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웬] 개인주의를 넘어 취약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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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 개인주의를 넘어 취약한 채로
  • 헨리 나웬
  • 승인 2018.03.19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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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겪는 고립의 대부분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가능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자신이 상황을 지배하고 있으며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자신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이 자기 의지는 많은 매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힘을 느끼게 해주고 빨리 움직이게 해주며 우리가 우리자신의 상관이라는 만족감을 주고 많은 보상과 대가를 약속한다. 그러나 이 자존의 밑에는 외로움, 고립 그리고 삶에서 자존을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끊임없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출처=pixabay.com

나는 개인주의의 보상과 벌을 모두 경험했다. 대학 교수로서 나는 생산적이고 인기 있는 선생이었고 여기에 대한 보상을 수많은 학문적 업적을 통해서 얻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바로 끝에서 나는 매우 외롭다는 것을 느꼈다. 공동체에 대해 말하는 동안 받게 되는 모든 찬사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누구에게 참으로 속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기도의 중요성을 확신 있게 제시하면서도 나 자신은 충분히 기도할 만큼 조용해질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성령 안에서 성장하는 길로서 상호적인 취약함을 격려하면서도 나 자신은 매우 조심스럽고 심지어 내 명성이 흔들리는 시점에서 방어적이 되기까지 한다. 학문세계의 결정적 계기에는 경쟁이 있다. 연민을 가르치는 사람들까지 적어도 그들이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다면 경쟁할 수밖에 없다!

삶의 최종 결정선, 핵심을 연민으로 삼고자 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열리고 취약한 채로 있기 위하여, 공동체 생활에 초점을 두기 위하여, 그리고 기도가 우리 삶의 호흡이 되도록 하려면 우리자신과 다른 이들 사이에 세워 놓은 수많은 벽들, 우리의 안전한 고립을 유지하기 위하여 세운 많은 벽들을 무너뜨리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일생에 거치는 힘든 영적 투쟁이 된다. 왜냐하면 한 손으로 벽들을 무너뜨리면서 또 다른 손으로 새로운 벽들을 세우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대학교를 떠나 공동체 삶을 선택한 후, 나는 공동체에서도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게임을 할 수많은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참으로 진정한 회심은 장소를 바꾸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마음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원출처] <Henri Nouwen>(Robert A. Jonas, Orbis, 1998)
[출처] <참사람되어> 200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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