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시를 파는 시인처럼
상태바
그리스도인, 시를 파는 시인처럼
  • 한상봉
  • 승인 2018.02.26 12:5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봉 칼럼]

이 기차는 어디로 향하는
기차입니까, 라고 묻고 싶은데
이 나라 말을 알지를 못 합니다

이 기차가
어질어질한 속도로 당신을 데려가
어디에 내려놓을지를 알고 싶은데
물음은 물컹 내 귀에 되닿기만 합니다

당신 옆모습을 바라봐도 된다고
믿고 싶어서
발목은 춥지 않습니다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올려 묻고도 싶은 겁니다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지금은 어디입니까

안녕, 이라는 이 나라 말만 알아서
그 말이 전부이기도 하여서
인사만 합니다

기차 밖으로 내리는 유난히 검은 어둠이
마음에 닿으려 합니다
마음이 자꾸 넘어집니다

(이병률의 시 ‘전부’)

 

사진출처=pixabay.com

글을 쓴다는 것이 업(業)처럼 여겨진다는 것, 그것은 다소 가혹한 것이었다. 문득 영감이 떠올라 한 번에 내려쓰는 글이 며칠 두고 곰곰 뒤척이며 정리한 글보다 더 참신하고 가슴을 때릴 때는 더더욱 글쓰기의 가혹함을 느낀다. 머리 아프게 열심히 한다고, 설렁설렁 놀듯이 한다고 좋은 글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그냥 그렇다.

문득, 동네 책방에서 힐끗 보고서 되찾아본 이병률의 시를 인터넷에서 다시 뒤져 찾아 읽고는 참 내 맘 같다, 여긴다. “이 기차는 어디로 향하는 기차입니까?” 묻고 싶은데, “이 나라 말을 알지를 못한다.”는 것. 하고 싶은 말은 있어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할 때의 막막함이란. 시인은 “안녕, 이라는 이 나라 말만 알아서, 그 말이 전부이기도 하여서, 인사만 한다.”고 했다.

수도원을 기웃거리던 청춘, 해방신학을 성경보다 귀하게 읽었던 격동의 시대를 넘어, 무주 산골로 들어가면서 신학 책들은 모두 재활용품으로 처분했다. ‘그리스도인 해방전사’가 되겠다는 꿈은 아마 그 책들의 종이 무게만큼만 가치를 인정받았으리라. 지나가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닌 세월을, 당시에는 열렬하게 살았다. 한동안 ‘하느님 없이’도 글이 써지고,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이 아무개 목사님은 “돌아보면 다 은총이었다.”고 했지만, 그 은총은 때때로 ‘하느님 없이도’ 함박눈처럼 소리 없이 무덕무덕 쌓이기도 한다.

 

사진=한상봉

마누엘 신부 이야기

나는 분명히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 책 주석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나중에 아무리 확인하려 해도, 그 구절이 찾을 길 없고 이야기만 또렷이 남아있는 게 있다.

어느 빈민가에서 꽤 오래동안 활동하던 ‘마누엘’이라는 사제가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사제가 아니었어도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이런 누추한 삶을 받아들였을까? 내가 사제라서, 그리스도인이라서,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명령하고 있으므로,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면, 가난한 이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불순하다. 아마 그는 신앙여정 한가운데서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지금은 어디입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대답은 없다. 하느님께서 꿈에라도 나타나 할 말씀 주시면 좋을 텐데, 그럴 리 없다.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내게 ‘안녕’이라 말했고 나는 지금도 버릇처럼 ‘아멘’이라고 답하지만, 그 아멘의 끝이 어디에 닿을지 모른다. 아마 마누엘 신부는 매일같이 경험하는 자신과 이웃들의 암당한 현실 속에서 “마음이 자꾸 넘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느님은 과연 어디에 계시는지 알 길 없고, 그냥 주소 없는 안부편지만 날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누엘 신부는 결국 사제직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어 남은 평생을 예전과 똑같이 빈민가에서 가난한 이들과 이웃이 되어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임종이 다가왔을 때 문득 유언처럼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주님, 제가 무신론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병률은 ‘전부’라는 시에서 아는 말은 오로지 ‘안녕’이라는 인사말뿐이었다고 전한다. 그럼 그 ‘안녕’이란, 어쩌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내뱉은 말은 아니었을까? 그분은 가장 참혹한 순간에 우리의 안부를 묻고, 우리의 대답을 미처 듣지 못한 채 숨지신 것은 아닐까? 그 ‘안녕’의 의미를 알아야 그리스도인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바오로 사도가 끝내 ‘십자가 사건’에 주목한 이유도 ‘환란 가운데 던지는 안녕의 의미’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세계종교를 낳은 붓다와 공자와 마호메트가 비교적 평온한 임종을 맞이한 것과 다르게 예수님만이 유난히 고통 속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그분이 ‘아빠’라고 고백했던 하느님이 히브리 ‘노예들의 하느님’이었고, 우리가 그분을 ‘사랑 그 자체이신 분’으로 고백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텐데. 그분의 ‘십자가’는 그분만의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 고통 받던 하층민들의 상황이 곧 억울한 죽음이 배어 있는 ‘십자가’였다. 그 십자가에서 ‘안녕’이라고 우리들의 안부를 물어주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은 지금 여기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여전히 위로가 된다. 위로뿐 아니라 희망을 준다. 정말 ‘눈물겨운 사랑’이다.

 

이병률 시인은 1967년생.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 ‘그날엔’이 당선돼 등단. 저서로는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등과 여행 산문집 ‘끌림’ 등이 있으며, 제11회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출처=한국경제메거진)

거리에서 시를 파는 시인

이병률은 어느 인터뷰에서 좀 특별한 시인을 소개한 적이 있다.

“길에서 자신이 쓴 시를 프린트해서 파는 시인을 보았다. 시인은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 자기 시를 소개하면서 맘에 든다면 자기 시를 사라고 했다. 사람들은 지나치기도 했지만, 그의 옆에 서서 시 이야기와 시 낭송을 듣기도 했고 또 돈을 내고 제본된 시집 한 권 혹은 낱장의 시를 사가기도 했다. 나무 그늘에 앉아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퍼포먼스가 아니다. 아주 오래전 파리의 거리에서 목격한 풍경이다.”

길에서 시를 팔다니, 이병률은 “서점에서 산 시집만 보고 살던 나였지만 아무려나 그 직거래는 아름다웠다.”고 했다. 거리에서 시를 파는 시인이 있고, 당연히 시를 사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시를 낱장으로 사 가는 이도 있다는 이야기가 먼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처럼 보인다.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병률은 ‘자기 또한 시인으로서’ “그것이, 내가 살아가야 할 운명 같기도 하였고, 아주 나중에는 어쩌면 그 풍경 자체가 어쩔 수 없는 시의 운명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시를 팔아 밥 먹고 사는 건 십자가에서 살해당한 예수님처럼 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시인은 시를 팔아야 하고, 시 한 편이라고 거리에서 사서 보는 사람은 참 고맙고도 아름다운 영혼이다. 시인과 운명과 시의 운명이 닮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운명과 예수님의 운명이 닳았다는 은유처럼 들린다. 벌써 35년 전, 대학 신입생 때 ‘그리스도교 신앙개론’ 수업에서 정양모 신부님은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자신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견주어 사는 사람들”이라고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 그 기억이 생생한 만큼 내 삶이 부끄럽지만, 내가 부끄러워한다고 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운명을 잘 알고 있는 나는, 때때로 발목이 시려도 춥지 않다고, 당신 옆모습만 볼 수 있어도 온기가 스민다고 믿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랑하라”던 시몬 베유의 발언 역시 아직은 아득한 소리로 들린다. 나는 지금 시를 팔러 문지방을 나서는 시인처럼 멈칫거리며 주변을 살피며 그렇게 어리숙한 신앙을 살고 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손성현 2018-03-02 10:41:04
참 아름다운 생각과 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