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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만 우리와 다를 뿐이었다

[심명희 칼럼]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어야죠! 여기가 복지관도 아닌데 어떻게 장애인을 데리고 일을 할 수가 있어요?” 그동안 쌓인 팀원들의 불만이 봇물처럼 터졌다. 카리스마 충만한 팀장도 오늘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 없이 허공만 본다. “말도 안 통하고 너무 힘들어요...” 속 깊은 김 약사까지 한마디 하는 걸 보니 모두의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이 논란의 중심에 그가 있다. 180센티미터의 훤칠한 키, 두껍고 검은 뿔테 안경 뒤에서 초롱초롱 빛나는 눈, 단정하게 공을 들여 맨 넥타이에 말끔한 검은색 양복을 갖춰 입은 그의 첫 인사는 우렁찼다. “저는 변아무개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치 국어책을 읽듯이 자신을 소개하는 그에게서 2퍼센트 다른 무엇이 느껴졌다.

사진출처=pixabay.com

변군이 입사한지 6개월, 드디어 우리의 고민도 깊어졌다.

그가 우리 팀에 들어오게 된 경위는 폭탄 돌리기의 결과였다. 장애인 일자리 프로그램 중 하나로 한 복지단체에서 약간의 장애를 가진 대졸 신입생인 그를 병원의 각 부서에 추천했다. 전문직을 필요로 하는 병원에서 장애인을 허락할 리 없었다. 마지못해 각 부서에 그를 추천했지만 모두 거절하던 터였다.

복지사로부터 간절한 부탁을 받자, 사람 좋은 팀장은 고민 끝에 그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완강하게 반대하던 팀원들은 ‘좋은 일’이라는 팀장의 호소와 누군가는 해야 하는 ‘모험’이나 ‘도전’이라는 설득에 마지못해 그를 팀에 받아들이기로 허락했다. 다음날 시골에 사는 칠십 넘은 그의 부모님은 아들이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듣자 한걸음에 달려와 음료수를 쭈욱 돌리며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자폐증.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스물다섯 살의 청년은 아무하고도 눈과 마음을 맞추지 않았다. 눈은 상대방을 보지만 마음은 딴 세계에 있는 듯 했다. 질문에 맞지 않는 엉뚱한 대답을 툭 던질 때는 외계인 같아서 다들 그를 피하곤 했다.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팀원들은 그를 이해하고 관리하는데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특기가 하나 있었다. 결코 포기나 절망을 모르는 열정과 노력이었다.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전부를 걸고 업무에 충실하는 걸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보통 다른 직원들은 업무에 적응하고 나면 눈치와 게으름, 시간 때우기 등 부정적인 모습이 나타나기 마련이데, 그는 달랐다. 언제나 진지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한 그의 열정과 노력은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장애를 가지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뼈를 깎는 노력과 연습이 있었으리라 짐작하지만, 직장이라는 곳은 만만치 않다. 습득해야 할 1천가지 종류가 넘는 약품의 목록은 그의 뇌세포에는 동종이 아닌 이종의 물질이다. 그는 부적처럼 깨알 같이 쓰여 있는 긴 약품목록을 들여다 보면서 온종일 중얼중얼 거린다. 뇌세포에 수백수천 번 되풀이 입력함으로써 이종물질을 이식하는 것이다.

입력된 정보만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작업이라면 암기하는 것만으로도 업무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를 연결하고 통합하는 창의적인 능력이 필요한 지점에서 그는 늘 무력했다. 무엇이든 암기를 통해서 적응해야 하는 그에게 절망스럽고 불가능한 한계상황이었다. 그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처음 느꼈던 부족한 2퍼센트가 고개를 슬금슬금 내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무하고도 소통할 수 없는 불통의 상태가 그를 외로운 섬으로 만들었다.

그는 부서 안에서 투명인간, 밖에서는 괴짜나 좀 모자라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는 서로 연결점 없이 각각 따로 작동하는 듯 했다. 마찬가지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에게는 통합되지 못하는 각각의 섬 같은 존재다. 매일 만나는 동료들을 공동체, 집단, 단체, 조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일 뿐 자신과는 관계 없는 사람들오 인식했다.

팀원 각자가 감당하는 몫이 1이라면 그는 0.5밖에 못했다. 팀원 중 누군가가 그가 남긴 0.5를 대신해야 했다. 그의 0.5는 시간이 갈수록 확대 재생산이 되어서 모두의 짐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슬금슬금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입력된 명령에만 따라 행동하는 사이보그 인간처럼 그는 오로지 명령만 수행했다. 통합과 연결 장애는 지적장애이기도 하지만 관계와 사회적 장애이기도 하다. 사회적 존재로서 사회적 생명이 성장 발전하지 못한 발달장애, 나는 그를 보면서 자폐를 그렇게 이해했다.

결국 그가 사고를 냈다. 그날도 그는 팀장의 명령을 수행한다는 임무를 안고 병실을 향해서 냅다 달렸다. 그런데 병실 복도에서 입원환자와 부딪쳤다. 그의 무게에 밀려 환자는 마른 낙엽처럼 딩굴었고, 머리와 허리에 큰 손상을 입었다. 그는 조금의 동요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가던 길을 가버렸다. 그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이상한 것이 될 정도로 그는 이 사건과 자신의 관계를 연결해서 해석하지 못했다. 그가 위험인물이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고, 그를 못마땅해 하던 사람들에게는 퇴출의 확실한 명분이 되었다. 이 기회에 온전한 직원을 채용하자는 소리도 들렸다. 그를 두고 출구를 찾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출구란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내보내는 일이다. 그것처럼 모순된 행동은 없는데 말이다.

며칠 전 지하실 창고에 들어갔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끙끙 거리며 신음하는데 마침 그가 들어왔다. 그런데 눈길도 주지 않고 쏜살같이 저쪽 방으로 사라졌다. 도와 달라고 부를 틈도 주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응급상황을 알려서 구조(?)되었지만 그가 전혀 원망스럽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역시 너 답구나!’ 헛웃음이 나왔다.

그와 함께한 6개월, 우리에게 그는 신세계였다. 이 체험 끝에서 우리가 찾는 출구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팀장은 고민 중이다. 그가 시작했던 ‘착한 일’ ‘모험’ ‘도전’이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변군을 통해서 내가 깨달은 사실 하나, 그는 다를 뿐 나쁘거나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나쁜 직원, 틀린 직원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그 무례한 고통에 비하면 이건 견딜 가치가 있는 고통이라고 길을 잃은 팀장에게 말해 주었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 이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17년 10-11월호(통권 9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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