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동스' 2017년 다함께 호흡했던 시간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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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동스' 2017년 다함께 호흡했던 시간이여, 안녕
  • 진수미
  • 승인 2017.12.26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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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동스>(권윤주, 2014.4.18.~2017.12.21)

[진수미 문화칼럼] 

많은 사람들이 2017년 출판계 이슈 중 하나로 고양이를 꼽는다. 이 트렌드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터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긴 하다. 며칠 전 나는 카카오 페이지에 연재되었던 웹툰 <옹동스>의 주인공 나옹(2000-2017)이 세상을 떠났고 웹툰이 종료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옹은 내가 처음으로 이름을 알게 된 고양이다. 그는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 그러니까 애완의 대상이라고 하기에 고양이가 낯설었던 2000년대 초반, '스노우캣'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던 1세대 웹툰 작가 권윤주가 키우는 고양이였다. ‘프로 불참러’ 같은 요즘의 기묘한 영한합작 유행어의 시조격인 ‘귀차니즘’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도 바로 권 작가였다. 많은 이들이 그녀가 제공하는 스노우캣 달력을 출력해서 냉장고 문에 붙여놓고 일상의 계획과 사건을 기록했으며, 또 나옹을 닮은 상상 속 고양이를 소환해서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머릿속에 그리기도 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점차 많은 작가들이 웹상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또 권 작가가 뉴욕으로 활동 근거지를 옮기면서 그녀는 한국의 트렌드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녀가 간간이 전해주는 뉴욕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그녀는 테이크아웃 종이컵에 그린 자신의 분신 스노우캣을 보여주거나 고양이 나옹과 함께 하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한국의 팬들에게 들려주었다.

 

외국 생활을 마친 작가는 2014년부터 ‘옹동스’라는 고양이 웹툰으로 한국 독자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작품에서는 나옹에게 좀 모자라지만 순수한 동생 은동이가 생겼다. 옹동스는 나옹과 은동의 마지막 자구를 딴 제목이다. 그리고 세 식구는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여, 보다 넓은 공간을 자신의 고양이와 나누고 싶은 집사들의 로망을 랜선으로나마 실현시켜 주었다.

스노우캣의 동반자로 소개되었던 나옹은 도도하고 독립적인 고양이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고양이를 잘 모르는 대중에게 판타지를 심어주기 충분했다. 그러나 실제로 고양이를 가까이 두게 되면 이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 성향이 강하고 도도하지만 의외로 허당 면모를 지닌 것이 이 조그만 털북숭이 친구의 실체인 것이다.

<옹동스>의 나옹이 바로 이러한 고양이이다. 나옹은 은동에게는 까칠한 냉미남이지만 작가에게는 혼자 있기 싫어서 소리를 지르는 떼쟁이 어린이다. 동시에 은동이가 사고칠 때마다 제일 먼저 달려가 그루밍으로 진정시켜 주는 따뜻한 오빠이다. 2000년대의 나옹이 카리스마를 지닌 신비한 존재였다면, 2010년대의 나옹은 친근하고 대중화된 이미지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고양이를 대하는 대중의 시선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 운신이라 하겠다.

<옹동스>의 초반 스토리는 나옹과 은동의 합사 이야기이다. 새로 온 고양이를 기존 고양이와 원만하게 지내도록 하는 과정은 모든 고양이 집사의 최대 고민거리이다.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새 구성원을 받아들일 때 큰 스트레스를 받는데, 고양이에게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나옹은 처음에 은동과 잘 지내는 듯 했지만 구토와 혈변 증상을 보였고 결국 췌장염 판정을 받는다. 작가는 나옹을 위해 은동을 다른 집에 맡겨야 했다. ‘고양이는 두 마리가 진리’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시선에서 나온 말이므로, 둘째 고양이의 입양은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실패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같은 이유로 <옹동스>의 작가도 고민하고 자책하는 시간을 보내다가 고양이들을 위해 단독주택에서 살기로 결정한다. 이후 나옹의 건강이 안정된 뒤 은동을 다시 데려온다.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 단독주택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벌레들의 출몰이 악몽이다. 다행히 은동이 벌레 사냥의 귀재여서 집사에게 큰 힘이 되었고, 마당을 개조하여 벌레의 출몰을 막는 데 성공한다. 이 집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보금자리로 거듭나게 된다. 나옹과 은동의 은근한 케미도 이 공간에서 형성된다.

 

<옹동스>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작가의 변화이다. 고양이와 지내면서 행복을 미래로 유예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고, 지금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쪽으로 생각을 전환시키게 된다. 그리고 한없이 낙천적인 은동을 통해 작가의 사고방식도 밝아지고 유연해진다. 뿐만 아니라 노년기에 접어든 나옹의 통원 치료를 위해서 운전을 시작하고, 고양이를 더 잘 돌보고자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 모든 변화가 고양이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선물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선물도 생로병사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나옹은 혈전으로 하지마비 증상이 생겨 거동이 불편해지고, 작가는 이별을 서서히 준비해나간다. 그러나 작가의 말대로 이별은 준비할 수 없는 종류의 사건이다. 다가오는 이별을 예감하면서도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기뻐하고 애써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모든 이의 사랑과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나옹은 9월 25일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작가는 끝까지 자신을 바라보려고 애썼던 나옹의 마지막 움직임을 기억하며 “190화. 나를 끝까지 사랑한 고양이”라는 화를 완성했다. 이후 장례의 과정과 2회의 에필로그로 나옹의 이야기와 <옹동스>가 종결되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가까운 존재의 이별은 당할 때마다 새롭고 끔찍하다. 최근 우리 사회는 재능 있는 젊은 아이돌 뮤지션의 비극적 선택을 경험했고, 제천에서의 화재 사고로 오열하는 유가족을 지켜보아야 했다. 슬프고, 슬프고, 슬프다. 남겨진 이들에게 이별은 트라우마다.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런 고통 속에서 우리는 2017년과도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사라지는 몸을 가진 존재로서 우리는 아프게 당신들을 반추하고 있다. 랜선으로 사랑을 쏟았던 나의 첫 고양이. 나옹, 안녕. <옹동스> 안녕. 2017년 이 땅에서 같이 호흡했던 시간이여 모두 안녕.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듯이, 2018년의 태양도 솟아오를 것이다. 떠난 이들 모두가 행복한 기억으로 우리 안에 머무르길 바란다.
 

진수미 카타리나
글쟁이. 더불어 잘사는 세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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