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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뭐예요?

[유형선 칼럼]

“아빠!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뭐예요?”
봄이 오면 중학교에 진학할 큰 딸이 자동차 뒷자리에서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예수님 생일이지!”
운전하던 제가 일단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습니다. 큰 딸은 제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예수님 생일이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어요.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 생일을 축하하는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 모두가 교회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모든 가게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달려 있는게 이상해요.”
“수민이 이야기를 들으니 진짜 이상한 게 맞네!”

저는 맞장구를 쳤습니다.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는 모습을 칭찬해 주고 싶었습니다. 큰 딸은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크리스마스에는 거리에 자선냄비가 등장해요. 자선냄비에 돈을 넣는 게 크리스마스의 의미인가 생각도 해 보았어요. 그렇다고 자선냄비에 돈을 넣는 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라고 생각하기에는 뭔가 부족해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내가 저에게 ‘크리스마스의 의미’에 대하여 큰 딸을 위해 편지를 써보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아빠가 자세하게 이야기를 풀어주는게 어떻겠냐고 말이죠. 저는 그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딸에게 천천히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운전 중이었기에 나중에 자세하게 글로 써주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수민이에게

수민이가 이야기한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 말이야. 아빠는 수민이가 자랑스럽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누군가 던져 준 질문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되짚어 고민 해보기! 바로 이런 태도가 수민이를 내면이 강한 사람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아빠는 지금부터 ‘크리스마스의 의미’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 해. 사실 이 글을 쓰려고 도서관에서 책도 찾아 보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그랬어. 다시한번 느낀다. 수민이 수린이가 아빠의 스승님이야!^^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어원은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미사(Christ Mass)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사실 ‘생일’이라는 의미는 없었지. 그러나 요즘 시대에 크리스마스는 ‘예수님 생일을 축하하는 날’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어. 그런데 엄격하게 이야기해서 예수님 생일이 12월 25일은 아니라고 해. 예수님 생일을 12월 25일에 모여서 축하하자고 정했던 게 지금껏 이어지는 전통이 된 거지.

왜 성탄절은 12월 25일이지?

12월 25일에 예수님 생일 잔치를 하자고 정한 유래는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물론 그리스도교가 고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기 전부터 12월 25일을 예수님 탄생일로 본다는 기록도 있대. 그러나 어쨌거나 고대 로마제국의 태양신 축일이 예수님 생일 축일로 변경되었다는 것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어. 

고대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존에는 탄압하던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했고, 로마제국의 안정을 위해 기존의 종교와 그리스도교를 엮는 작업을 했어. 고대 로마제국의 기존 종교는 태양신을 섬겼어. 1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날이 12월 21일 혹은 22일이고 동지라는 절기인데, 동지를 지나면서 해가 다시 길어 지기 시작하지. 그래서 12월 25일을 어둠이 물러나고 빛이 세력을 얻기 시작하는 날로 보고 ‘결코 정복되지 않는 태양신이 새로 태어나는 날’로 정하여 기념했는데, 고대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이 날을 예수님 생일로 엮은 거지.

이 부분에서 아빠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교의 세력이 기존 로마 종교를 넘어설 만큼 강력해 졌다는 거야. 종교와 문화라는 것은 위에서 엮고 싶다고 그렇게 뚝딱뚝딱 엮어지는 게 아니거든. 로마제국이 섬기던 태양신 종교의 축일 문화가 그리스도교 축일 문화로 변경될 만큼 고대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의 세력은 이미 충분히 강력해졌다는 거지. 

아빠는 로마황제의 절대권력에 대항하여 목숨을 내던지던 신앙의 선조들이 기어코 얻어낸 신앙의 자유가 크리스마스의 유래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 12월 25일이 성탄절로 정해진 유래에서 고대 로마 제국에서 살던 그리스도교 선조들의 고난과 해방이 느껴지거든. 자신들을 핍박하던 기존 태양신 종교의 축일을 이제는 예수님 생일로 전환하여 국가적인 행사를 치르는 모습에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정말 신났을 것 같아.

예수님이 태어나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었다는 것은 성서에 근거한 이야기가 맞아.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이야기는 최근에 아빠와 성서를 함께 읽을 때 본 이야기이지? 성서가 기록하는 하느님 일하시는 방식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어. 예수님은 엄청나게 힘이 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게 아니야. 예수님은 부모님들이 정식 결혼도 하기 전에 이미 뱃속에 들어선 아기였고, 아주 작은 시골동네에서 손님으로 머물 방도 없어서 가축들이 머무는 곳에서 태어난 아기였어. 

예수님은 국가폭력을 피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면서 키워지던 아이였어. 요즘 언어로 표현하면 전쟁과 가난을 피해 국경을 넘는 피난민 가족, 혹은 집을 잃은 노숙자 가족, 혹은 미혼모 보호소에서 키워지는 아이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오셨다는 거지. 바로 이 부분이 성서가 기록한 예수님 탄생의 의미이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기억해야할 성탄절의 의미라고 생각해.

 

사진출처=pixabay.com

어느 나라나 성탄절은 공휴일인가?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아닌 사람들이 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지 모르겠다’는 수민이 생각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고. 일단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당시 남한을 분할통치하던 미 군정은 일본이 사용하던 공휴일과 축제일을 모두 폐지하고 새롭게 공휴일을 제정했는데, 이때 크리스마스가 관공서의 공휴일로 지정되었어. 이후 1949년도에 이승만 정부도 크리스마스를 관공서의 공휴일로 지정했어. 

세계적으로 보면 남북 아메리카, 유럽, 호주 같은 기독교가 국교인 나라들은 크리스마스를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지만, 국교가 기독교가 아닌 나라들이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는 사례는 많지 않아. 아시아 지역만 해도 한국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정도만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어. 말레이시아는 다인종 국가여서, 필리핀은 국교가 가톨릭이어서, 대만은 공교롭게도 12월 25일이 제헌절이어서 공휴일이라고 하더군. 일본과 중국은 성탄절이 공휴일이 아니래.

어쨌거나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국가적으로는 공휴일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 탄생을 기념하게 되었어. 또 다른 이유로서 크리스마스는 소비를 자극하기에 좋은 시기이기도 해. 상업적으로도 대목이라는 거지.

성탄절의 의미는?

이 편지를 쓰면서 아빠에게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았어. 아빠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늘 한겨울에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어. 아마도 호주 같은 남반구에 살았다면 한여름에 성탄절을 맞이하겠지? (^^) 늘 한 겨울에, 한 해가 채 몇일 남지 않은 시점에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자연스럽게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시 시작하는 한 해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기간이 늘 성탄절이더라고.

인간은 늘 스스로에게 묻거든. 지금 어디를 지나왔는지, 어디로 나아가는지를 말이지. 그래서 어찌 보면 참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지. 어제 뜨는 해와 오늘 뜨는 해가 별로 다를 것도 없는데, 거기에 날짜를 정하고 연도를 정하는 게 인간이야. 어제 뜨는 태양은 2017년의 해이고, 내일 뜨는 태양은 2018년의 해라고 정하지. 태양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이없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어. 그러나 뜨고 지는 해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게 인간의 진솔한 모습이야. 그런데 공교롭게도 일년을 뒤돌아 보고 일년을 계획하는 기간의 한 중심에 ‘한겨울 성탄절’이 있더라고.

한겨울 나무는 모든 잎을 내려놓고 맨몸뚱이로 겨울을 나거든. 본질 중에 본질만으로 다시 찾아올 봄과 여름을 기다리는 게 겨울나무의 모습이야. 아빠 눈에는 성탄절 구유에 누운 예수님도 똑같아 보여. ‘예수님도 저렇게 작고 여린 모습으로 시작하셨구나!’를 보여주는게 성탄절의 의미라고 생각해.

인간에게 본질 중에 본질이 무엇일까?

인간이 인간으로 다시 또 일어나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이 질문의 답이 어떤 이는 ‘양심’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사랑’이라고도 하더라. 질문의 답이 그다지 멋진 게 아니어도, 설령 그다지 참신하거나 새롭게 보이지 않더라도, 그다지 힘 좀 쓰게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들고, 인간이 현실을 딛고 다시 일어나 또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주는 건 분명한 것 같아.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 질문의 그 답들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지 간에 예수님이 살아간 삶의 본질이라고 불러도 꽤 어울리겠다 싶었어. 그리고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그런 예수님과 또 한 해를 함께 갈 수 있어서 말이지.

2017년 12월 성탄절에

유형선 아오스딩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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