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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의 마지막 열매는 즐거움이다.빛을 받은 삶-마지막회

안토니 원장이 말했다: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닐 때가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미친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공격할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와 같지 않으니까 미쳤소.’”

우리는 삶의 기본적인 선을 그 어떤 조건에서도 부정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미쳤다고 자주 생각한다. 고통을 바라보라, 악을 바라보라, 현실을 보라고 우리는 말한다. 생명이 비어있고 쓸모없게 보이는데도 계속하여 생명을 보는 사람들을 우리는 적어도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성적으로 보라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 미친 것은 우리들일지도 모른다.

진실은 관상가들, 바깥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 생명의 영혼을 보는 능력을 지닌 관상가들이 궁극적으로는 건강하다는 것이다. 관상가는 모든 투쟁과 고통 아래에 있는 실제 그대로의 삶을 보고 있다. 하느님께 깊이 물들어 있고 영원으로 빛나며 에너지가 충만하고 선으로 넘쳐흘러 악이 절대로 숭리할 수 없는 생명을 보는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관상은 선함에 집중된 내적인 눈을 간직한다. 그러나 관상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선에 대해서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상은 어떤 영적인 변덕이나 종교적인 술책이 아니다. 관상은 극단적인 금욕주의가 가져오는 어떤 자투라기 혜택이 아니며 매혹적인 예식의 자동적인 부산물도 아니다. 그것은 종교처럼 제시되는 정신적인 불균형이 아니다. 관상은 영의 왕관이며 모든 좋은 것이 나오고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선물로 환영받는 통로이다.

관상은 모든 분파적인 두려움이나 사제직분에 관한 부정적 규정들에도 불구하고 시간, 전통을 초월하며 문화들을 넘어, 신조를 넘어서 존재한다. 일상 속에서, 모든 곳에서 늘, 모든 이에게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깨달음은 모든 중요한 영적 여정을 단단하게 만든다. 신자는 오로지 하느님을 믿을 뿐이다. 추구자들은 하느님을 도처에서 본다. 추구자들은 다른 이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을 본다. 즉 일상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본다.

믿음이 깊은 사람들과 관상적인 사람들 사이의 매우 중요한 차이는 그들이 몸담아 있는 세계 속에서 하느님을 보게 되면서 관상가들은 아무리 상황들이 믿을 수 없다해도 다시 보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다. 관상가들은 미치지 않으며 격노하지 않는다. 자주 건강하지 못한 세계에서 건강해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부족한 것은 나머지 세계일 따름이다.

사막의 수도자들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죽어 가면서 벤자민 원장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교훈을 가르쳤다. “이렇게 하시오, 그러면 당신들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시오, 늘 기도하시오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십시오.”

마지막에, 관상의 열매는 즐거움이다. 하느님과 함께 걷고 있을 때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인가? 평온함은 하느님과 함께 걷는 이들에게 온다. 확실함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보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평화는 있는 것이 모두 하느님께 속하는 것임을 아는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하느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기쁨, 찬미, 감사가 머물고 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이들의 기쁨이 아니다. 관상가는 악이 고개를 쳐들 때 그것을 알고 있다. 관상은 알랑거리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관상가는 어려움이 다가올 때 투쟁을 알고 있다. 관상은 둔감함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관상은 왕겨와 낱알의 차이를 인정한다. 낱알이 빵을 만든다는 사실을 관상가는 알고 있지만, 그는 또한 왕겨가 연료로 쓰임을 안다. 관상가는 삶의 모든 것이 우리 안에 하느님의 생명을 불붙이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관상가는 계속 기뻐하고 찬양의 소리를 울려퍼지게 하며 감사 속에 살아간다. 늘. 어둠 속에 다이아몬드 같은 빛을 발하게 하는, 이보다 더 좋은 길이 있을까!

[원출처] <Illuminated Life, Monastic Wisdom for Seeker of Light>, Joan Chittister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11월호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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