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 밥상공동체에서 변소공동체로 강림하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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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 밥상공동체에서 변소공동체로 강림하는 하느님
  • 홍성담
  • 승인 2018.02.2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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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동 목사를 기리며] 제사와 밥상공동체, 두 이야기의 합류-2

서양미술사는 예수 사후에 그이의 제사를 흉내 낸 이콘(Icon)을 무수하게 만들었다. 이것들 대부분이 신의 존재를 묻는 내용이었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신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는가.
신은 무엇인가.

신과 인간의 길고 긴 숨바꼭질

모두 신의 존재를 묻는 질문에 다름 아니다. 신과 인간의 길고 긴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전후로 미술의 질문은 인간의 존재를 묻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존재를 묻는 식이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기들의 이런저런 욕망을 버무러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을 신에게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러나 신은 유대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는 임무를 맡긴 모세에게 조차도 자신의 뒷모습을 잠깐 보여주었을 뿐이다. 일찍이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했으니. 곧 당신의 모습과 성정을 닮아줄 것을 인간에게 요구했다. 그 요구에서 인간들이 조금이라도 벗어날 때마다 신은 형벌을 내렸다.

신에 대한 인간의 배반이 계속되자 신은 인간과의 약속에서 마지막으로 가장 신을 닮은 사람 예수를 세상에 보내주었다. 즉, 인간의 욕망을 잠시라도 달래주려는 심사였을까. 아니면, 인간의 욕망을 자기성찰하게 하려는 신의 배려였을까. 그러나 사람 예수마저 신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인간을 닮으려고 애를 썼고 마지막엔 스스로 자신의 몸을 제사상에 올려놓음으로써 가장 ‘사람답게’ 사람됨의 소임을 마쳤다.

그이도 살아생전에 동료들로부터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신은 바로 너의 몸속에 있다.’고 응답하거나 또는, ‘지금 너의 앞에 서있는 사람이 네가 그동안 찾던 신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신의 맏아들이다‘고 확답 했다. 그이가 거침없이 쏟아내는 이런 말들 앞에서 민중들은 아마도 소름끼칠 정도로 두려웠을 것이다. 민중들의 가슴속에서 오랫동안 키워왔던 한(恨)의 응어리를 그이는 정확하게 보았고, 민중들을 대신하여 ’신에 대한 반역의 언어‘로 말했던 것이다.

반역은 창조의 원천이다

7세기 당나라의 선승 6조대사 혜능은 ‘부처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라는 제자의 질문에 ‘미혹한 사람도 단지 중생을 알면 바로 부처를 만날 수 있다. 만약 중생을 알지 못하면 만겁 동안 부처를 찾아도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대답하면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긴다.

"마음이 험하면 부처도 중생이고
마음이 평등하면 중생도 부처다

내 마음에 부처가 있으니
여기의 부처가 참다운 부처다"
 (전호근의 ‘말로 전하지 않는 가르침’/녹색평론158호)

인간들이 신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욕망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인간의 역사는 신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의 역사이기도 하다.

증산교 창시자 강일순

19세기말, 조선 말기 동학농민혁명은 조일연합군에 의해서 엄청난 사상자를 남기고 패배한다. 우금치에서 태인, 그리고 순창까지 농민군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1895년 음력 3월 전봉준의 사형 이후에도 호남일대의 농민군 대학살전이 계속되었다. 대학살로부터 살아남은 많은 농민들은 고향을 등지고 지리산 골짜기로 서남해안의 섬들로 도망가 숨어 살았다. 동학혁명의 패배는 조선 사회전반에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절망을 안겨주었다. 이 절망의 피바다 속에서 동학 잔당(殘黨)중 한 사람인 ‘증산 강일순’이 동료들과 함께 폐허로 변한 산천을 떠돌며 신의 모습을 구한다.

‘한(恨)에 맺혀 죽은 육신이 쌓여서 산(山)이요, 원(怨)으로 죽어 흘린 피가 강(江)이니 어디서 신을 구하리요’라며 부르짖는 동료들의 절망에 강일순은 이렇게 대답한다.

“천지간에 가득한 것이 신(神)이니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르고,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지고, 손톱 밑에 가시 하나 드는 것도 신이 들어서 되느니라”(법언 6:99)

대학살로 끝난 동학혁명을 겪으면서 분노와 절망의 늪에 빠져있던 증산 강일순은 우주만물은 물론 그것의 조화(造化) 안에 깃들어있는 신(神)을 발견한다.

우리는 신을 알지 못한다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을 흔히 다신관(多神觀)의 신앙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신(神)을 모른다. 아니, 기어코 신을 알지 못한 채 인간은 멸망의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이 직접 언급한 신의 모습에 대한 단서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세기 1:15) 이 한 줄의 문장이 유일하다. 또한, 신은 야속하게도 그 어떤 것으로도 당신의 형상을 짓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일갈했다. 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는 대부분 우상(偶像)의 늪에 빠지는 위험성이 기다리고 있다.

유대인들이 시나이산 아래서 신을 금송아지 형태로 우상화한 사건으로부터 우리는 유일신조차도 잘못 숭배될 경우에는 얼마든지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엠마뉴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나 장뤽 마리옹(Jean-Luc Marion)같은 성서전통의 현대 철학자들은 우상의 문제를 철학적 관점에서 풀어내기도 한다. 가령, 우리 시선이 유한에 머무르도록 하여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만드는 것은 우상(idol)이고, 우리의 시선이 무한을 향하도록 하여 자신을 넘어서도록 만드는 것은 참된 성상(icon)이라는 것이다.(나무위키 2018)

 

인간은 신을 닮아야 하고, 신은 인간을 닮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의 주체적 관점에서 신의 모습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신학(神學)이라는 학문은 신을 통해서 내 자신과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신은 당신이 만드신 세상의 모든 것들에, 별과 달과 바람과 강과 바다와 저기 무심하게 놓여있는 한 개의 돌멩이와 나무와 꽃과 새와 그리고 수많은 인간들 안에 깃들어 있다. 그 숫자만큼이나 신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인류에게 거대한 편견과 갈등으로 작동하는 유일신은 해체를 통해서 생명이 있는 것이나 생명이 없는 무생물에게 인간이 누리는 모든 시간과 공간에도 거침없는 분배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과학을 하므로써 점점 밴댕이 속을 닮아가는 인간의 숙명이다. 이 해체와 분배의 과정을 통과해서 다시 새롭게 자연과 인간이 화해하고 인간과 인간이 평화를 이루며 신과 인간이 동시에 해방되는 일원적다신관(一元的多神觀)의 거대한 세상을 회복할 것이다. 더불어 세상 만물과 모든 인류의 숫자만큼이나 제각각 다양한 모습의 신들이 일제히 한날한시에 만나서 오직 유일하게 되는 다신적유일관(多神的唯一觀)의 장엄한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제 비로소 ‘인간은 신을 닮아야 하고, 신은 인간을 닮아야 한다’는 주장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했다. 그러나 신(神)으로부터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인간의 모습에서 신(神)을 발견해내는 치열한 정신은 인간의 무한욕망으로 막히고 말았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은 인간을 기계로 대치하는 근대 공업사회를 만들었다. 곧이어 전기의 발명은 공장에 조립라인이 등장하고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하게 되는 2차 산업혁명으로 급변했다. 이것은 모든 인류가 노동자가 되고 또한 끝없는 실업난이 발생하게 되었으니 빈부의 격차가 더욱 심화되는 요인이 되었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가족공동체와 마을공동체도 해체되기 시작했다.

욕망의 성취는 오만(傲慢)을 낳는다

인간의 오만은 결국 유럽대륙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밀어 넣었다.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 11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었으나, 유럽의 불안정은 2차 세계대전의 불씨를 남겼다. 전쟁은 합법적인 살인행위다. 발전된 무기로 자행되는 대량학살은 살인에 대한 죄의식을 사면해 준다.

사람들은 2차 산업혁명 이후로 인간 존재를 본격적으로 찾아 나섰다.

예수의 제사 퍼포먼스가 신의 실존을 찾아 나선 것이라면, 그 이후로 인간의 실존을 본격적으로 찾아나서는 미술행위는 2차 산업혁명 이후에나 가능했다. 그러나 제사 퍼포먼스만큼 장렬하거나 거룩함은 없었다. 인간의 모습처럼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르셀 뒤샹(1887~1968)은 1917년, 화장실에서 뜯어낸 변기에 ‘샘’이라는 제목과 사인을 해서 전시장에 내놓는다. 오늘날 사람들은 ‘일상 속의 오브제를 작품으로 탈바꿈시키면서 미술에 대한 전통적인 선입견에 도전한 현대미술의 혁명’이라고 칭송한다. 급격하게 산업화되고 공산품이 쏟아져 나오던 20세기 초기 사회의 미술품과 기성품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려 반예술(Anti-Art)의 전형이며 일상과 예술을 혼돈스럽게 뒤섞어 현대미술이 탄생되었다며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이야기 한다.

‘형식’과 ‘내용’이 탁월한 차원에서 통합되는 것을 절대미(絶對美)라고 한다. 그러나 형식이 강고해질수록 내용은 잠을 자기 시작한다. 형식이 완성된 상태를 우리는 ‘전형화’라고 한다. ‘전형’속에서 내용은 도저히 깨어나지 못할 깊은 잠 속에 빠진다. 결국 내용은 사라지고 껍데기뿐인 형식만 살아남는다. 유독 서구의 비평 언어는 형식에 매달린다. 서구의 미학은 형식이라는 껍데기의 분석을 통해서 내용을 찾아갔다.

마르셀 뒤샹 <샘> 1917년

뒤샹의 <샘>을 보는 이들에게 제각각 다른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나는 다음 세 가지에 주목한다.

첫째, 뒤샹의 변기가 뜯겨졌던 화장실(장소성)과 둘째, 변기에 왜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추상성) 셋째, 스프접시나 스테이크접시가 아니고 하필이면 소변기인가(존재성)라는 점이다.

당시 유럽은 전쟁의 참화와 노동자들의 대량 실업으로 밥상공동체가 급속하게 허물어졌다. 신의 거처라고 여겼던 교회는 전쟁과 빈부의 심화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못하고 신(神)은 스스로 눈을 꼭 감아버렸다. 자신의 접시 위의 음식을 나눌 생각 대신에 남의 접시 위의 음식 찌꺼기마저 자신의 접시 위에 쌓아 놓는 일에 충실했다. 그러나 화장실의 변기는 누구나 평등하게 사용했다. 먹는 일도 중요하지만 배출하는 일도 귀중하다. 잠시 며칠 굶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만 배출을 하지 못하면 곧 죽음이다. 마르셀 뒤샹은 예수가 자기 몸으로 제사를 지냈던 ‘밥상공동체’ 대신에 인간의 몸속에 든 모든 것을 기꺼이 쏟아내 배출하는 ‘변소공동체’를 선택했다.

밥상공동체에서 장엄하게 제사된 신(神)은 인간의 입에서 씹혀져 갈기갈기 부수어지고 몸속을 두루두루 경유하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수차례 변화되다가 마지막엔 <변소공동체>에 강림한다. 그리고 제사는 <변소공동체>에서 욕망의 찌꺼기를 쏟아내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자면, 각자 인간의 몸속에서 소화된 신들이 ‘변기’에 쏟아져 나와서 서로 만나는 ‘변소공동체’다.

레디메이드(ready-made)란 예술가의 선택에 의해 예술 작품이 된 기성품을 말하는 미학용어다. 제2차 세계대전,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비극을 초래하였고 서구 문명에 깊은 좌절감을 안겨준 대학살을 앞두고 신(神)은 인간에 의해서 레디메이드화(化) 되어버렸다.

 

홍성담
판화가, 1984년에 광주오월민중항쟁 연작판화 ‘새벽’을 제작했고,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민중 미술인 전국연합' 이 공동 제작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한국작가, 일본과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연작 ‘야스쿠니의 미망’ 전시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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