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쌀 한 알, 무위당을 배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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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한 알, 무위당을 배우며
  • 이진권
  • 승인 2018.02.14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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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권 칼럼]

오래 전에 <좁쌀 한 알>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깊은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장일순 선생님 같은 분을 가까이에서 뵙고 선생님으로 모신 분들을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까지 났습니다. 그리고 늦게나마 원주에 가서 그 분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얼마 전에 원주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2주에 한 번씩 모여 기도하고 공부하는 모임에서 다시 <좁쌀 한 알>이란 책을 읽고, 원주에 직접 가서 보자는 마음이 모아졌기 때문입니다. 원주 대성신협 건물에 있는 무위당기념관을 찾았습니다. 기념사업회 일을 보시는 분이 친절하게 영상과 기억으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칼바람을 맞으며 그 분이 원주 시내와 집을 오가며 걸었다던 그 길을 순례하는 마음으로 함께 걸었습니다. 20-30분이면 족할 거리였는데, 그 길을 2시간, 3시간 걸리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정성스레 안부를 묻고 인사를 건넸다던 무위당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뚝방 길을 걸으며 풀벌레들의 아름다운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생명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던 분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무위당의 삶은 결코 순탄한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해방과 분단의 혼돈 속에서, 독재정권의 광기 속에서, 정의와 평화, 진리와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는 길에는 숱한 고난과 고통이 따라왔을 것입니다. 그 도저한 시련 속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겸허하고, 고요하며 평화로운 인격이 형성되었을지 사뭇 궁금했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집안의 내력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식객이나 걸인들을 결코 내치지 않고 지극하게 환대했던 집안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부터 한학자 선생님에게서 동양고전을 공부하고, 문인화를 배워 온 영향도 있었을 것입니다. 군부독재의 지독한 감시체제하에서 모든 공적 활동이 불가능했던 시절에, 선생님은 치열한 공부와 수행을 통해서 악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생명에 대한 긍정과 온유함으로 전환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내해 주신 분의 말씀처럼 그 혹독한 겨울공화국의 시절을 함께 동반하며 토론하고 모색하며 실천했던 동료들이 있었기에 그 분 또한 넘어지고 일어서고의 과정을 반복하며, 마침내 생명과 평화의 새로운 경지를 터득해 갔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루어진 한 인격의 고결한 생명과 평화의 기운은 ‘원주 캠프’라는 한 시대의 든든한 뿌리를 내렸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의 고백처럼 서슬퍼런 유신체제하에서 많은 뜻 있는 사람들이 그 분의 평화롭고 온유한 인격에 감화되고, 따뜻한 시선으로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는 통찰에 공감했습니다. 생명위기라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근본문제를 직시하게 된 무위당은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서로를 신뢰하며 협동하여 자연과 인간을 모두 살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운동을 고민하고 그 첫 씨앗을 한국사회에 뿌렸습니다.

그렇게 내가 먼저 생명이 되고 평화를 이룬 한 사람의 영향력은 깊고도 넓습니다. 그런 분이 계셔서 우리의 선생님이 되어 주시고, 그 가르침을 늦게나마 다시 헤아리고 배울 수 있어서 참으로 좋습니다.

독서모임에서 다시 모여 생명평화 100배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내가 하는 비폭력적인 마음 씀씀이, 몸 짓, 말 한 마디가 세상의 평화를 이루는 첫 걸음이다"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몸과 마음을 모아 절 기도를 드립니다. 자신의 일상에서, 삶의 현장에서 마음의 평화를 이루고 관계의 평화를 가꾸어 가며, 세상의 평화를 위해 투신하는 이들이 하나 둘씩 많아질 때, 세상의 평화는 이미 우리 곁에 조용히 다가와 있을 것입니다.

이진권 목사
평화영성 교육센터 ‘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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