장례미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공공연히 대성당으로 가고 묘지까지 시신을 동반하여 가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아나야의 부인 미르나는 그때 백성들이 느꼈던 정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런 모습은 당시에 매우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움직임 속에는 어떤 활기, 흥분, 이상한 힘이 있었습니다. 분노로 가득찼으나 제 남편의 살해에 대하여 항의하지 않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함 또한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성당에 올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 왔습니다. … 그들은 가진 돈을 몽땅 기부했습니다."

M-16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아나야의 관을 따라가며 거리를 공개적으로 행진하였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에 군대는 당황스러워했다.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어서도, 에르베르트 아나야는 열림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산살바도르의 거리에서 부활하였다. 백성들의 조직은 다시는 절대로 백성들의 항의 공간을 폐쇄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나야, 재미있고 부드러운 아버지

에르베르트 아나야는 다섯 아이들을 남겼다. 그는 불의를 고발하고 정의를 외칠 때에 덜 적극적이어야 했을까? 아이들을 위하여 살아남아야 했을까? 그의 어린 아들 네토는 죽음이 우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우리를 죽인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네토와 그의 형제자매들은 아직도 그들의 재미있고 부드러운 아버지를 찾으며 울부짖지만, 은유가 아니라 사실로, 에르베르트 아나야는 아이들에게 살아있었다. 아버지를 표현하는 네토의 시는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말한다:

그의 피가 흘렀지만,
그는 살아있다.
그들이 상처를 입힐 수 없는 곳에 살아있고
나의 백성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에르베르트 아나야의 삶과 죽음은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과제로서 사랑과 정의를 가리키고 있다.

교회는 목소리 없는 자의 목소리

네 번째이며 마지막 사목 서한인, 국가위기 가운데에서 교회의 사명은 1979년에 쓰여졌는데, 로메로는 우리에게 다음처럼 교회의 사명을 상기시킨다: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는 것,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 해방을 위한 모든 정의로운 영감을 촉진시켜주는 것, 안내자, 힘을 강화시켜주는 사람, 보다 정의로운 사회, 역사 속에서 진정한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준비하는 사회를 달성하기 위하여 모두 합법적인 투쟁을 인간화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과제들은 교회로 하여금 더욱 더 가난한 사람들 속에 현존하기를 요구합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해야 합니다. 그들이 겪는 위험을 겪고, 그들의 운명인 박해를 견디며, 예수님의 사랑에서 첫 번째인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증진시킴으로써 교회의 사랑을 가장 위대하게 증언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로메로,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대주교로서 로메로의 역할은 위험한 역사적 순간에, 형제자매를 살해하는 전쟁 한 가운데에서 교회의 공개적인 목소리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이 왜 로메로의 시성에 관하여 말하고, 백성들이 사랑하는 주교님으로서, 그들을 위하여 말하는 사람으로서 왜 로메로를 기억하는지 설명하는 것은 단지 역사만이 아니다. 또한 로메로의 영성은 사랑을, 특히 우리들 가운데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여정의 표징으로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선포했던 나자렛 예수의 증언을 표현하였다.

이 “기쁜 소식”은 새로운 선포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 기쁜 소식을 위하여 살고 죽는 것은 우리 시대의 비극적인 냉소주의를 무너뜨린다. 로메로는 단순히 기쁜 소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포하지 않았다. 그는 가난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자신이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우리는 가난 그 자체를 칭송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이 세상 속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표징, 성사라고 칭송합니다."(로메로, <사랑의 폭력>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심오한 영적 생명을 더욱 더 발견할수록 로메로는 더욱 더 생명의 하느님을 발견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의 옹호가 한 수줍은 사람을 담대하게 만들어 재물과 권력의 우상에 맞서는 용기를 내게 하였고, 이런 로메로의 모습은 세계에 주는 살바도르 교회의 선물이 되었다. 로메로의 용기는 백성들이 그에게 준 선물이었고, 그는 그 사실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이곳 수도에 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십니다. 교회인 여러분이 저에게 주신 지지를 제외하면, 여러분 앞에서 저는 얼마나 수줍고 겁이 많은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대주교를 그리스도교의 한 표징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로메로, <사랑의 폭력>에서)

로메로의 영성의 정수는 그가 사랑의 하느님께 매달렸고 죽음의 우상들 앞에 절하기를 거절한 것이었다. 가짜 신들이 국가, 이념, 권력, 혹은 재물이든 간에, 그는 세상의 버림받은 사람들의 하느님께 대한 충실성에 있어 흔들리지 않았다. 로메로는 엘살바도르의 죽음의 상인들과 맞섰고 가난한 사람들을 단죄한 세계 체제와도 대면하였다:

"저는 특히 재물을 절대화하는 것을 고발합니다. 이것은 엘살바도르에서 너무나 큰 악입니다. 재물, 사유재산권은 엘살바도르에서 건드릴 수 없는 절대로 여겨집니다. 고압전류선을 만지는 사람에게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불타게 됩니다."(로메로, <사랑의 폭력>에서)

예언자들의 하느님은 타협하지 않는다. 그리고 로메로도 타협하지 않았다. 
 

[원출처] <오스카 로메로-삶과 글에 관한 성찰(1917~1980)>, 마리 데니스, 레니 골든, 스코트 라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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