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육신 너머에 있다" -산골(散骨)에 관한 주교회의 입장에 관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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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육신 너머에 있다" -산골(散骨)에 관한 주교회의 입장에 관한 유감
  • 김유철
  • 승인 2018.02.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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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의 Heaven's door]

히잡을 벗는 여인들

2018년 들어선지 며칠 지나지 않아 외신이 전하는 이란 여성들의 시위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여성들은 하얀색 히잡(Hijab. 이슬람 여성의 머리와 목을 가리는 수건)을 벗어 장대에 걸고 거리를 행진 했고, 그런 여성의 모습이 이란 반정부 시위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BBC와 CNN 등이 보도했다. 히잡을 장대에 건 사진 등이 소셜미디어인 SNS 등으로 퍼져 이슬람 여성은 물론이지만 세계의 많은 이들이 공감을 나누기도 했다.

1978년 호메이니에 의한 이란혁명 이후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했다. 심지어는 외국인 여성들도 외출시에는 히잡을 써야 하는 강제규율이다. 2016년 이란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셀프착용을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시위 여성들을 체포한 이란 당국보다 탈히잡에 저항(?)해서 이란 국기를 들고 시위하는 성직자의 모습은 바보스럽거나 꼰대스러움을 넘어 차라리 웃픈 현실이다.

 

히잡 반대 1인 시위와 히잡 반대 규탄하는 이란의 무슬림 성직자. 사진출처=연합뉴스 [텔레그램 채널].

산골(散骨)에 관한 질의응답

지난 1월 30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에 ‘산골(散骨)에 관한 질의응답’이 소식 꼭지에 실렸다.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200&bid=13013159) 고인의 유골 처리에 대한 이 내용은 주교회의 2017년 춘계 정기 총회(2017년 3월20일-22일) 결정 사항이라 말하며 이에 집행할 내용을 붙여서 주교회의 상임위원회가 2017년 12월 4일 승인하고 이 날 발표를 한 것으로 보인다.

주교회의가 발표한 ‘질의응답’은 모두 8항으로서 아래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되어있다.

1. 그리스도교의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합니까?
2. 화장을 하고 남은 유골을 뿌리거나(산골) 집에 보관할 수 있습니까?
3. 교회가 산골을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하느님께서는 세상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신데, 유골을 세상에 뿌리는 것은 죽은 이를 하느님의 품에 다시 맡겨 드리는 행위가 아닌지요?
5. 자연을 섭리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면, 자연에서 나온 사람을 다시 자연에 맡기는 산골 행위는 괜찮은 것 아닙니까?
6.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고 허무한 것인데, 이 세상이 아니라 저세상에 희망을 두고 있는 우리가 죽은 이의 유골을 세상에 남겨 두지 않고 흩뿌리는 산골이 왜 잘못되었나요?
7. 요즘 자연장, 특히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수목장은 해도 되는지요?
8. 만일 유골 장례를 치르고 난 뒤 그 유골의 봉안 기간이 지났다면, 그때에는 유골을 나무 주위에 뿌리는 산골을 해도 되지 않을까요?

예수에게 안식일이란

예수는 자유인이셨다. 이름 지어 부를 수 없었던 존재를 ‘야훼’거나 ‘엘로힘’이거나 ‘아도나이’등등의 규정화 규격화 고정화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단지 “아빠, 아버지”로 느끼고 다가갔을 뿐이었다. 그런 예수에게 당시의 안다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들이민 ‘안식일’이 대한 예수의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21세기 그리스도인도 선뜻 해내지 못할 아버지 안의 ‘자유’ 그 자체였다.

복음을 기록한 제자들에게도 안식일 논쟁은 충격적인 일이었으며 직업적으로 가르치려고 드는 자들에게 저항하는 신나는 ‘KO승’이었다. 복음을 제일 먼저 기록한 것으로 전해지는 마르코는 복음서 들머리인 2장에 안식일 치유논쟁을 전했다. 끝내 그는 예수의 말을 빌려 민중의 반벙어리 가슴속 말을 기록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안식일에 대한 예수의 새로운 자리매김은 명상서인 요한복음을 비롯한 모든 복음서에 기술되어 있을 정도이니 그 의미는 현대인들도 여전히 헤아려야 한다. 예수가 부르던 “아빠”를 교리나 율법이나 하물며 히잡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부활은 육신 너머에 있다.

이번 산골(散骨)에 관한 발표는 2017년 3월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 결과를 토대로 했다고 하였던 것으로 보아 내용을 심의하고 검토한지 10개월의 과정을 거친 결과로 보여진다. 발표된 질의응답 문의 1항에서 교회는 죽은 이의 부활이라는 신앙을 토대로 매장을 장려하며 “육신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교 교리를 부정하지 않는다면”의 조건으로 화장도 허락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매장지는 성스러운 장소(교회나 묘지)이고 ‘모든 성인의 통공’을 표현하는 의미로서 비석이나 이름표를 비치할 것을 말했다.

그러나 주교회의가 하고 싶은 결론은 2항에 들어 있었다. 주교회의는 산골 형태의 수목장을 포함하여 “가톨릭 교회는 유골을 허공이나 땅이나 바다 등의 장소에 뿌리거나 집에 보관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분명히 명토를 박았다. 또한 죽은 이가 교회의 뜻에 반해 유해를 ‘산골’하도록 유언을 했다면, 교회법에 따라 장례 미사가 거부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여야 함을 경고 했다.

글을 쓰는 시인이 신학자가 아니기에 신학적인 면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앙은 신학이 아니다. ‘1+1=2’ 라는 명제를 수학자는 A4용지 두 장으로도 다 풀어내지 못하지만 ‘얼라’들은 안다. 그냥 그것이 2라고 하는 ‘진실’을. 마찬가지로 ‘육신의 부활’이라는 그리스도교의 보배로운 명제를 해설하는데 신학자 혹은 직업 종교인들에게는 백과사전보다 두꺼운 용지가 필요하겠지만 시인은 얼라의 심정으로 안다. 부활은 육신 너머에 있으며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한 것은 단지 모를 뿐이라는 것을.

 

사진출처=pixabay.com

눈 먼 사울이 들었던 예수의 목소리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도 길이 있고, 죽은 사람이 가는 길에도 길이 있지만 모든 것을 ‘우리 식’ 규정안에 넣으려 해서는 안된다. ‘우리 식’이 ‘우리만의 식’이 된다면 그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인위적으로 하는 일은 깍고, 다금고, 비틀고, 쌓아서 원하는 것으로 만들지 모르지만 사람(人)과 일(爲)이 억지로 만나면 거짓(僞)이 되기 십상인 점을 노자 선생이 오래 전 경고했다.

하긴 그리스도교의 근간을 만든 바오로가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문에 쓴 글은 노자 선생과 결코 다르지 않으며 눈 먼 사울이 들은 예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먹거나 마시는 일로, 또는 축제나 초하룻날이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런 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실체는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규정에 얽매여, '손대지 마라, 맛보지 마라, 만지지 마라.' 합니까? 그 모든 것은 쓰고 나면 없어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규정으로, 인간의 법규와 가르침에 따른 것들일 뿐입니다."(콜로 2,16-17. 20-22)

*사족. 주교회의가 1월 30일 발표한 <산골에 관한 질의응답>에는 이것이 2017년 주교회의 춘계 정기 총회 결정사항이라고 되어있지만 2017년 춘계회의 내용에는 산골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것은 또 뭘까?

*참고 1 산골(散骨)에 관한 질의 응답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200&bid=13013159

*참고 2 2017년 주교회의 춘계 정기 총회 결과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300&bid=13012602&page=4&key=&keyword=&cat=

*참고3 2017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 총회 결과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300&bid=13012957&page=2&key=&keyword=&cat=

 

김유철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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