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메로 대주교 "내 사제를 건드리면 나를 건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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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로 대주교 "내 사제를 건드리면 나를 건드리는 것이다"
  • 마리 데니스 등
  • 승인 2018.01.1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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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로메로-5

교회,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

엘살바도르에서는 로메로 대주교 이후에도 더 많은 사제들이 살해되었고, 수천 명의 민중들이 죽었다. 모든 죽음은 비극이었으며 죽은 사람으로부터 더 큰 용기와 확신이 뻗어 나오는 은총의 순간이었다. 모든 살해는 엘살바도르의 권력자들이 말살시키고자 했던 교회로 피어났다.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는 큰 낫으로 베어버려도 다음 절기에는 이전보다 더 두껍게 더 무성하게 자라나는 야생화의 들판처럼 자라났다. 로메로가 움직인 것은 살해된 사제들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로메로는 불행하고 잊혀졌으며 버려질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드러나는 하느님나라를 선포하기 위하여 움직인 것이다.

그는 그란데가 살해되던 날 밤에 이 계시를 받았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섬기기 위하여 존재하며, 가난한 이들이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교회는 원칙적으로 인류의 복음화를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기관입니다. 교회는 사람들로 이루어지고 그래서 형태와 구조들을 갖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보다 더 기본적인 현실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즉 복음화의 과제를 실습하기 위하여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상은 인간 현실의 모든 차원들을 한데 모읍니다. 어떤 측면도 배제시키지 않으며, 또한 이 이상은 신앙을 단순히 사회적 혹은 정치적 질서의 개선으로 축소시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는 푸에블라가 다음과 같이 요청한 것처럼, 이 해방의 사회적 역사적 차원을 강조해야만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삶의 일부인 구체적 현실과 마주하면서, 우리는 복음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우리가 개인차원과 많은 경우에 물론 구조적 차원에서 가장 빼앗기고 뒤떨어진 인간그룹들과 사회계층을 섬기고 증진시키며, 그런 행동이 현실의 모든 국면에 끼칠 결과도 감수하면서 결단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우리의 동료인간들을, 따라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복음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교회가 그렇게 한다면, 교회는 ‘목소리가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며, 해방을 위한 모든 올바른 환기를 증진시키고, 안내자, 활성가,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달성하기 위한 모든 합법적 투쟁의 인간화 역사 속에 진정한 하느님 나라를 위한 길을 마련하는 사회의 인간화를 멈춘다면,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복음에 대한 충실함을 배반하는 것입니다.”(로메로,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로메로 대주교의 회심의 원천은
하느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계시가 로메로의 회심을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의 원천은 오로지 하느님 밖에 없었다. 59세의 성직자, 교회 권력의 정점에 있으며, 신중하고 외교적이며 자녀적 순명을 지니고, 그리고 전통적인 사람, 로마와 동료 주교들의 평가를 즐기고, 살바도르의 엘리트들에게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잘 안정된 삶의 길로부터 돌아설 수 있었는가? 오직, 그가 오래전부터 무슨 대가를 치러도 따라가기로 결정한 하느님의 초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엄청난 변화는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가 죽은 그날 밤 완성된 것이 아니라 시작되었다. 다음 날 대주교 로메로는 교회와 국가를 깨우칠 결정을 할 것이었다. 하루 온 종일 대교구의 성직자들과 의논한 결과 루틸리오 그란데의 시신을 산살바도르로 옮겨오고 대성전 바깥의 광장에서 로메로가 추모미사를 주례하기로 결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로메로는 그 주간 일요일에 대교구의 다른 모든 미사들을 취소하는 예외적인 결정을 하였다. 그는 산살바도르의 대성전에 모든 신자들을 초대하여 단 한 번의 미사를 함께 드리기로 하였다.

“이 한 대의 미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갈 수 없고 성체를 영할 수 없어 불평할 것이고 오해가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미사가 삶의 현실과 연결되어야 하며 이 한 번의 미사가 사목적인 방식으로 이 나라의 예외적인 상황을 보여줄 것이고, 미사 자체에 대한 좋은 교리교육이 될 수 있으며, 다른 미사가 없다는 것은 사제들의 국외추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주장했다.”(브록크만, <로메로: 어떤 인생>에서)

미사에서, 로메로는 박해의 위험에 처해있는 모든 사제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누구든지 저의 사제들 한 사람이라도 건드리면, 저를 건드리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사람들의 공개적인 찬사를 받았다. 사람들은 이후 대성전에서 그의 주일 강론 때마다 보여줄 인증의 몸짓으로, 열렬하게 그의 말에 박수를 보냈다.

“고맙습니다. 이 박수갈채는 대교구를 담당하면서 내 마음속에서 느끼는 깊은 즐거움을 실증해 줍니다. 저의 취약함, 저의 무능력이 일치된 사제직분 속에서 보완되고 힘, 용기를 발견하는 기쁨입니다.”(로메로, 1977년 3월 14일 강론에서)

대교구 전체에서 단 한 번의 미사는 충분히 도발적이었으나, 그 이상이 있었다. 모든 가톨릭 학교들이 사흘 동안 문을 닫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혼이 불붙은 사람의 행위라고 밖에 묘사할 수 없는데, 로메로는 탄압이 중단될 때까지 살바도르 정부 쪽과 만나기를 거부하였다. 대주교로서 그는 어떤 정부의 공식행사에도 결코 참여하지 않았다. 수줍은 한 사람이 “밤을 지내고 난 후” 예언자가 되었다. 

[원출처] <오스카 로메로-삶과 글에 관한 성찰(1917~1980)>, 마리 데니스, 레니 골든, 스코트 라이트
[출처] <참사람되어>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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