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어린이, 권력 없는 이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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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어린이, 권력 없는 이의 상징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7.12.12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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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마을 공동체 - 2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실천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은 대안적 공동체 운동, 즉 올바른 관계의 회복 운동이었다.

이혼에 반대하는 예수의 입장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인권을 위한 위대한 실천이었다. 그것은 여성을 재산화, 소유화 하는 당시 유다인 남성들에 대한 도전이고, 남녀평등과 완전한 상호주의라는 대안의 실현이었다. 예수는 일부다처와 이혼을 통해 드러난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입장에 도전하고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권리를 옹호한다. 그리고 예수는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가정과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는 상황에서 계약의 공동체를 다시 새롭게 회복하고자 한다.

마르 10,13에서 사람들이 예수에게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달라고 청했는데 제자들이 이를 꾸짖었다. 그러자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 10,14),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5)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었다. 이와 같이 마르 10,14-16에서 예수는 어린이들에 대해 가르침으로써 제자들이 그들에게서 배우도록 초대한다. 즉 어린이처럼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출처=jaredbarnesart.blogspot.com

이 본문의 앞선 문맥과의 관련성 안에서 어린이의 의미가 더 잘 드러난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두 번째 수난과 부활 예고(마르 9,30-31) 다음에 제자들은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에 대하여 논쟁을 한다(마르 9,32-34). 여기에서 제자들은 예수에 대한 몰이해 뿐 아니라 부와 정치적 권력에 대한 욕망을 드러낸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는 어린이 하나를 제자들 가운데 세우고 껴안는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라고 말한다. 곧 부와 권력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예수는 어린이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가 요구하는 것을 예증하기 위하여 어린이들을 선택한 것은 매우 독창적이다. 사실 전통적인 농업 사회였던 고대 이스라엘에서 어린이는 가장 낮은 사회적 계층에 속했다. 어린이는 아무런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어린이는 사회 안에서 가난하고 권력이 없는 사람이다.

예수 당시의 사회에서 어린이는 여성과 함께 약자 중의 약자로서 가장 밑바닥 계층에 속했다. 어린이는 가장 비참하게 짓밟히고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린이와 같이 된다는 것과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히 때 묻지 않은 순진함과 천진무구의 태도만을 가리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 위에 자리하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요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4)는 예수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어린이처럼 비천한 이가 된다는 것은 사회적 신분과 관련되는 태도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예수는 사회적 위계질서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기존의 사회 계층 구조에 대한 변혁을 의미한다. 예수는 모든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뒤엎는다. 이것은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마르 10,31) 경우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위와 아래, 아래와 위가 뒤바뀌는 거꾸로(topsy-turvy)의 질서를 의미한다. 비천한 이가 되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통치와 세상의 지배 체제 사이에 존재하는 뚜렷한 대조에 대한 예수의 관심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 안에서 표현된다.

하느님의 나라가 어린이들의 것이라는 예수의 말은 하느님 나라 운동의 의제를 가장 또렷하게 드러내고, “계약의 공동체를 다시 새롭게 하기”의 비전을 제시한다. 따라서 어린이들의 하느님 나라는 로마 제국의 질서에 대한 예수의 새로운 사회적 질서, 곧 대안이었다.


송창현(미카엘)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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