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불쑥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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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불쑥 찾아온다
  • 박규옥
  • 승인 2016.05.0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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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박규옥 칼럼] 

내 친정아버지는 파킨슨씨병을 13년 동안 앓다 돌아가셨다. 오래 병을 앓는 동안에 자주 찾아보지도 못 했고, 명절이나 방학에 만날 때면 늘 농담도 잘 하셔서 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과 같은 해에 같은 병 판정을 받고도 여러 해를 더 사신 아버지한테 나는 “하느님이 교황님보다 우리 아빠를 더 사랑하시나 보네.” 하고 농담도 자주 했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그럴지도 모르지, 하며 웃곤 하셨다.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굳어지니 할 수 있는 만큼 운동을 하라는 의사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느라 집에 사교춤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불러 춤을 배우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병환 중이라고는 해도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환자로서 괴로워하는 모습 보다는 유쾌해 보이는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다보니 중요한 기념일에 친정 부모 챙기겠다고 편하게 집에 갈 수 없는 때가 많았다. 어버이날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여서 당일에는 못 가고 그 전후에 잠깐 다녀와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해 전, 그 해에도 어버이날이 되기 전에 친정엘 다니러 간 적이 있었다. 때 돼서 안 찾아오면 섭섭하실까봐 찾아온 무심한 딸이지만 아버지는 무척 반가워하셨고 어머니는 병수발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딸을 만나 수다로 풀려는 듯 이 얘기 저 얘기하시며 시간 가는 줄을 모르셨다.

그러다가 어머니 입에서 오래 병을 앓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나오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잔소리를 피하려고 그랬는지 내게 산책을 나가자고 하셨다. 바로 그 전 해에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누워만 생활하셨는데 병원을 바꾼 뒤로 다시 바깥에 산책을 나갈 정도가 됐다고 해서 좋아했던 터라 나는 기꺼이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산책을 나서기 전, 어머니는 내게 아버지가 정상인들처럼 걷는다면서 작년에도 그럴 수 있었는데 당신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거동을 안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투정을 하셨다.

옆에서 걷다 보니 어머니의 투정이 정말 사실인 것처럼 아버지는 건강한 나보다 더 빨리 더 오래 운동을 하셨다. 아버지 옆에서 동네를 몇 바퀴 돌다가 결국 나는 힘들어하며 그만 들어가자며 아버지를 졸랐다. 그때 아버지는 내게 몇 바퀴만 더 돌자면서 “너는 운동이지만 아빠는 살기 위해서 하는 거라 좀 힘들어도 참아야 해.” 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하던 말을 그대로 따라하며 작년에 분명이 꾀병부린 게 맞는 것 같다고 투정부렸다.

오늘, 아파트 앞을 걸어오는데 앞서 가는 할머니가 들고 있는 핸드폰에서 음악소리가 크게 들린다. 춤 선생을 불러 개인 레슨 받던 아버지 방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다. 용두산아, 용두산~~아!

아버지와 산책하던 딱 그날만큼의 햇빛과 딱 그날만큼의 바람이 분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날, 살기 위해 힘들어도 참으며 해야 해서가 아니라 나와 좀 더 걷고 싶어서 힘든 것을 참아가며 걸었던 게 아니었을까? 낯선 할머니를 따라 ‘용두산’을 들으며 걷다보니 눈물 한 방울이 찔끔 나온다. 그리움은 참 예상치 못한 때 이렇게 불쑥 찾아온다.
 

박규옥
중국 요녕대학에서 문예학을 공부하고, 월요일마다 세월호 서명대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현재 중국 시장조사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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