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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당신의 집과 미소와 또 어떤 여행영화 <소공녀>(2017, 전고운)

[진수미의 문화 칼럼]

장르가 궁금해지는 영화가 있다. <소공녀>가 그러했다. 한 포털 사이트에 ‘멜로/로맨스, 드라마’라 소개되어 있지만 영화를 이미 보신 분은 아실 게다. 대체 누구의 로맨스라는 것인지 고개 갸웃하게 된다는 것을. 여주인공 미소(이솜 분)와 남주인공 한솔(안재홍 분)의 사랑? 이들의 서사는 한솔의 출국으로 마무리되고 엔딩에서 그의 존재는 망각된 듯한데, 뭐 이런 연애담도 다 있나 싶다.

그러다가 한국 사회가 집에 쏟아 붓는 애증 섞인 감정을 그린 영화라고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중얼거렸다. 재건축을 앞둔 동네에 사는 터라 어디에, 어떤 형태의 집에서 살 것인가가 연애만큼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문제임을 알기에 그런 중얼거림이 새어나온 것이리라. 내친 김에 ‘부동산 소재 장르’를 한번 설정해 보자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극히 한국적인 장르 소재, 부동산

한국에서 집은 중산층 재산 증식의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 꼽힌다. 성실한 봉급쟁이로 이것저것 다해보아도 답이 없더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부동산은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패 신화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따라서 대중의 정서구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화계에서 부동산은 영화의 배경으로든 어떤 식으로든 극화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영화 <초록물고기>(1997, 이창동)는 일산 신도시 개발을 배경으로 한다. 개발 이후 황폐화된 삶의 터전에서 일산의 원주민 막동(한석규 분)은 조폭이 되고, 그의 희생을 발판삼아 가족들은 작은 음식점을 차린다. 이들은 신도시 주민에게 생닭을 제물로 잡아 바치는 행위를 희생제의처럼 반복한다. 다음으로 “우리 집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라는 카피를 단 스릴러 <숨바꼭질>(2013, 허정)이 떠올랐다. 이 영화는 집을 빼앗으려는 자에 대항하는 중산층 가장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부동산 개발과 권력의 야합, 그리하여 집이 강력한 축재의 수단이 되는 과정을 그린 <강남 1970>(2014, 유하)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각기 결이 다르지만 대부분 등장인물이 부동산을 향한 한국 사회의 욕망에 순응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집을 둘러싼 욕망은 균열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것 같다. 그러나< 소공녀>는 이 계열에서 예외적인 접근법을 보여주는 신선한 영화다.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영화는 2014년 9월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2000원 올린다는 정부 발표가 났던 때를 배경으로 한다. 미소는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데다 빚 없이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지라 대학을 중퇴하고 가사도우미로 생활하고 있다. 그녀 삶의 작지만 커다란 위로는 담배, 위스키, 남자친구 한솔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올랐어도 흡연을 중단하지 않는다. 이 와중에 위스키 값이 오르고 월세도 5만원 오르자 자신에게 가장 불필요해 보이는 집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가사도우미 미소는 어쩌면 이미 집과 집 사이를 여행하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책상 대용으로 사용하던 오렌지 색 트렁크에 짐을 꾸리고 대학 시절의 밴드 동아리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이 선택은 비현실적이지만 이로써 영화는 한국인의 거주지를 탐색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받게 된다.

베이스를 치던 문영(강진아 분)은 점심시간에 링거를 맞으며 일상을 버텨내는 대기업 직원이 되었다. 그녀는 ‘차도녀’의 방어적 태도로 미소의 방문을 거절한다. 키보드 주자였던 현정(김국희 분)은 취준생 남편과 함께 시부모를 모시고 연립주택에서 눈치를 보며 살고 있다. 신혼의 보금자리로 아파트를 구입했지만 아내가 떠나고 홀로 남은 드러머 대용(이성욱 분)은 월급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아파트 대출 원금과 이자로 지출하는 하우스푸어가 되었다. 보컬 포지션 록이(최덕문 분)는 캥거루족으로, 아들의 결혼을 학수고대하는 나이든 부모와 함께 오래된 저택/빌라에서 거주하고 있다. 한때 뜨거운 기타리스트였던 정미(김재화 분)는 시부모가 물려준 마당 딸린 저택에서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자신을 맞추는, 분열적인 삶을 살고 있다.

 

매력적인, 너무나 매력적인

미소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신은 친구 재경의 집에서 일을 마친 뒤 쌀을 얻어가는 장면이다. 쌀 봉지에 구멍이 난 것도 모르고 그녀는 휘적휘적 길을 걷고 뜻밖의 쌀 보시(?)에 거리 비둘기들이 신이 나서 그녀를 뒤쫓는다. 이것이 그녀의 여행법이다. 그녀는 의도했건 아니건 주위에 무언가를 베풀며 산다. 자신이 그러하므로 다른 사람들도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음식솜씨가 없는 친구에게 정성껏 반찬을 해주고 이혼으로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는 친구에게는 따뜻한 아침밥과 청소로 위로와 마음의 안정을 선물한다. 이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돌봄 노동의 가치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는 어머니가 주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아에 싱글녀인 미소의 행위는 예외적이고 특별하다. 그녀는 여성적 특질로 간주되는 모성적 가치와 남성적 특질로 여겨지는 담배, 술, 연애의 쾌락을 동시에 실천하는 인물이다. 또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주홍글씨인 ‘헤픈 여자’ 딱지에도 아랑곳없이 타인을 대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소공녀>와 더불어, 나는 한국 영화에서 ‘여성’과 ‘헤프다’의 조합에 쿨한 태도를 보이는 인물을 두 번째로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첫 번째 인물은 <가족의 탄생>(2006, 김태용)의 채현(정유미 분). 그녀는 자신을 헤프다고 비난하는 경석(봉태규 분)에게 “헤픈 게 왜 나빠?”라고 되묻는, 당당한 매력녀였다. 미소는 술집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민지(조수향 분)가 아빠를 모르는 아기를 임신했다고 말해도 놀라지 않는다. 민지가 자신이 살고 있는 모던한 감각의 고급 오피스텔을 누군가에게 ‘반납’할 것이고 당신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 악을 써도 무덤덤하다. 헤픈 여자라 자신을 칭하는 민지의 위악에도 ‘그게 어때서?’라고 되묻는 초연함.

미소는 도덕의 가면을 쓴 범속한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도와주는 미장센이 하얗게 새어가는 그녀의 머리칼이다. 그녀는 도시에 거주하는 도인처럼 보인다. 백발을 휘날리며 위스키 한잔하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신비롭고 매력적인 도인.

부동산 신화에 균열을 가하는 판타지

돌아갈 곳 없는 미소의 여행은 타인이 가하는 상처에 무방비할 수밖에 없다. 가장 많은 것을 소유한 이가 그녀에게 가장 무자비하다. 그네에게 미소의 돌봄 노동은 푼돈으로 환산되는 것이고, 미소의 자유로움은 안온하다고 여기는 삶의 질서에 위협이 될 뿐이다.

자신의 여행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미소가 집을 가지려고 시도하면서 영화는 서울에서 가장 저렴한 동네, 깎아지를 듯한 높이로 관객을 초대한다. 부모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미소가 원하는 것은 보증금 없고 월세가 싼 집. 그래서 찾아간 곳은 서울의 꼭대기 중 꼭대기, 계단 동네-서울에 산동네는 더 이상 없는 것 같다-에 전기 배선도 없는 더러운 공간이다. 한국에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 도움 없이 번듯한 집을 장만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인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다. 미소는 밴드에서 어떤 포지션이었을까. 베이스, 키보드, 드럼, 보컬, 기타. 밴드는 미소 없이도 연주가 가능한 완전체처럼 보인다. 이는 미소라는 인물이 바람처럼 우리를 스쳐가는 판타지적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러므로 미소는 누구인가? 우리는 각자에게 되물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난해도 빛이 났던 어떤 시간. 빌딩 숲에서 질식당하지 않으려고 가쁘게 숨을 쉬고 있는 지금 우리의 작고 둥글고, 붉은 심장.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는 미래의 어떤 시공간.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가능성의 세계.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존재의 도시’가 종교적인 ‘사랑의 도시’(正)와 자본주의적 질서가 강요하는 ‘소유의 도시’(反)의 변증법적 합(合)의 세계라고 말했다. 미소의 세계도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새로운 가능성에 속해 있다. 저마다의 여행길을 천천히 걷다보면 그러한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를, 우리의 여행이 그런 것이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의 집과, 미소와, 여정에 건배!

진수미 카타리나
글쟁이. 더불어 잘사는 세상 연구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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