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항쟁과 천주교] 광범위한 대중 참여를 위한 천주교의 고뇌
상태바
[유월항쟁과 천주교] 광범위한 대중 참여를 위한 천주교의 고뇌
  • 이명준
  • 승인 2018.02.18 1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13호헌조치에 대한 천주교계의 반응-3

천주교회는 박정희 독재정권 이래 지속적으로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참여해 왔다. 오랜 민주화투쟁으로 탄탄하게 구축된 천주교 사회운동 진영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전국사제단)의 지도적 역할과 함께 많은 평신도들이 여러 부문에서 조직되어 있었다.

전국사제단은 천주교회는 물론이고 우리사회 민주화운동의 진앙이자 보루였다. 그 중심에 함세웅 신부가 있었다.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전국사제단의 정기 모임과 교육을 주로 함세웅 신부가 맡아 이끌었다. 그러던 차에 함세웅 신부가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직을 맡게 되자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전국사제단에 ‘간사’를 두었다.

1983년부터 명동성당청년회에서 일하던 기춘이 간사를 맡고 있었는데, 여건상 서울에만 국한된 간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86년 초 이명준이 전국사제단 간사로 합류하여 전국적인 사제단 모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게 되었다. 전국의 사제단 신부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대전에 있는 한국가톨릭농민회 본부 사무실을 빌려 전국적인 정기 모임을 가졌다. 전국사제단 각 교구 대표신부들이 모이는 대전 모임에서는 이명준 등이 운동 방향과 정세분석 등을 전해 주고, 투쟁방향 등을 심도 있게 토의하였다.

당시 천주교 사회운동 진영에서는 호헌조치 이후 정세가 무르익는 시점에서 운동권의 시위만이 아니라 교회의 일반 대중들의 참여하는 운동을 어떻게 이끌어낼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당시의 운동권이 대중과 괴리된 이념 논쟁에 빠져있고 운동노선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등 ‘그들만의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고민이었다. 아울러 민주화운동을 대중운동으로 전환하는 데 신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고민에 시사점을 준 외국의 사례가 있었다. 바로 필리핀의 2월혁명의 경험이었다.

 

필리핀 2월혁명 30주년에 참가한 필리핀 수녀들. 사진출처=가톨릭아시아뉴스

1986년 필리핀에 2월혁명이 일어났을 때, 함세웅 신부와 이명준 등은 정의평화위원회 차원에서 팀을 짜서 마닐라로 가서 필리핀 2월혁명과 교회의 참여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일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후카미츠 신부의 도움을 받아 필리핀 정의평화위원회와 연계하여 필리핀의 현장으로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메리놀수도회 토마스 마르티(Thomas J. Marti) 신부 등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필리핀에서 사역하는 메리놀수도회 신부들이 전해 준 미국의 ‘저강도 전쟁 전략’ 등 변화되는 외교정책에 관한 자료들이 이후의 정세분석과 판단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를 통해 제3세계에서 미국 전략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미국은 반공 일변도로 대외전략을 지속하기 어려우니까 일정하게 각국의 민주화 과정 속에서 선거라는 합법적 공간을 용인하고 지원한다는 전략이 있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필리핀 2월혁명의 성공이었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경우도 그러한 전개가 가능하다고 예상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명준은 특강 등의 형식을 통해 본격적으로 전국의 교회를 돌았다. 필리핀 2월혁명 당시에 교회가 정치적인 이슈로 참가했을 때의 경험과 교훈을 나누었다. 핵심적인 결론은 ‘수위는 낮더라도 대중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이슈와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명준은 전국사제단 신부들의 정기 모임에서 미국의 저강도 전쟁과 1986년 필리핀에 직접 가서 목격한 2월 민중혁명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고 설명하면 신부들이 질의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을 뜻 깊게 기억하고 있다. 이명준이 펼친 논지는 다음과 같다.

“필리핀의 경우를 보자면, 미국은 민주화 과정에서 군부와 손잡을지 안 잡을지는 우리 역량을 보면서 결정을 한다. 우리가 파워가 있으면 미국이 가만히 있을 테고, 아니면 80년 5월이 재현될 것이다.”

“정치적 이슈로 싸워야 대중이 모이고, 일반 중산층 서민이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을 하려면 이데올로기에 빠지면 안 된다. 그리고 86년 개헌 현판식에서처럼 정치권과 운동권이 연합하면 대중 동원력이 커지므로 양김(김대중과 김영삼)을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

모임에 참석한 전국사제단 대표들은 대중과 같이 공감하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주 이슈로 삼아야 한다는 향후 운동의 방향에 합의하였다.

[출처] <6월항쟁과 국본>, 민주운동기념사업회, 2017 

이명준
천주교 인천교구 홍보과장 근무 중 민청련 부의장 역임. 민통련 청년위원장,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간사 역임. 1987년 6월항쟁 당시 4인 실무기획팀으로 민주헌법쟁위국민운동분부 결성에 참여. 평민당 기획조정실장, 비서실 차장 역임. 정계은퇴 후 (주)아이마스 회장 역임. 현재 환경재단 기획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