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정치를 했고 대통령은 설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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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정치를 했고 대통령은 설교를 했다
  • 김경집
  • 승인 2018.03.19 17:16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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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 칼럼]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세상에서 자기네들은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고 있다며 착각하는 자들이 있다. 수구와 극우를 오가며 탐욕과 무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자들이 대형교회를 이끄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그들의 되먹지도 않은 설교를 들으며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신자들을 보면 마치 자동응답기 같다. 목회자가 어떤 말을 해도 그 외침을 자동으로 내뱉는. 더 희한한 건 그런 자들의 대형교회에 ‘멀쩡한’ 신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이성을 갖고 있다면 그게 말이 되는지, 더 나아가 그 독설들이 반복음적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사람들조차 교회에서는 별 차이 없이 똑같아진다는 점이다.

나라와 국가지도자를 위한 기도회를 연다는 걸 탓할 수는 없다. 좋은 뜻일 게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국가조찬기도회가 보여준 행태는 그리 탐탁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을 무참히 죽이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시절에 그 조찬기도회는 아부와 세력의 과시로 일관했다. 물론 좋은 뜻으로 불러놓고 면전에서 비난할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예언서를 읽어본 자들이라면 최소한 은유적 수사로라도 에둘러 비판의 말을 정문일침처럼 가했어야 했다. 지금까지 그런 모습은 없었다. 게다가 그 기도회를 주최한 이른바 지도 목회자들의 면면을 보면 부끄럽다 못해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청와대 홈페이지 사진캡처

이번 국가조찬기도회가 화제에 올랐다. 목사는 정치를 했고 대통령은 설교를 했다는 평가가 딱 들어맞는 풍경이었다. 설교 전체의 맥락을 짚어보면 설교한 소강석 목사의 메지시가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두둔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분명 정치적인, 그것도 시대착오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고 거기에는 현실에 대한 교회의 진지한 성찰도 반성도 없었다. 그저 일방적으로 교회가 바라는 사항들만 나열한 셈이다.

“정의도 지나치면 잔인함이 된다.”며 “적폐청산이 또 다른 적폐를 낳으면 안 되며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 것은 겉으로 보면 균형 잡히고 자비에 근거한 말 같지만 적폐를 눈감아 달라는 요구고 그 적폐에는 교회의 그것도 포함된다는 함의일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설교가 “교회 현안과 교계의 목소리를 성경의 가치관에 맞게 차분히 잘 전달한 것 같다.”는 다른 목사의 평가를 보고 있자니 답답함을 넘어 울화가 치민다. 한국교회가 불쌍하다 싶다.

빨갱이 타령 대신에 동성애 반대로...

정말 웃기는 건 갑자기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주장이었다. 교회는 동성애를 반대하기 때문에 그걸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은 잘못되었다면서 교회는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변명이 섞였으니 모순적 발언이지만 방점이 '동성애 반대'라는 건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들이 그토록 숭배하는 미국에서도 그러는지 되묻고 싶다.

사실 교회가 왜 갑자기 동성애 반대에 집착하는지는 눈에 훤하게 보이는 짓이다. 보수우파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안보와 국방의 개념에서 변종으로 나와 못되게 써먹은 빨갱이 타령이 약효가 떨어지자 종북 타령으로 변주곡을 써먹었는데도 시민들이 끝내 질려했다. 그건 보수의 탈을 쓴 수구세력의 민낯을 보여준 지난 이명박근혜 정부의 타락과 무능이 자초한 일이다. 

교회가 마치 사회를 구원하는 듯 착각하며 써먹은 게 빨갱이 타령과 그 변주곡이었는데 그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그 세력을 붙잡아둘 미끼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건 교회의 정치적 위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위기감을 일으켰고 그 대안으로 찾아낸 게 바로 동성애 문제다. 그게 정말 사회를 붕괴시킬 만한 악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면 왜 지금까지 그 문제는 들고 나서지 않았는지 대답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런 허술하고 비겁한 전술을 마치 비책인 듯 들고 있으니 가련할 뿐이다.

오히려 대통령은 ‘희년’의 의미를 상세히 서술했다.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 종으로 팔려갔던 사람들이 자유로움을 받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빚을 탕감 받는다며 희년의 정확한 의미를 새겼다. 거기 있는 목사들이 그걸 모를까봐 말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희년 타령하려면 그것부터 실천하고 교회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책으로 들렸다, 내겐. 교회는 “약자는 속박으로부터, 강자는 탐욕으로부터 해방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성경 속 희년입니다.”라며 포용화 화합의 정신을 희년을 통해 실천해야 함을 강조한 대통령의 응답을 한 해 내내 새겨야 한다.

남북회담 실패를 간구하는 목사들

대통령은 대북특사단의 평양 방문을 언급하며 평화와 민족의 화해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인도적 대북 지원과 이탈 주민 지원에 대한 한국 교회의 역할과 기여는 이미 꽤 컸다. 그걸 상기시킨 건 앞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는 당부였다. 포용하고 화합하는 예수님 사랑을 대통령이 언급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이른바 한국의 대형교회를 대표하는 어떤 교회의 얼빠진 목사라는 자는 남북회담 실패를 위해 전교인이 기도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하니 이게 교회인지 극우세력의 집회인지 분간이 어렵다. 그걸 듣고 ‘아멘!’하는 자들도 해괴한 자들이다.

여러 대형교회들이 드러내는 행태는 민폐와 적폐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세습은 공공연하고 끊이지 않는 추문과 돈 문제는 여전하다. 국민이라면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조세의 의무조차 끝내 수용하지 않으면서 종교와 사회의 분리를 운운하는 걸 보면 코웃음이 난다. 그날 조찬기도회를 주관했고 설교까지 맡았던 그 목사가 공적인 장소에서 드러내놓고 이중장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핏대를 올린 건 이젠 가십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교인의 수를 정치적 유권자의 가능성으로 치환시켜 협박함으로써 정부의 과세 정책을 꺾었다. 그들은 승리한 것으로 착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착각의 값을 치르게 될 시간은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

천주교도 다르지 않다

개신교가 드러내는 이런 추한 민낯이 가톨릭교회에서 없는 것처럼 착각하는 건 더 웃기는 일이다. 수원교수 한만삼 신부의 성추행 사건과 그 이후에 보인 교회의 처신과 다른 여러 교구에서 폭로되는 유사한 사건들은 교회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준엄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인식을 하고 있는지 의심의 눈길을 거두기 어렵다. 오히려 겉으로는 한신부 사건을 사죄한다고 하면서 사제들에게 보내는 SNS로는 사흘쯤만 지나면 지나갈 것이니 당분간 자중하라고 지침을 내리는 교회를 보면 아연하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교회와 주교들 그리고 사제들이 보인 권위주의적 태도와 보수적 시선이 극적으로 바뀌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일부 개신교회 목사들처럼 권력과 부에 대한 탐욕은 훨씬 덜 하지만 교계제도에 순치된 사제들의 눈치 보기와 본당에서 벌어지는 권위주의는 교회의 쇄신을 방해한다. 주교에 대한 고언은 반역처럼 여기는 관행적 태도는 숨이 막힌다.

대구대교구에서 벌어진 사태는 그 대표적 사례다. 몬시뇰의 충언은 마치 왕조 시대의 상소문과도 같았다. 오랜 기간 벌어진 추악한 사례에 대해 몬시뇰의 절절한 충언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그에게 정직의 징계를 내리고는 뻔뻔하게 나이를 핑계로 공식 은퇴의 길을 강요한 대주교는 도대체 문제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걸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교구의 사제들은 어떤 심리인지, 그리고 교구의 진짜 주인인 신자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가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교구에서 발행하는 신문(그것도 평화신문이나 가톨릭신문처럼 종교와 선교를 표방한 신문이 아니라 일반신문이다)의 논조는 또 어떤가. 가히 TK의 ‘조선일보’다. 아무리 대구경북지역의 보수 색채가 짙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선조차 무람하게 짓밟는 이 신문은 사회의 소금이 아니라 독이다.

악의 방조자는 결국 악의 세력의 일부가 될 뿐

신자들은 교회와 주교들 그리고 사제들의 이 시대착오적이며 반사회적인 행태에 대해 복음정신에 비추어 반성해야 할 지경에 오히려 오불관언이다. 또한 신자들은 사제들에 대한 무비판적 순응으로 일관한다. 이러면서 복음을 어찌 전할 것이며 무슨 낯으로 사회를 바라볼 것인가. 소수의 일탈은 어느 조직에서나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교육자와 성직자 그리고 언론인에게 상대적으로 큰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가 타락하고 일반시민들도 두려워서 혹은 거기에 방조한 죄업 등의 탓으로 함구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때가 덜 묻은 그 사람들이 준엄하게 사회를 비판하고 심판할 수 있어야 정상적인 상태로의 복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교회의 작태는 그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예수의 이름을 팔아서 예수님이 하지 말라는 짓을 골라서 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양적으로는 성장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시민들과 신자들이 기대와 희망을 조금씩 거두고 있다는 점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교회와 성직자들의 회개와 개선만 바라보기보다 신자들이 깨어 비판하고 부당한 억압에 맞서 싸워야 한다.

악의 방조자는 결국 악의 세력의 일부가 될 뿐이고 오히려 악의 세력이 발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뿐이다. 더 이상 이런 작태가 반복되어서도 안 되고 그저 시간이 지나면 잊을 것이라 착각해서도 안 된다. 이제 종교를, 교회를, 복음을 욕되게 하는 자들을 쫓아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공정이 없음을 주님께서 보시고 언짢아하셨다.
그분께서는 한 사람도 없음을 보시고, 나서는 자가 하나도 없음을 보시고 놀라워하셨다.
그리하여 그분의 팔이 그분을 돕고 그분의 정의가 그분을 거들었다.”
(이사 59, 15-16)

김경집 바오로
인문학자,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생각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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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잡기 2018-03-29 10:56:20
아.. 여기는 글만 적고 댓글은 확인 안하나 보네요;;
제가 드린 글들을 보시고 어떤 생각을 하시고 계시는지 궁금 했는데요.
소통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 일꾼 사이트 운영하시는 분께서 필자분에게 내용을 전달하셔서 이런 댓글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봐 주셨음 좋겠습니다.

그마저 소통이 안되면.. 안타깝네요.

바로잡기 2018-03-20 21:10:06
동성애 차별금지법 입법을 통해 동성애를 법적으로 보장해준 나라에 대해서 공부해보시길를.. 영국의 경우 기독교 가정의 부모가 자녀에게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다 라고 성경적 가르침대로 가정교육하고, 동성애를 위한 레인보우데이에 자녀를 등교시키지 않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가? 부모는 정신과상담을 받아야 했고, 자녀와 분리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무엇 때문에? 바로 동성애를 옹호하는 차별금지법안의 법조항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성적지향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한다"라는 문장이 갖는 힘이 얼마나 큰지 생각해보시길

바로잡기 2018-03-20 21:06:29
교회가 ..... 바로 동성애 문제다. 그게 정말 사회를 붕괴시킬 만한 악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면 왜 지금까지 그 문제는 들고 나서지 않았는지 대답해야 한다. --> 미국과 영국교회가 지금 어떻게 무너졌는지 알고 있는가? 아니 영국교회가 무너진 건 알고 있는가? 바로 동성애와 이를 차별하지 말라는 차별금지법이 무너지게 된 시작이다. 필자는 이 부분을 한번 공부해보시기를!!

바로잡기 2018-03-20 21:04:01
예수의 이름을 팔아서 예수님이 하지 말라는 짓을 골라서 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양적으로는 성장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시민들과 신자들이 기대와 희망을 조금씩 거두고 있다는 점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교회와 성직자들의 회개와 개선만 바라보기보다 신자들이 깨어 비판하고 부당한 억압에 맞서 싸워야 한다. ---> 맞서 싸워야 한다는게 당신의 신념이지 일반 교회 성도들의 신념은 아니다. 왜 우리를 선동하는가? 예수의 이름은 누가 팔고 있는 것인가. 당신인가 우리인가?

바로잡기 2018-03-20 21:02:33
국민이라면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조세의 의무조차 끝내 수용하지 않으면서 종교와 사회의 분리를 운운하는 걸 보면 코웃음이 난다. 그날 조찬기도회를 주관했고 설교까지 맡았던 그 목사가 공적인 장소에서 드러내놓고 이중장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핏대를 올린 건 이젠 가십거리도 되지 않는다. --> 여기서 말한 이중장부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장부가 아니다. 내용을 정확히 이야기하고 코웃음 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