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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선 평화학교 "평화를! 평화를!"

[이진권 칼럼]

얼마전 철원에 있는 ‘국경선 평화학교에 다녀왔다. 퀘이커리즘을 연구하고, 분단과 전쟁의 현실이 적나라한 철원 땅에서 평화의 일꾼(Peacemaker)을 양성하는 학교를 만들려는 정지석 목사님의 비전이 구체화되고 있다.

국경선 평화학교에서는 거의 매일 소이산에 오르며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침묵기도회를 갖는다. 내가 찾아 간 날도 평화영성 워크숍을 마치고, 어두워질 무렵 소이산에 올랐다.

평화의 순례에 앞서, 잠시 마음을 모으고 그 날의 기도지향을 나눈 후, 각자 침묵하면서 걷는 기도를 시작한다. 마침 그 날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는 날이어서, 전쟁과 폭력의 기운이 가라앉고, 평화의 기운이 한반도를 휘감기를 더욱 염원하게 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대지에 발을 디딜 때마다, ‘주님. 평화를 주소서’ 라고 기도를 마음속으로 드린다. 접경지대의 고요와 어둠이 깊어지면서, 기도하는 마음도 더욱 깊어졌다. 전쟁과 분란을 일으키는 지도자들을 안타깝고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이 떠올랐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그러나 지금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루카 19,42)

 

사진출처=pixabay.com

30여분 산길을 올라 정상에 오르니 불빛으로 휴전선 철책선이 보이고, 캄캄한 북녘땅이 내려다보인다. 다시 촛불을 밝히고 참여자들의 마음을 모아 함께 침묵기도를 드렸다. 비록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는 ‘산위의 촛불기도회’였지만, 그 맑고 깊은 기운은 도도한 평화의 강물에 한 방울을 보탰을 것이다.

오랜만에 함께한 소이산 평화순례, 침묵기도의 길은 다시한번 나로 하여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평화를 향한 순례를 정기적으로, 일상적으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느님의 평화를 향한 순례의 여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름다운 평화의 공동체가 탐욕과 권력으로 파괴되자, 이를 보다 못해서 새 하늘 새 땅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평화로 가는 길을 보여주기 위해 오신 것이 예수님이 아니겠는가?

평화의 순례란 그런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며 몸으로 드리는 기도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디면서, 우리의 하느님을 향한 기도와 하느님의 우리를 향한 기도가 함께 만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걷는, 불가능해 보이는 평화를 향한 꿈이, 그저 우리만 걷는 외로운 여정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걷는 든든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길임을 깨닫게 된다. 순례를 통해서 우리는 몸과 마음이 점점 고요해지고 단순해 지면서, 평화가 지금 여기에 흐르고 있으며, 세상의 평화는 나로부터 시작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들 각자가 생활하거나 일하는 자리에서 조금이라고 침묵하고 걸을 수 있는 순례의 공간과 길을 찾아 보면 좋겠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그 곳을 찾고 걸으면서, 평화의 기운을 체득하고, 평화를 향한 염원을 쌓아가는 시간들을 가져보면 좋을 듯 싶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평화의 순례지들이 마을과 지역의 마르지 않는 평화의 옹달샘이 되어가고, 그 물줄기들이 서서히 더 큰 시냇물로, 강물로 흐르고, 마침내, 우리가 쌓아온 적대와 증오의 탁한 물줄기를 깨끗이 정화시키고, 수 많은 생명들이 회복되고 새롭게 피어나는 도도한 평화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기를 꿈꿔 본다.
 

이진권 목사
평화영성 교육센터 ‘품’ 대표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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