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남자, 젊은 날의 이상과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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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남자, 젊은 날의 이상과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
  • 진수미
  • 승인 2018.02.12 0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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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2017, 마이크 화이트)

[진수미의 문화칼럼]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40대 이상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젊은 날의 꿈과 불화를 겪는 중년 남성 브래드 슬론(벤 스틸러 분)이 주인공인 이 영화에 20대의 꿈이 생생히 살아있는 이들, 그 안에서 일상을 실천하는 이들은 선뜻 공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러면 40대, 혹은 그 이상은 과거의 꿈과 모두 불화 중이냐고?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20대의 이상을 간직하고 있더라도 이러한 회의에 흔들려 본 경험이 있을 터이므로, 이들은 영화와 공감을 더 폭넓게 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나이 이야기를 서두에 꺼냈다.

브래드는 기부자와 기부가 필요한 기관을 SNS로 연결해주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한다. 그런데 단 한 명이었던 부하 직원 크리스가 일을 그만두면서 한 말이 그의 삶 전체를 비관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 크리스는 차라리 자신이 부자가 되어서 기부를 하는 게 낫지, 기부 요청하느라 굽실거리며 살기 싫다고, 그건 우울해지는 삶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우울증을 부르는 ‘카페인’ 중독의 삶

브래드는 기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소위 ‘잘 나가는’ 동창의 삶을 소환, 자신과 비교하면서 고통을 받는다. 이 친구들의 리더로 대학 시절을 보낸 빛나는 기억 때문이다. 그때 그는 꿈과 이상에 가득 차 있었고 세상을 사랑했다. 세상도 그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현재는? 세상은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도 세상을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영화가 다른 세대에게도 의미가 생길 수 있는 것은 ‘카페인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SNS 우울증을 다룬다는 점이다. 여기서 카페인은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총칭하는 말로 커피와는 무관한 신조어이다. 브래드는 직업상 부자 친구의 인맥 관리가 필요하고 그들의 삶을 수시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 거물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닉(마이크 화이트 분), 해지펀드사 대표로 부를 축적한 제이슨(루크 윌슨 분), 이른 나이에 IT 기업을 매각하고 하와이에서 여생을 즐기는 빌리(저메인 클레멘트 분). 이 가운데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전(前) 백악관 직원이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하버드에서 강의를 하면서 TV 출연이 잦은 크레이그 피셔(마이클 쉰 분)이다. 브래드 기억에 두 사람은 대학시절 경쟁관계였기 때문. 타인과의 비교가 부질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친구들의 삶이 신경 쓰이고, 그래서 잠을 이룰 수 없다.

이러한 감정은 스마트 폰을 신체의 연장처럼 여기는 오늘날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카페인’에 찍어서 올리는 삶은 일상이면서 일상 그 자체가 아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그것이기에 어느 정도 혹은 꽤 많이 포장된 삶이다. 그러나 잡지에 묶인 화보가 아니라 스냅 사진처럼 찍혀 전송되는 그것은, 그게 삶 자체인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것은 트로이군대의 목마처럼 우리 삶에 침투한다. 카페인 증후군은 이러한 현상을 일컫는다.

젊은 날의 꿈을 찾는 오디세우스

브래드는 아들 트로이(오스틴 에이브람스 분)와 보스턴 대학 투어를 떠난다. 각본을 직접 쓴 감독 마이크 화이트는 이 여행에 신화적 요소를 부여한다. 말하자면 브래드는 중년의 오디세우스로 보스턴을 향하는 것이다. 이는 아들 트로이를 통해 과거의 삶에 들어가는 일종의 시간여행이다. 더불어, 트로이는 아버지 브래드 삶에 최종 승리를 안겨주는 트로이의 목마가 된다.

브래드는 여행 중 닉의 결혼식에 자신만 초대받지 못했음을 알게 되는데, 이는 트로이전쟁의 원인인, 불화의 여신 에리스를 연상시킨다. 에리스도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황금사과는 미인대회의 효시라고 불리는 여신 간 미모 경쟁의 계기가 되었다.

브래드는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다. 공항 가는 길에서도 그는 여행에 관심이 없다. 자신의 감정에만 골몰한다. 심지어 아들 트로이가 하버드 진학이 가능할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라는 것도 모른다. 이를 알게 되자 그는 헛산 게 아니라고 자신의 삶을 ‘갑자기’ 재평가 한다. “나는 하버드에 갈 정도로 훌륭한 아이를 키운 것이다!” 그러나 똑똑한 아이도 실수를 한다. 트로이가 하버드의 입학사정관 면접일자를 착각한 것이다. 아들을 통해 꿈을 대리 충족한다는 생각에 들뜬 브래드는 이 실수를 통해 아버지로서 역량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자신이 질투심으로 의식하는 크레이그 피셔의 힘을 빌려야 가능하다.

내키지 않지만 브래드는 트로이의 미래를 위해서 전화를 건다. 크레이그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그가 성차별적 태도를 지녔고 잘난 척하는, 최악의 교수라고 말했어도 그는 친구에 대한 선망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10년 만에 만난 크레이그는 친구들 뒷담화를 늘어놓기 바쁘다. 동성애자 닉이 갈수록 ‘게이’ 같아지고 제이슨은 사기꾼이니 지금 도망 중일 거라고 비웃고, 빌리는 하와이에 사는 알콜중독자라고 폄하하는 것이다. 그에게 친구에 대한 존중어린 우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제이슨은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브래드 씨는 괜찮지 않다

영화는 브래드의, 아들도 경쟁자로 여기는 찌질함, 젊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남성중심주의, 식민역사에 대한 무관심 같은 면모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는 전혀 괜찮지 않다. 영화의 원제는 ‘Brad's Status’로, 그를 옹호하거나 위로하지 않는다. 다만 작품이 젊은 날의 이상과 불화하는 한 남성의 위치를 조명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된 제목은 오류에 가깝다.

브래드는 아들 친구 아나냐(샤지 라자 분)와 마야를 만나고 매력을 느낀다. 처음에 그들의 이상주의적 태도에 호감을 보이지만, 그의 호감은 음험하고 끈적이는 쪽으로 변질된다. 그는 친구 빌리를 매개로 그녀들과 하와이 해변에서 노는 환상에 빠져든다. 결정적으로 아들이 자고 있을 때 그녀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술집에 가는 신은 추한 중년으로 그를 각인시킨다.

아나냐는 탈식민주의에 기반한 논문을 준비 중인 학생으로, 주류적 가치에 종속되기를 거부하는 이상주의자이다. 그리고 브래드를 이상에 따라 현실을 사는 사람으로 간주, 그의 조언을 구한다. 하지만 브래드는 이상만으로 유지되지 않는 현실의 비참함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결국 아나냐에게서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니 자기연민에서 벗어나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아나냐 역시 트로이가 데려온 하나의 목마였던 셈이다.

결을 거슬러 영화를 읽는 즐거움

영화가 보여주는 결말 역시 마뜩치 않다. 자식은 부모 그 자신도 아니고 소유물도 아니므로, 그로 인한 대리충족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서사의 결을 거스르며 읽을 때 의미가 살아난다. 트로이 친구가 모두 제3세계 여성으로 설정된 것도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영화를 읽도록 하는 장치일 것이다. 브래드는 남성 중심적이고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산층 백인 남성이다. 영화를 통해 그의 서사를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본다는 점에서 그는 사다리일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지붕에 올라간 뒤에는 사다리를 버려야 한다.”

브래드에게 부족한 것은 기쁨에 주도권을 주는 삶이라고 본다. 이것은 삶의 작은 순간순간에 집중하면서 기쁨을 찾는 삶이다. 이를 위해서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이 노력은 가까운 데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가족, 친구, 그리고 주변의 동식물……. 기쁨은 발견하는 자의 것이다.

이 노력이 소유적 양식으로, 또 공존보다 대립을 부추기는 쪽으로 진행되어서는 곤란하다. SNS를 보더라도, 내용에서 경쟁심이나 스트레스를 얻기보다 공유로써 나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친구의 여행사진을 보면서 “이 친구가 지금 현재를 즐기고 있구나. 부럽다. 부러운 만큼 나도 이 순간을 즐겨야지”라고 마음먹는 쪽으로.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삶에서 승패를 논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은 없으므로.

어쨌든 브래드는 첫 걸음을 뗐다. 트로이와 함께 한 여행에서 아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기쁨을 느낀 것 말이다. 그것은 젊은 날의 이상과 화해하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우리가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에서 스트레스를 건너뛰고 성찰의 계기로 삼는 기쁨도 그 첫 걸음과 유사할 것이다.

진수미 카타리나
글쟁이. 더불어 잘사는 세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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