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 프란치스코] 형제인 태양, 자매인 달과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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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 프란치스코] 형제인 태양, 자매인 달과 별
  • 월리암 J. 쇼트
  • 승인 2017.12.19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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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즐거움-18

‘찬미 받으소서, 저의 주님, 모든 피조물과 함께 찬미 받으소서’

프란치스코는 자연, 특히 동물에 대한 특별한 관계로 당대 사람들의 종교적 상상력에 큰 충격을 주었다.

가난뿐 아니라 창조물에 관해서도 우리는 프란치스코의 말과 행동의 동기를 기억해야 한다. 그는 단순히 자연을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19세기 이후 그는 자주 자연 애호가로 여겨졌지만, ‘태양의 찬가’에 나오는 그 자신의 말을 성찰하면서, 우리는 이 동료 피조물들, 그의 형제자매들이 어떻게 그에게 사랑의 아드님(성자)의 모습을 반영해 주는지 알아보기 시작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육화하신 아드님을 통하여 안다: 그는 또한 나머지 피조물의 세계도 이와 똑같은 빛으로 본다. 모든 피조물들은, 단지 인간뿐만 아니라, 삼위일체의 좋으신 하느님이라는 똑같은 원천으로부터 온다. 모든 것은 똑같은 매개체, 아드님을 통하여 오고 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었는데 그분이 바로 피조물로 오신다. 여기에 프란치스코가 모든 피조물들에게 보여주는 놀라운 관심, 존경과 사랑의 기반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동료 피조물들’은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육화하신 아드님과 함께 존재하므로, 모두가 프란치스코의 ‘형제자매’들이다.

창조와 관상

곡조가 붙여져서 형제들과 함께 불렀던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찬가’는 우리에게 그가 창조물들과 맺었던 관계를 흘낏 보게 한다. ‘찬미 받으소서, 저의 주님, 당신의 모든 피조물과 함께, 특히 형제이신 태양님... 그는 가장 높으신 당신의 모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매인 달과 별들, 형제인 불과 바람, 자매인 물과 ‘우리의 자매요 어머니인 지구’는 찬미의 연가에서 계속 이어진다. 마치도 다니엘서의 ‘세 젊은이의 노래’(다니 3,57-88)와 같다.

찬가는 움브리아지방의 중세 방언으로서 뜻은 ‘저의 주님, 당신’이고 ‘...에 의해 찬미 받으소서’ 혹은 모든 피조물 하나하나에 대하여 ‘찬미 받으소서’라는 기도로 계속 이어진다. 이 형제들과 자매들의 이름이 호명되고, 짧은 서술이 매 피조물마다 주어진다. 형제인 태양은 ‘우리를 비추고’; 자매인 달과 별들은 ‘아름답고, 영롱하며 소중하다; 보석처럼; 형제인 불은 ‘밤을 밝혀 준다’; 자매와 어머니인 땅은 ‘과일들을 생산하고 꽃들과 풀들에 색깔을 입힌다.’

우주의 요소들인 땅, 공기, 불, 물을 열거한 후, 프란치스코는 인간형제와 자매들을 찬양한다: 용서하는 사람들;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 평화를 지키는 사람들을. 프란치스코는 마지막 구절들을 죽어가면서 덧붙인다: ‘찬미받으소서, 저의 주님, 우리의 자매인 육체의 죽음에 대하여; 죄 속에 죽는 사람들은 불행하고, ‘당신의 가장 거룩한 뜻’ 안에 죽는 이들은 축복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 찬가에서 우리는 프란치스코가 주위의 세계를 얼마나 부드럽게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관찰하는가를 듣는다. 당시 세계를 부정하거나 이원주의적 종교운동에 비하여, 형제-자매 관계가 이루어지는 세계에 대한 이 기념은 너무나 뚜렷하게 눈에 띄고 있다.

첼라노의 토마스가 표현하듯이, ‘프란치스코는 예민한 마음으로 자연의 숨겨진 것들을 뚜렷이 알아보았다.’ 주위의 사람들은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존중과 부드러운 사랑을 알아차렸다. 몇몇 초기의 동료들은 토마스가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쓰는데 사용하도록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들은 많은 다양한 피조물들 앞에서 프란치스코가 가지는 존경, 사랑과 즐거움을 말해 준다:

프란치스코는 애덕의 정신으로 충만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미물인 동물들, 파충류, 새들, 그리고 기타 다른 피조물들, 그것들이 지각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연민을 가득 가지고 있었다.

"... 그가 꽃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그 달콤함의 향기를 느꼈을 때 꽃들의 아름다움이 그에게 가져온 기쁨은 얼마나 크다고 생각하는가?...

꽃들이 가득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프란치스코는 꽃들에게 설교하고 함께 주님을 찬미하자고 초대한다.

마치도 그것들이 이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면서 이와 마찬가지로 그는 옥수수 밭과 포도밭, 돌과 숲과 들판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 샘물과 정원의 푸른 것들, 불, 공기와 바람을 가장 순수하고 성실한 자세로 고양한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기꺼이 섬기기 위해서이다."

토마스는 어느날 프란치스코가 토끼, 물고기 그리고 ‘물총새’를 만났을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 프란치스코는 동물을 ‘사랑스럽게’ 안고 하나씩 이름을 불러준다. ‘형제여’ 프란치스코는 ‘기뻐하고’ 이어서 기도에 사로잡힌다. (이상한 관상운동이다: 호수위에서 배에 앉아 귀여운 것을, 끌어안으며,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게 노 젓고 있는) ‘자신에게로 돌아오면서’(마치 황홀경에 빠져 있었던 것처럼), 그는 동물을 자유롭게 놓아준다.

프란치스코는 동물을 만지고, 물고기나 새를 만지기만 해도 황홀경에 빠지는데,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자취를 담고 있다. 피조물들은 프란치스코에게 그의 연인을 상기 시켜주고, 메시지들이며, 메시지를 전해주는 사자들이다.

 

월리암 J. 쇼트

[원출처] <가난과 즐거움-프란치스코회의 전통>, 월리암 J. 쇼트(프란치스코회)
[출처] <참사람되어>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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