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예수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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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예수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 유대칠
  • 승인 2017.12.13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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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아픈 시대, 낮은 자의 철학 -19]

곧 성탄이다. 종교를 떠나 많은 이들이 성탄을 즐긴다. 굳이 그리스도교를 따르지 않아도 성탄은 즐거운 날이다. 그 성탄의 시간에 여러 생각을 해 본다. 우리에게 찾아온 예수는 어떤 존재인가? 그의 가르침은 무엇이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려는 교회는 또 무엇이고, 그 교회란 모습으로 우리의 앞에 선 그리스도교란 하나의 종교는 또 무엇이며, 더 근원적으로 종교란 무엇인가? 성탄이란 기쁨의 날에 나는 종교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예수는 낮은 자로 오셨다

낮은 자를 위하여 낮은 곳에 온 분이란 표현이 귀에 남아있다. 예수가 그렇게 왔고, 그 예수의 가르침으로 교회가 모이고, 그 교회가 모여 그리스도교라는 하나의 신앙으로 뭉쳐있다면, 그리스도교의 핵심엔 낮은 자를 위하여 존재하는 낮은 곳이 놓여있어야 한다. 그냥 그리 깊지 않은 생각으로도 그렇게 된다.

그 낮은 자는 그렇게 복잡한 설명이나 이해가 없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낮은 자일 것이다. 오히려 복잡하고 어려운 이해 속에 숨은 낮은 자는 정말 낮은 자가 아닐 수 있다. 낮은 자는 그렇게 어려운 논리와 교묘한 변명 속에 있진 않을 것이니 말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그 낮은 자는 가난한 사람일 것이고 병든 사람일 것이다. 돈이 없어 죽어야하는 사람, 돈이 없어 아파야 하는 사람, 돈이 없어 희망보다 절망에 익숙한 사람 말이다.

예수는 그 자신이 바로 이런 낮은 자로 왔다. 그런 이들의 모습으로 그런 이들을 머무는 곳에 그들의 벗으로 왔다. 화려한 곳에서 화려한 모습으로 강인한 힘을 자랑하며 오지 않았다. 민중의 벗으로 민중을 위하여 살아가다 민중을 위해 죽어가는 가축의 옆에서 그들이 보는 가운데 태어났다. 예수는 그러했다.

 

사진=한상봉

가장 낮은 자의 언어로

예수의 말은 복잡하지 않다. 그 자신도 당시 유행하던 헬레니즘의 복잡한 철학적 사유를 알지 못했다. 그들의 귀를 위한 말을 하지 않았다. 예수는 낮은 자의 모습으로 찾아와 그의 이야기는 가장 낮은 이들의 언어로 그들의 귀에 들렸다. 이런 저런 철학이나 어려운 이야기 없이 그들의 귀에 올리는 언어였다. 그러나 지혜로운 말이었다. 지식으로 가득한 그런 말은 아니었다. 그의 말을 알아 듣기 위해, 이런 저런 어렵고 복잡한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살았듯이 낮은 자의 삶처럼 낮지만 깊이 다가오는 말이었다. 간음한 여인을 향한 그의 말은 이후 많은 신학자들에게 풀이되었지만, 어찌 생각하면 그 장면 속 많은 이들에게 별 다른 지식 없이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당신들 가운데서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시오.” 예수는 자신의 지식이 아닌 자신의 말에 움직이는 낮은 자들의 그 양심을 믿었는지 모른다. 그들의 귀를 믿었는지 모른다. 어렵지 않지만 지혜로운 말, 예수는 그러했다.

이젠 보이지 않는 예수

더 이상 예수는 보이지 않고, 그의 말이 남았다. 낮은 자를 위하여 낮은 곳에 온 그의 모습은 성당과 교회의 기억이 되어 남았다. 낮은 자의 귀를 위한 그 낮은 말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와 풀이, 그 이해와 풀이에 따라 서로 다른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은 때론 서로를 향한 칼이 되고 총이 되었다. 죽이고 죽이는 잔혹함, 그 비도덕성이 신앙이란 이름으로 정당화기도 했다. 무서운 시대였다. 예수 자신도 모르는 같은 이름의 예수가 여기 저기 나타나 예수가 아닌 다른 말로 예수를 이야기했다. 힘을 얻게 된 이들은 더 이상 낮은 자의 낮은 곳을 향하지 않았다. 높은 자의 높은 곳을 향했다.

근대 많은 사상가들은 그리스도교에 실망했다. 예수를 이야기하지만 스스로 온갖 사회적 문제의 원인이 되는 이들을 보며 실망했다. 칸트(1724-1804) 등 많은 이에게 영향을 준 근대 철학자 크리스티안 볼프(1679~ 1754)는 중국철학에 감탄했다. 무신론이지만 인간 심성에서 도덕의 근원을 찾는 그 무신론적 윤리학에 감탄했다.

당시 예수회의 선교사인 필립 쿠플레가 1686년 파리에서 출판한 <중국인 철학자 공자>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었다. 이들에게 중국의 철학이 그렇게 큰 힘을 가지고 전해진 것은 어쩌면 신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죽이는 서구에 대한 실망 때문일지 모르겠다. 이런 시대적 흐름 가운데 볼프는 중국의 <중용>과 <대학>에 나오는 개념들을 수용했다. 볼프는 당시 많은 그리스도교인에게 무신론자로 보였고, 결국 추방의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말만 남은 예수

낮은 자의 낮은 곳을 이야기하던 예수는 사리지고 강한 이의 모습으로 남으려는 아집과 그 아집을 지키려는 어렵고 복잡한 논리만 남은 세상이 왔다. 그 어려운 논리 뒤에서 종교의 가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젠 가난해도 가난하기 힘든 거대한 몸집의 무엇이 되었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가톨릭병원에서 간호사의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낮은 자를 위해 헌신해야할 ‘희망원’의 탐욕으로 신부와 수녀가 재판을 받았다. 신부는 구속이 되었다. 어쩌면 가난하기 싫었고, 낮아지기 싫었다. 예수에 대한 기억의 언어로 충분했다.

서양의 근대, 그 무신론은 기존 종교에 대한 절망에서 시작되었다. 잊지 말아야 한다. 근대의 많은 무신론은 무신론을 위한 무신론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실망이었고 절망이었다. 그 시작은 교회의 외부가 아닌 교회의 내부였다. 교회에 대한 희망이 절망이 될 때였다.

성탄이다. 예수가 우리에게 온 그 날, 그는 낮은 자를 위해 낮은 곳에 왔다. 그것은 그저 기억의 언어로 돌아보아야할 옛일이 아니다. 지금 여기 우리의 삶에 예수는 자신의 시작을 통하여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곧 성탄이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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