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헌 주교 "한반도, 평화의 발신지… 교회는 참회하고 속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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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헌 주교 "한반도, 평화의 발신지… 교회는 참회하고 속죄해야"
  • 이기헌 주교
  • 승인 2017.12.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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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평화를 위한 국제학술심포지엄] 이기헌 주교-평화를 위한 교회의 성찰

오늘 우리는 평화롭지 않은 이땅에서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남북을 갈라놓는 경계선이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군사적 긴장을 유지하는 DMZ와의 거리가 불과 3~4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에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DMZ는 한국전쟁의 비극과 남한과 북한이 70여년 세월 동안 서로를 미워하고 두려워하며 대결하고 있는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DMZ는 단순히 남북을 가르는 경계선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지정학적이고 역사적인 요인들을 고려해야겠지만, 오늘날 세계 패권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가속화 되는 대결 전선의 한복판에 한반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일본을 한 축으로 하는 해양세력과 중국과 러시아를 다른 한 축으로 하는 대륙세력의 대결 구도가 한반도에서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기헌 주교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도 동북아 역내 주민들의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을 대상으로 영토분쟁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명분을 쌓아가는 중입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은 각종 최첨단 무기체계들을 동맹국에 전개 또는 배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일동맹도 전례 없이 강화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도 이 미일 동맹에 대응하기 위해 결속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처럼 그 어느 때 보다 긴박한 정세가 동북아에 조성되고 있어 우리의 지혜로운 판단과 결정이 절실합니다.

만일 저희가 지혜롭지 못하면 과거 우리 민족의 뜻과 상관없이 양대 세력의 충돌의 장으로서 큰 희생을 치러야 했던 고통의 역사를 재현할 수도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되며 현실화된 동서 대결구도 속에서 한반도는 5백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는 처참한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토록 불행한 역사를 가진 이 땅에 지금 또 다시 끔찍한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그리고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가 대결하는 희망을 찾기 어려운 갈등 현실에서 우리 교회가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한반도 평화 실현에‘참회와 속죄의 성당’이 갖는 의미

저는 오늘 이 뜻 깊은 행사를 시작하면서 평화를 위한 교회의 사명을 성찰하기 위해 우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봉헌된 ‘참회와 속죄의 성당’의 의미를 되새기며 용서와 화해를 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보편교회의 사회교리는 평화에 관한 교회의 사명에 관해 “세계 평화의 증진은 지상에서 그리 스도의 구원 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교회 사명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다. 사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이며,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한 평화의 표지이며 도구”(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간추린 사회교리』, 516항)라고 설명하면서, 평화를 위한 길로 ‘용서와 화해’를 제시하습니다. 현실에서 도달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참된 평화에 이르기 위해 “진정한 평화는 오로지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517항)고 선언하였습니다.

평화와 화해에 관한 역대 교황님들의 이러한 가르침들을 살펴보면, ‘참회와 속죄’라는이름을 가진 이 성당에서 오늘 우리가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매우 뜻 깊습니다. 우선 ‘참회와 속죄’라는 이 성당의 이름은 아직도 적대하는 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우리 교회가 한국전쟁 중에 서로 형제를 죽던 죄를 참회하고 속죄하겠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성당은 북한지역에 있던 성당과 그 신앙을 기억하려는 의지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지은 이 성당은 한국전쟁 이전 북한 지역에 존재했던 성당을 모델로 하습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적지 않은 숫자의 신자들이 우리와 같은 신앙을 고백했다는 사실을 이 성당이 기억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성당 외부 모습은 신의주에 있던 진사동 성당을 모방했습니다. 진사동 성당은 미국 메리놀회 선교사들이 지었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2년부터 평안도 지역에 진출했던 메리놀회는 20여 년 사이 21개 본당을 설립하는 등 선교에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 사이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1942년 6월, 선교사 전원이 미국으로 강제 추방 당하였습니다. 메리놀회 신부들은 당시 바티칸의 새로운 선교 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선교지의 평신도 교육과 방인 사제 양성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동양식의 분위기로 지어진 이 성당은 그들의 이러한 토착화 노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 제단화. 사진=한상봉

‘참회와 속죄의 성당’ 내부는 함경도 덕원에 있던 베네딕도 수도원의 성당 모형을 본떴습니다. 베네딕도회 덕원 수도원은 당시 독일인과 한국인 수도자 백여 명이 생활했던 곳으로 함경도 지역 천주교의 중심이었습니다. 베네딕도회는 분원 형태로 함경도 전역에 본당, 수녀원, 교육기관 등을 가지고 있었으며, 덕원수도원 자체로만 440헥타르의 대토지를 소유했었습니다. 덕원수도원은 신학교, 인쇄소, 양조장, 정미소, 농장 등도 운영했습니다.

여러분 앞에 보이는 이 모자이크화는 북한 작가들의 작품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제약을 받는 북한에서는 이러한 종교적인 작품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북한 예술가들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서 우리 교회의 신앙과 희망을 표현하는 이 예술품을 만들었습니다. 평화라는 말이 새겨진 복음서를 펼치고 계신 예수님 주변으로 남한과 북한의 순교 성인들이 평화의 주님께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전구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비록 갈라져 서로를 적대하고 있지만, 과거 역사를 재현하며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한 형제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이 성당을 봉헌했다는 의미를 살리려 노력한 것입니다.

저는 이 성당을 방문할 때마다 이 극동의 땅 한반도에 전해진 그리스도교 신앙의 역사와 이 아름다운 성전에 새겨진 참회와 속죄라는 말의 의미를 묵상하곤 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를 위해, 진정한 용서와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참회이자 속죄라는 것도 절실히 느끼곤 합니다. 우리 교회의 참회는 전쟁 중 서로 피를 흘리게 했던 잘못을 대속하는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의 불행한 과거사에서 행했던 교회의 잘못까지도 참회·속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대와 분열에 직면해 평화를 중재하는 것을 교회의 본질적 사명으로 본다면(화해와 참회, 8항), 교회 먼저 스스로 화해를 실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화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참회가 필요합니다. 정의와 진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의 후손인 교회지만, 지나온 민족의 비극적인 과거사 안에서 평화를 제대로 중재하지 못했던 나약한 모습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분단과 전쟁에 대한 성찰

우리 민족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분단과 전쟁이라는 시련 속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평화에 대 한 고민과 평화를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오랜 박해시대를 거치고, 또 일제 강점기를 막 벗어난 한국 천주교회는 자유롭게 선교와 신앙 활동을 하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강대국에 의해 불합리한 이유로 민족의 분단이 진행되고 있을 때, 양심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 이 정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울 때, 우리 교회는 이러한 활동보다 ‘교회의 평화’를 지키는 일에 더 적극적이었던 측면이 있습니다. 당시는 세계 각지에서 공산주의와 가톨릭교회의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이었고, 공산화가 진행되는 중국, 그리고 북한지역에서 전해오는 박해 소식은 한국 천주교회가 공산주의를 더 경계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반면,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이 종교(그리스도교)에 ‘너그러운’ 통치를 베푸는 것을 경험하면 서, 한국 천주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공산주의를 단호히 배격하고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을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민족 분단은 안타까운 일이었겠지만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일이 더 긴급한 과제였을 것입니다. 한반도에서도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동서 냉전은 결국 한국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쟁을 치르면서 한국교회는, 특히 북한에 있던 교회는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탄압을 받았습니다. 다수의 성직자들이 북한군에 의해 억류되고 죽음까지 당했던 전쟁 현실은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교회의 증오를 부추기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면서 보편교회 차원에서 과거사 반성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황청은 2000년 3월 7일에 <기억과 화해 : 교회와 과거의 잘못들>을 발표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차원에서는 2000년 11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임시총회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과거사 반성 문건 <쇄신과 화해>를 확정했고, 이 문건을 대림 제1주일(2000년 12월 3일)에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 문건은 총 7개 항으로 구성됐는데, 특히 2항과 3항에서 식민지 시대와 해방공간, 전쟁시기의 과거를 반성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2항: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 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 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3항: 우리 교회는 광복 이후 전개된 세계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빚어진 분단 상황의 극복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홀히 한 점을 반성하고 이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마음 아파합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식민지 경험, 동서 냉전의 진행과 전쟁의 체험은 교회가 ‘용서하는 평화’의 사도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했습니다. 아마 세계적 차원에서 고조되고 있던 가톨릭과 공산주의와의 갈등이 이 땅에서도 불가피한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교회가 스스로의 안위에 집착하느라 세상의 평화를 더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 사진=한상봉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시며,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1고린 5,18).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사도로 부름 받았습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자녀인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마태 5,9 참조). 특히 증오와 두려움이라는 분단 현실을 살아가는 한국교회에 ‘평화’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 입니다. 그 평화는 힘을 통해 이루는 현실주의의 평화가 아닌,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용서와 화해의 참 평화입니다.

한국교회는 이 소명에 충실하기 위해 가장 먼저 평화를 위한 교회의 사명을 자각하고 평화를 교육, 실천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남북 간 이념갈등이 위험수위에 이른 한반도에서는 상대방을 인정하기를 완고하게 거부하는 이들이 많아 평화 교육이 더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안보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는 아직 남북이 적대적 이념으로 무장하고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안보관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안보 담론의 허상을 폭로하고, 진정한 ‘인간 안보(human security)’를 추구하는 일이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평화의 가치를 교육하고, 함께 토론하며, 실천해나 가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평화’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을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생기는 갈등에서 벗어나, 한반도에서 필요한 평화의 가치를 교육하고, 토론하고, 실천하는 시간을 교회가 주도적으로 마련해나가야 합니다. 몇몇 교구에서 실천하는 민족화해학교나 주교회의에서 결정하여 사목회 구조 안에 설치하기로 한 민족화해분과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의 분단이 민족 문제이면서 동시에 주변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국제문 제임을 지적해왔습니다. 정전이후 64년 동안 남북과 주변 열강은 분단 상황을 정치적으로 활용해왔습니다. 따라서 이해관계를 떠나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 연대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 연대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가 이해 당사국들의 입장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국제적인 관심과 연대를 구축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평화는 한반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입니다. 현재 지구촌 수많은 곳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분쟁의 현실은 한 지역의 상처와 고통을 넘어 지구촌 전체의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일정 지역에 국한된 국지적 평화가 아닌 인류 공동체가 전체적이며 항구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톨릭교회는 국제사회에 평화 연대를 촉구하고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반을 지녔습니다. 따라서 인류의 평화를 호소하시는 교황님을 중심으로 국제 연대를 이루어 나가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이 세계에서 가장 첨예한 분쟁지역 가운데 하나인 한반도에서 평화를 활발히 논의하고 촉진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한국 교회는 보편교회를 기반으로 분단의 땅 한반도가 평화의 발신지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야 평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강력한 연대가 한반도를 둘러싼 각 국, 각 정파의 이해관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앙과 인도주의적 사랑 실천은 국경과 이념을 뛰어넘는 고귀한 가치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교회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종교적 교류, 그리고 상호 대화 노력을 끊임 없이 해나가야 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 즉 ‘서로 사랑하라.(요한 15,12)’와 ‘세상 모든 곳에 복음을 전하라.(마르 16,15)’는 사명과 접하게 연결돼있습니다. 또한 민간과 종교 차원의 교류와 협력은 갈라진 민족의 통합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통일 시대를 대비한 중요 한 기반 형성 노력입니다.

나가는 말

북한의 핵무기 성능이 고도화되고, 장거리 미사일 개발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현 상황은 남북만의 갈등이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의 충돌로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높아가는 위기 속에서 평화를 위한 사명을 지닌 우리 교회는 분쟁 위험을 극복할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환경이나 우리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심각한 갈등상황에 대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낼 필요가 있습니다. 분단의 땅 한반도가 분쟁의 상징이 아닌 평화의 발신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사명실현에 동참하시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주신 미국 샌디에고 교구장 맥 엘로이 주교님, 일본 나고야 교구장 고로 마쯔우라 주교님, 바티칸 유엔제네바 대표부 아비가 넴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멀리 제주도에서 와주신 강우일 주교님께도 관심과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평화 문제 전문가로서 사회를 통해 심도 있게 종합토론을 이끌어 주실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조광 교수님, 미국 주교회의 국제 정의평화위원회 국제 정책자문 패리스 님(Ms.), 일본 동경대학 유코 교수님, 미국 가톨릭 워커 뉴욕센터 대표 헤네시 님(Ms.), 저희 교구의 이은형 신부님께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오늘 발제자와 토론자들께서는 북핵 위협과 군비경쟁이 가속화되는 이 동북아시아에서 가톨릭교회의 역할에 대해 그동안 고민해 오셨던 바 를 기꺼이 나눠주실 것입니다. 바쁘신 가운데 이 행사를 축하해주기 위해 와주신 김희중 대주교님, 유흥식 주교님, 조규만 주 교님, 조명균 통일부장관님 등께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이 땅에서 평화를 활발히 논의하고, 이곳을 평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한반도는 더 이상 분쟁과 적대의 상징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이러한 평화 노력들은 동북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심포지움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기반으로 한 ‘하느님의 평화(shalom)’가 이 극동에 선포되기를 희망합니다. 평화를 향한 우리의 희망찬 발걸음에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부디 오늘 이 자리가 교회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진행되는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는 데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이기헌 주교
의정부교구장

* 이글은 2017년 12월 2일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제1회 국제학술심포지엄 발제문입니다. 해당 연구소의 허락을 얻어 전문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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