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웬] 하느님, 우리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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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 하느님, 우리의 어머니
  • 헨리 나웬
  • 승인 2018.01.23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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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탕자의 귀환

렘브란트 그림에서(「돌아온 아들」) 천막 혹은 날개 같은 아버지의 겉옷을 볼 때마다 나는 하느님에게서 사랑의 어머니 같은 자질을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내 마음은 시편 작가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말들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가장 높으신 분의 피난처에 머무는 너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아래 살고 있는 너­의 하느님께 말하라:

“나의 피난처, 나의 성채, 나의 하느님,
당신을 믿습니다!
... 당신의 깃털로 저를 감춰주시니
당신 날개 아래에서 저는 피난처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랜 유대의 가부장제에서도, 아들을 집에 받아들이는 어머니 같은 하느님의 모습이 나타난다.

돌아온 아들 위에 몸을 구부리고 그의 어깨를 손으로 어루만지는 노인의 렘브란트 그림을 지금 다시 바라보면서 “아들을 팔에 껴안는” 아버지를 느끼기 시작 할 뿐만 아니라 아이를 쓰다듬고 자신의 따뜻한 몸의 체온으로 그를 감싸주며 그가 태어난 움으로 끌어안는 어머니를 느낀다. 이처럼 “돌아온 탕자”는 하느님의 움으로 돌아가는 것이 되고, 존재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습은 또한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니고데모에게 권고했던 예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제 나는 이 하느님의 초상에서 지극한 한결같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여기에는 감상주의, 낭만주의, 행복의 종말을 담은 평이한 이야기가 없다. 그저 어머니로서의 하느님을 본다. 자신의 모상대로 지은 존재를 다시 자신의 움 속으로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거의 보이지 않는 눈, 손, 겉옷, 구부린 몸, 이 모든 모습들은 거룩한 어머니의 사랑, 슬픔, 갈망, 희망 그리고 끝없는 기다림으로 점철된 어머니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신비는 하느님이 어머니 같은 무한한 연민으로 영원히 당신자신과 당신자녀들의 생명을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인 하느님은 피조물에 의존하기로 자유로이 선택했고 그들에게 자유를 선물로 주었다. 이 선택 때문에 자녀들이 떠날 때 어머니 하느님의 슬픔이 일어난다. 그들이 돌아올 때 어머니 하느님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러나 어머니 하느님의 기쁨은 당신으로부터 생명을 받은 모든 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그들을 위해 준비된 잔치상에 함께 모일 때까지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어떤 거부도 시작되기 전부터 존재했던 사랑, 그리고 모든 거부들이 일어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을 사랑에 대해 말해주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아버지이며 어머니이기도 한 하느님의 첫째 사랑 그리고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부서지기 쉬운 하느님”」에서

[원출처] <Henri Nouwen>(Robert A. Jonas, Orbis, 1998)
[출처] <참사람되어> 200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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