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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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 한상봉
  • 승인 2018.03.1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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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 가장 위대한 기도-7

기원전 4년경 “로마인의 친구”이며 “유대인의 왕”이었던 헤로데왕이 죽었을 때 유대 전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 따르면, “유다라는 이름의 반란자는 갈릴래아의 세포리스에서 필사적인 사람들을 규합하여, 왕궁을 공격하여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무기들을 모두 탈취하였으며, 자기의 부하들을 무장시켰으며, 그곳에서 강탈한 모든 재물들을 갖고 떠났다.”(17.271)고 한다.

그러자 로마의 시리아 지방 수도인 안티오키아 남쪽에 주둔하던 군단병력이 움직였다. 당시 시리아 총독 푸블리우스 퀸틸리우스 바루스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12,000명의 정예부대와 2,000명의 예비 기병대, 1,500명의 예비 보병대를 투입시켰다. 바루스는 주력부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했으며, 그곳에서 “반란의 책임을 물어 십자가에 처형한 사람들의 숫자가 2천 명이었다.”(<유대고대사> 17.295)

바루스는 “자신의 군대의 일부를 자신의 아들과 친구의 아들에게 넘겨주어, 프톨레마이스 인근지역에 사는 갈릴래아 사람들과 싸우도록 하였다. 그의 아들은 자기에게 대항하는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고 궤멸시켰으며, 세포리스를 장악한 다음에는 주민들을 노예로 삼았고, 그 도시를 불태웠다.”(17.288-89) 이 세포리스 인근에 있던 나자렛 주민들도 이 참화를 비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년기부터 로마인들의 공격을 귀가 닳도록 들었을 예수는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존 도미니코 크로산은 <가장 위대한 기도>에서 “로마의 폭력적인 지배에 저항해서 폭력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으로 우리를 이끌지 마시고, 그런 악한 행동으로부터, 또는 그런 악한 자로부터 우리를 구출해 달라고 하느님께 요청하는 것”이라고 했다.

 

by Duccio di Buoninsegna

여기서 잠시 광야에서 예수가 받은 유혹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3-4)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4,6-7)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사탄아, 물러가라. ...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4,9-10)

첫 번째 유혹은 굶주린 예수에 대한 사적인 유혹이었고, 두 번째 유혹은 신적 정체성을 입증해보라는 공개적인 유혹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 유혹은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주겠다는 것인데, 예수는 악마가 소유한 나라와 영광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고, 다만 그런 예배를 거부할 뿐이다. 권세와 영광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거부했다. 또한 악마의 마지막 유혹은 권력/폭력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쟁취하려는 유혹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권능과 악마의 권세를 혼합시키는 일이다.

복음서에는 또 다른 유혹에 관한 언급이 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는 기도하며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마르 14,37-38)

예수가 체포당할 때, 베드로는 방어적인 칼(마르 14,17)을 사용했으며,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방어적인 칼을 거부했다.(마태 26,52,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제자들을 파송하는 Q판본에서는 예수가 “여행용 자루도, 속옷 두 벌도, 신도 지팡이도, 지니지 말아라”(마태 10,9)고 명령한다. 최소한의 방어적 무기도 지니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Q자료보다 10년 혹은 20년 후에 기록된 마르코복음에서는 ‘지팡이 지참’은 허락한다. 그리고 더 늦게 기록된 루카복음에서는 막판에 예수는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없이 보냈을 때,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하고 제자들에게 묻고,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기고 여행 보따리도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칼이 없는 이는 겉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루카 25,35-36)고 말한다. 이렇게 서로 모순되는 예수의 발언이 기록된 것은 훗날 그 제자들에게 개인적 방어수단마저 포기하라는 예수의 발언이 너무 버거웠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예수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려면,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지금여기에서 살기 시작해야 하며, 그게 곧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드높이는 일이라고 믿었다. 마찬가지로 그 나라는 공평하게 빵이 나누어지고, 부채 때문에 종살이하는 사람이 없으며, 더 이상 폭력이 정당화 되지 않는 나라이다. 그래서 예수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와 다른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빌며, 이미 유혹에 빠진 자들을 그 악/악한에게서 구출해 달라고 청한다.

[참고]
<가장 위대한 기도>, 존 도미닉 크로산, 한국기독교연구소, 2011
<예수의 독설>, 김진호, 삼인, 2008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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