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평화, 로마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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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평화, 로마의 평화
  • 한상봉
  • 승인 2018.02.0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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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크리스마스-마지막회
by Pieter Bruegel the Elder

루카복음서에서, 천사들이 예수 탄생을 가장 먼저 목자들에게 알린 이유는 무엇일까? 루카는 사회 변두리로 쫒겨난 사람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지닌 복음사가이다. 예를 들어, 루카복음에서만, 예수가 회당에서 이사야서 6,1-2를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4,18-19)

나중에는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7,22)고 했다. 목자는 당시 가장 천한 직업 가운데 하나였고, 다윗 역시 목자였다. 이 목자들에게 천사가 전한 메시지는 참으로 놀랄만한 발언이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2,11)

예수가 구세주이고, 주님이고, 메시아라는 것이다.
당시 로마제국에서 “주님”(the Lord/Kyrios/Adonai)은 황제를 뜻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인 프로페르티우스는 <만가>(Elegies)에서 악티움 전투에서 아우구스투스가 승리할 때, 아폴로 신이 “오, 세상의 구세주 ... 아우구스투스여... 이제 바다에서 정복하라. 땅은 이미 그대의 것이니, 나의 활이 그대를 위해 싸우리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아버지인 아폴로 신이 아들을 두고 ‘구세주’라 부른 것이다.

악티움 전투 직후에 로마의 소아시아 총독 파울루스 화비우스 막시무스는 아우구스투스에게 황금왕관을 갖다 바쳤는데, 20년 후 이런 제안을 한다. “가장 신적인 카이사르의 탄생일을 만물이 시작된 날로 정해서, 실질적으로 적어도 모든 것이 해체되어 대혼란에 빠지고 있었을 때 그가 질서를 회복시키고, 만일에 카이사르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축복으로 탄생하지 않으셨다면, 온 세계가 완전히 파멸되었을 것이다.”

그는 정월 초하루, 새해의 시작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탄생일인 9월 23일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이제 아우구스투스는 공간의 지배자일뿐 아니라 시간의 지배자로 격상되었다. 이에 조응하여 아시아 도시연맹은 황제를 이렇게 칭송했다.

“섭리는 그분에게 인류의 유익함을 위한 미덕들로 채우시고, 우리들과 우리 자손들에게 ‘구세주’가 되게 하셨다. 그분은 전쟁을 끝장내고 평화를 명령하실 것이니, 카이사르께서 나타나신 것만으로도 기쁜 소식(유앙겔리온, euaggelia)을 예언했던 사람들의 희망을 능가하며, 과거에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들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더 큰 은혜를 베풀 사람을 기대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신의 탄신일을 통해 처음으로 세계에 그분 안에 속한 기쁜 소식을 가져다 주신 이래로......”

루카는 황제에게 봉헌되었던 칭호를 고스란히 나자렛 예수에게 옮겨놓았다. 예수의 탄생을 두고, 천사들뿐 아니라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찬송했다. 그러나 황제가 가져다 준 평화와 예수가 선포할 평화는 다른 평화였다.

내전을 종식시키고 등장한 로마의 평화는 ‘로마만의 평화’였다. 이게 곧 모든 전쟁이 끝났다는 뜻은 아니었다. 로마 내 권력투쟁이 끝났을 뿐, 로미제국의 군대는 이후로도 다른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 피억압민족의 입장에선 ‘로마의 평화’란 말 자체가 가당찮은 것이었다. 스코틀랜드 장군 칼카쿠스는 로마장군 아그리콜라의 군단병력과의 승산 없는 전투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강도들, 지금은 그들이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는 손들을 땅이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은 심지어 바다까지 넘보고 있다. 만일 그들의 적이 재물이 많으면 그들은 탐욕스럽고, 만일 그 적이 가난하면 그들은 잔인하다. 동방이나 서방도 그들의 욕망을 채우지 못했으며, 인간 중에 오직 그들만이 부유한 땅들만이 아니라 가난한 땅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탐욕을 부린다. 약탈하고 살육하고 도둑질하는 것을 그들은 제국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황무지로 만들어놓고는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하느님의 평화는 ‘정의에 기초한 평화’이다. 루카는 제국의 평화를 바라보며, 예수에게서 하느님의 평화를 발견한다.

[참고]
<첫번째 크리스마스>, 마커스 보그 & 존 도미닉 크로산, 한국기독교연구소, 2011
<하느님과 제국>, 존 도미니크 크로산, 포이에마, 2010
<예수의 독설>, 김진호, 삼인, 2008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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