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로메로] 수녀원에 남을 것인가, 가난한 이들을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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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메로] 수녀원에 남을 것인가, 가난한 이들을 택할 것인가?
  • 마리 데니스
  • 승인 2018.03.2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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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메로-12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는 로메로의 예언자적 현존의 유산들 중 하나는 실상,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를 복음화 한다는 발견이었다. 가난한 사람들과 직접 함께 일했던 여성 수도자 에바는 자신의 영성은 물론 로메로의 영성을 구성하였던 가난한 사람들의 가치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복음의 역사적 요구에 응답하는 영성이었다: 에바는 난민들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용서하는 자세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무척 어려워하는, 용서하는 큰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셋째 아들이 어제 죽은 한 어머니가 말씀의 예식에서 그분의 적들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그들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것들을 없애주시라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를 합니다.”

난민들은 고통을 극복하는 큰 힘을 갖고 있다. 그들은 고통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시련의 시기는 인생의 여정에서 다만 한 단계에 불과하다고 확신한다. 에바는 용서와 희망의 이 이야기를 말했다: “한 여인은 남편이 군속 세력에 의해 살해되자 여섯 아이들을 이끌고 다른 마을로 도망갔습니다. 난민 캠프에 왔을 때, 그는 역시 미망인이고 일곱 아이들의 어머니인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남편은 첫 번째 여인의 남편을 죽인 그 군속 부대의 구성원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첫 번째 여인은 두 번째 여인과 아이들에게 자기 식량을 주었습니다.”

 

에바에게, 가난한 사람들은 그의 수도 성소의 쇄신에 심오한 원천이 되었다: “저는 피난민들과의 이 체험이 저의 성소를 재발견하고, 공동체 생활의 의미를 발견하며,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더 가난하게 살고 더 집중적인 기도생활을 하는 데에 큰 기회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로메로 대주교는 에바의 수도 성소에 또다른 쇄신의 원천이 되었다. 교회안의 분열 때문에 에바는 성소에 갈등을 겪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을 때, 에바는 25년 동안 가르멜 수녀였다. 박해가 점점 더 악화되자, 그는 농민들과 노동자들의 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그와 다른 네 명의 수녀들이 본당의 사목활동에 관여하고 있을 때 그들의 장상이 일을 그만두라는 명령을 내렸다. 왜냐하면 수도회에 군대의 보복이 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자 에바와 둉료 수녀들은 로메로 대주교에게 가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문의하였다. 수녀들은 가르멜 수녀직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을 택해야 하는지 그 결정의 순간에 이르렀다고 로메로에게 설명했다. 로메로는 주의 깊게 들었다. “그분은 우리가 수도회 안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주교님은 가난한 사람들이 반드시 복음화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후, 로메로는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하여 경당에 가서 침묵하기를 제안했다. 그리고 이런 결정에 도움이 될 만한 성경의 한 구절을 읽으라고 말했다. 매우 부드럽게 말하는 여인인 에바는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지금도 웃는다. 로메로가 주었던 성경구절은 루가 복음 4장 18절이었다: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래서 수녀들은 그들의 수도회를 떠나 교회법에 따라 서원하지 않는 새로운 수녀들의 공동체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수녀들은 그들의 기초 그리스도교 공동체 앞에서 서원하기로 선택하였다. 에바는 그에게 붉은 옷을 만들어 준 여인을 기억한다. 그것은 백성들의 옷으로, 에바의 가르멜회 수도복을 대체할 것이었다. “그 여인, 체칠리아는 젊은 교리교사였습니다. 그는 후에 군대에 살해되었습니다. 그들은 체칠리아의 혀와 눈을 잘라냈습니다.”

수녀들이 그들의 서원 – 순명(그들 가운데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충실함), 정결(공동체를 가족으로 여기며 항상 섬김), 그리고 가난(사람들이 살았던 것처럼 살아감)의 서원을 했을 때 – 증언한 주교는 오스카 로메로였다. 에바는 말하기를, “그날은 기쁨과 춤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가운데에 로메로 주교님이 있었습니다.”

로메로는 그날 단 한 가지만 중요하게 생각했다. 수도자들이 그들의 수도원을 떠났고, 교회가 인준하지 않은 수도회를 창설하는 자리에 그가 주례로 있었다고 교황 대사에게 비판을 받게 될 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로메로의 단 하나 질문은, 그곳에 모인 수많은 구아자파 농민들이 수녀들의 서원을 “받아들일 것인가”였다고 에바는 말한다. “주교님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우리 여성들이 그들에게 증인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원출처] <오스카 로메로-삶과 글에 관한 성찰(1917~1980)>, 마리 데니스, 레니 골든, 스코트 라이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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