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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예루살렘 성전의 운명은?갈릴래아와 예루살렘- 5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고 그곳에 계약 궤를 모셨다.(1열왕 8,1-30) 이것은 다윗이 시도했던 종교적 수도로서 예루살렘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것이었다. 솔로몬은 궁전과 성벽 등 많은 건축물들을 지어 예루살렘이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하였다. 솔로몬이 죽은 뒤 남 왕국과 북 왕국이 분열되었다.

남 왕국은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수도는 예루살렘이었다. 남쪽 유다 왕국은 북 왕국 멸망(기원전 722년경) 후에도 존속했다.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을 초대 임금으로 20명이 왕위를 계승하여 남쪽 유다 왕국을 지배하였다.

기원전 8세기 후반에 아시리아가 북 왕국을 침략했을 때 많은 피난민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와서 성 바깥 서쪽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의 임금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위협하였을 때, 새로운 성벽이 서쪽 언덕을 둘러싸기 위해 세워졌고 도시의 규모는 네 배로 확장되었다. 2역대 32,5에 따르면, “히즈키야는 용기를 내어 허물어진 성벽들을 모두 쌓고 탑들을 높였으며, 성 밖에 또 다른 성벽을 쌓았다.”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은 바빌론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기원전 604∼562년)에 의하여 사상 유례 없는 침략으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치드키야 임금은 바빌론에 굴복하라는 예레미야의 충고에도 불구하고(예레 27-29장), 이집트에 의지하면서 바빌론에 반기를 들었다(2열왕 25,1). 그러자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는 기원전 588년 유다 왕국을 침공하여 예루살렘을 일 년 반 동안 포위하고 함락시켰다. 바빌론은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완전히 파괴하였으며 전 유다 왕국을 황폐화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바빌론 유배는 기원 539년경까지 계속되었다.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이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바빌론의 포로들을 해방시키는 칙령을 발표했다. 바빌론 유배에서 귀환한 유다인들의 당면과제는 바빌론 제국에 의해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이었다(에즈 1,1-4). 성전은 기원전 515년에 다시 세워졌는데, 이것을 제2성전(Second Temple)이라고 부른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재건된 이후 기원후 70년 이 성전이 로마 제국에 의해 파괴되기까지의 기간을 제2성전 시대라고 한다.

느헤미야(기원전 445-443)는 페르시아의 임금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의 성벽을 다시 세웠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우리는 불행에 빠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성문들은 불에 타 버렸습니다. 자,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읍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합시다.”(느헤 2,17) 느헤미야 당시 예루살렘 주민의 수는 많이 감소하였기 때문에 성벽의 규모는 솔로몬 당시의 도시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느헤 12,27-43는 예루살렘 성벽 봉헌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 이 본문에는 당시 예루살렘에 존재했던 거름 문, 샘 문, 다윗 성, 물 문, 가마 탑, 넓은 성벽, 에프라임 문, 옛 문, 물고기 문, 하난엘 탑, 백인 탑, 양 문, 경비대 문과 같은 다양한 지명과 명칭이 소개된다.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23년에 사망)은 지중해 주변과 중근동에 대대적인 정복 사업을 벌였다. 그는 자기가 정복한 지역에 새로운 도시들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를 널리 퍼뜨리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 문화와 동방의 문화가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생겨난 것이 바로 헬레니즘이다.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팔레스티나를 점령하였다. 그가 죽은 후 팔레스티나는 기원전 320-200년경 사이에는 프톨로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고, 기원전 200-164년경 사이에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대에는 유다이즘과 헬레니즘 사이의 다양한 문화적 충돌이 일어났다.

기원전 166년에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들이 셀레우코스의 임금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박해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는데 이것이 마카베오 항쟁이다. 유다 마카베오는 기원전 164년에 예루살렘을 되찾고 성전을 정화하였다. 마카베오 가문은 하스모니아 왕조를 세웠다. 기원전 2세기 전반부의 마카베오 항쟁 이후 예루살렘은 다시 성장하였다. 요한 히르카누스(기원전 134-104년)와 알렉산드로스 얀네오스(기원전 103-76년)와 같은 강력한 하스모니아 왕조의 임금들은 먼저 서쪽으로, 그 다음으로는 북쪽으로 예루살렘을 확대하였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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